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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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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변덕


BY 박예천 2011-09-21

           

              가을변덕

 

 

 

 

머릿속에서 출발한 말이 입 밖으로는 엉뚱한 단어가 되어 나온다.

그 소릴 듣고 맞장구치며 낄낄대는 남편과 딸아이가 오늘따라 밉다.

갈수록 심해지는 증상에 나 자신도 적잖이 심각하게 느끼는 중이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느히 엄마 오늘이 그날인가보다 되게 신경질이다. 건들지 말고 빨리 도망가자!"

농으로 한 말인데도, 부녀지간 한 통속이 된 모양새에 더 화딱지가 났다.

그릇들을 내던지듯 씻으며 괜히 혼자 중얼거렸다.

아! 나 요즘 왜 이러지?

 

가족들이 빠져나간 방마다 구들이 벗겨져라 청소기를 박박 미는데, 자꾸 가슴이 먹먹하다.

이불도 일광욕시켜야하고, 하루쯤 더 말려야 하는 표고버섯 광주리를 들고 옥상에 가야하는데......, 맥이 탁 풀린다.

다 하기 싫다.

 

오늘은 그냥 나 혼자 맥없이 늘어져 있고 싶구나.

지난여름 내내 뭐하느라 동동거렸지?

사십 중반 넘도록 허덕이며 무엇으로 채우느라 끙끙댄 거지?

혼자 되묻고, 다시 청소기를 돌리다가 멀거니 서있느라 오전이 다 지나고 있다.

하늘이 참 높기도 하다.

생전 없던 것이 방금 생겨진 양, 한참을 올려다본다.

바람도 깊어졌다.

그래, 가을이었지....!

 

 

별것 아닌 일에 예민해진 것도 가을이기 때문이다.

주먹 움켜쥐고 분통터질 일이건만 관대하게 되는 것 또한 가을이기에 그렇다.

코흘리개도 아닌데 주전부리 하나에 기분 상하게 되는 유치한 심리상태도 가을 탓이다.

생활비 이리저리 찢어발기느라 걱정되다가,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맘 놓게 되는 이유, 가을이다.

 

좀 더 느긋하게 걷고 깊이 있는 사색과 삶이 되겠노라 다짐했건만, 실상은 곱절의 안달과 근심걱정만 늘어가고 있으니.

젠장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세상일에 둔한 사람이 되려나.

 

팔딱거리는 변덕의 탓을 가을에게 돌려놓고,

오래 묵어 곰팡내 가득한 내 글방 곳곳 거미줄 한 번 걷어내 본다.

참 오랜만이군.

낯선 가을기운 만큼이나.

 

 

2011년 9월 21일

반짝, 가을을 느껴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