마음은 콩밭에 (5)
처음부터 작정하고 콩알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밭 상태의 일부책임이 내 탓인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노인의 건재함이 궁금한 척 글을 이어간 건 허울 좋은 구실이었고, 고백하건대 콩 이삭 좀 얻어 보겠다는 흑심이 더 많이 깔려있었으니까.
사실은 나 자신도 이젠 점점 헷갈리고 있다.
여문 콩알에 침 흘리며 욕심낸 시점이 먼저인지, 단지 노인의 안부만 걱정되던 보통아낙의 관심이었는지 갈팡질팡 답을 못 찾겠다.
눈에 띄게 콩대가 비실비실하다.
너른 밭뙈기들 중 노인의 밭만 말라비틀어지고 누렇게 뜬 콩잎들뿐이니 쳐다보면 한숨 나온다.
콩대 뿌리근처 퍼질러 앉은 잡초 무더기들이 기운 뻗치도록 푸르고 싱싱하다.
누가 멀리서 보면 밭 고랑사이마다 일부러 시금치라도 줄지어 심은 줄 알겠다.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흙먼지 보탠 바람을 휙휙 쏘아대면 그나마 몇 꼭지 대롱거리던 콩깍지가 떨어질 듯, 부서질 듯 흔들거린다.
녹색신호에 불이 들어왔더라도 신속히 가속페달을 밟지 못하는 것은, 내 거친 속력에 비썩 마른 콩깍지 몇 개나마 떨어져 내릴까봐 그렇다.
올여름엔 비가 유난히 많았지 않았냐고, 해 뜬 날이 손꼽을 정도였노라 혼잣말로 위로삼지만, 룸미러 속 나는 영 마뜩찮은 표정이 된다.
어째 노인의 콩밭만 그 꼴인가.
나란히 줄지은 옆 밭들의 콩잎은 푸르게 펄럭이며 기선제압 하듯 꼿꼿한데, 내가 점찍은 노인의 밭만 영양실조상태다.
하늘의 탓만은 아니라는 결론이고 보면, 노인의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겠지.
또 시작이다.
노인의 안부를 점찍어 보느라 눈을 껌벅이며 머리를 굴려본다. 머릿속 생각 잔가지들이 마구 싹을 틔우고 꼬리가 늘어지고 있다.
괜한 안테나를 세우는 바람에 몇 년째 사서 맘고생이다.
일면식도 없고 이름 석 자 소개받은 적 만무한 밭주인 할배다.
오늘부터라도 작정하고 내 자질구레한 오지랖 속에서 제명시켜버릴까 한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지역 부녀회원도 아니고, 노인의 며느리 친구벌도 못되는 위치인데 매일 오가는 길에 눈만 뜨면 보이니 이래저래 관심이 갔던 거다.
끊어버리자!
이건뭐 금연시작 선포도 아니고 대단한 외침이네.
사실, 손바닥만 한 노인의 콩밭에서 거저 얻는 이삭이 아니어도 내 가족 먹을 식량은 넉넉하다.
우리 집 채마밭과 옥상 위 조각 밭에서 얻어진 푸성귀만으로도 이웃과 나눌 정도가 된다.
굳이 노인의 콩밭 부스러기까지 찢어진 눈으로 째려보지 말아야 한다.
욕심이 과해서 얻어진 근심거리다.
앞으로는 노인의 부재와 더불어 콩밭이 쩍쩍 갈라지든 누런 잎이 다 바스러지고 날아가든 내 알바 아니다.
내일부터 왕초보운전자처럼 핸들 꽉 움켜쥐고 정면주시만 한 채 지나갈 거다.
곁눈질로라도 쪼그라든 콩깍지를 절대 쳐다보지 않을까 한다.
정말이다.
헌데, 지금 순간이야 호언장담한다지만 과연 심지 약한 내가 이 결심을 며칠이나 지킬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거든.
노인의 밭 가장자리 끼고 좌회전 막 하려는데,
간신히 붙어있는 콩깍지 몇 개 까르륵 웃는 소리가 갈 바람결에 다 들린다.
걔들도 날 보고 뻔할 뻔자라고......,
사각사각.
2011년 9월 25일
메마른 콩밭을 지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