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영미
영미가 속초에 온단다.
손가락 헤어보니 꼭 십 삼년만이다.
해마다 4월이면 ‘봄’이라는 말보다 ‘목련’을 먼저 알려주던 친구.
백목련 피면 내 생각이 난다며 편지를 보내고, 그녀가 전해준 꽃소식 듣고서야 봄인가 알아차린다.
세상풍파에 찌들어 사계절변화조차 잊어가는 친구를 위해 영미 스스로 봄이 되어 나타난다.
생각 없이 휘적거리며 긴장 다 풀어져 걷다가도 ‘요즘 글 좀 쓰니?’라는 물음엔 정신이 번쩍 난다.
편지를 보내다가, 전화로 잔소리 삼다가 내가 미동조차 않으니 직접 나설 모양이다.
남편의 직장휴가 겸하여 일가족 속초행 나들이로 결정했다는 전화를 받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오겠다던 날로부터 일주일 전인데도, 내 가슴은 미리부터 적잖이 부풀고 있었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닌 장장 십 삼년만이다.
둘 다 아이들 낳고 살림 꾸리느라 지지고 볶으며 살았으니 평범한 중년아낙의 모습되어 상봉하겠지.
친구야 어쩌면 좋으냐. 그래도 네 앞에서만큼은 백목련의 자태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데.
거죽만 늘어지고 주름진 게 아니다. 나는 갈수록 실타래 꼬이는 삶인 것만 같다.
쭈글쭈글 뇌 주름 간격마다 홍진의 썩은 곱이 가득 끼어있는 시점을 살고 있는 기분이거든.
대면하자마자 속내가 드러날까 영미가 오는 날을 손꼽으면서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영미가 속초에 왔다.
시숙이 얻어놓고 휴가 때만 사용한다던 바닷가 어디쯤 H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는 연락이다.
손바닥 만 한 항구도시라서 우리 집 위치를 말하니 금세 알아듣는다.
큰 도로 중심으로 행정기관 몇 개 설명하고 알만한 건물 끼고 우회전해라, 좌측으로 밟아라 설명해줬다.
점점 그녀가 내 집 가까이 오고 있다.
오전 열시쯤이라고 분명히 시간을 정해줬건만 하필이면 집안청소 끝낸 후, 막 머리감는 중에 전화가 왔다. 근처에 다왔다는 목소리다. 아직 약속한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말이다.
영미도 나처럼 정신깜박이가 다 된 아줌마인가보다.
나와 첫 만남인 그녀남편과 아들형제인데, 물기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감싼 채 그것도 민낯으로 성격 좋은 동네아낙처럼 실실 웃으며 맞이하고 말았다.
나와 상반되는 영미의 차림새를 보라!
깔끔한 아이보리 블라우스에 반바지를 챙겨 입고 시원한 선글라스도 걸쳤다. 귀밑에 달랑달랑 매달린 귀걸이가 나를 약 올리듯 반짝거렸다.
나쁜 계집애! 저만 제대로 갖추고 졸지에 백목련이던 날 너덜너덜 시래기로 만들다니.
꽃단장할 시간을 계산해서 초대했건만, 제 맘대로 들이닥쳐 버린 거다.
일 년도 아니고 오년도 아닌, 십 삼년 만에 만나는 거라 내가 용서해 주기로 한다.
우린 그랬다.
거창한 수식어 따위 섞지 않아도 될 만큼 영미와 나는 덤덤한 친구사이다.
“왔냐? 들어와!” 이게 끝이다.
마치 어제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침녘에 잠시 꾸벅 졸다 깬 얼굴들인 것이다.
동해와 서해 끝에 살며 두 바다를 지켜내야 할 각자의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여태 만나지 못하고 살았더랬다.
쌓인 얘기도 많고 해야 할 넋두리도 산더미지만 일단은 다 접고 얼굴 본 것에 만족하였다.
두 가정의 부부와 아이들이 저녁식탁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내 남편의 첫사랑 이름과 성까지 똑같은 영미.
아들형제 키우며 녀석들의 극성을 싸안는 어미의 모습까지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귓속말로 남편은 내게 속삭인다.
“영미들(?)이 낳은 아들은 다 말썽이 엄청난가봐. 그치? 예전에 영미-남편 첫사랑- 애들도 식당에서 난리쳤잖아!”
모르시는 말씀.
당신 첫사랑 영미는 차마 입 밖으로 내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욕설 퍼부으며 아이들 등짝을 후려쳤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싶었다.
지금도 생생한 장면이다.
‘쌍년의 새끼!’가 아이들 이름보다 더 자주 호칭에 섞여 있었으니까.
거리에서, 식당에서 마구잡이로 드센 여편네의 악다구니를 풀어놓지 않은 내 친구 영미여서 고맙다.
남편 첫사랑이라는 그 영미보다 잠잠히 침묵하며 아이들 소란을 멈추게 한 지혜로운 여자여서 좋다.
한마디로 내 체면 제대로 세워 주어 통쾌하다는 말이다.
영미가 속초를 떠나간다.
이박삼일 일정을 끝내고 영미가 자기 집으로 가겠단다.
내일 볼 것처럼 또 그렇게 덤덤히 그녀를 보냈다.
몇 시간이 흘렀나.
저녁준비 하려는데 가는 중이라던 영미가 전화를 해왔다.
고마웠다고, 금방 다시 보고 싶어진다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며 꺼이꺼이 목안을 채웠던 자갈덩이들이 터져 나온다.
잘 가라, 언제 또 보냐는 흔한 인사 전하며 정작 미안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너는 지금도 여고시절 4월 찬 눈 속에 얼어가던 목련을 나로 여겨주는데,
제 때에도 피어날 줄 몰라 고개 숙이는 음지식물인 것만 같아 미안하다고.
내 친구 영미야!
까먹지 말고 내년 봄에도 꼭 알려다오.
‘친구야! 목련이 피었다, 청신한 기운으로 일어나라!’
이렇게......!
2011년 6월 18일
오래 묵은 친구 영미가 다녀간 날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