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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携帶)하면 뭐하나


BY 박예천 2011-06-13

 

     휴대(携帶)하면 뭐하나

 

 

2011년 6월 13일 오전 8시 20분.

텃밭에서 뽑은 상추 한 무더기와 통배추 세 포기를 각각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서둘러 아들을 씻긴다.

옷 챙겨 입히고 책가방과 푸성귀 봉지를 집어 든다.

시내에서 꽤 떨어진 학교에 아들녀석 내려놓고 다시 가속페달을 밟는다.

얼핏 시계를 보니 8시 50분.

동생 벌 되는 아낙 집에 맛보라고 건넬 생각이다.

그녀의 아파트단지에 들어서며 1층으로 내려오라 하려고 휴대전화를 찾으니 없다.

‘에라, 정신머리하고는. 또 두고 나왔군!’

덜렁이 성격을 자책하듯 스스로 머리 두어 번 쥐어박았다.

하는 수 없이 9층까지 올라가 전해주었다.

“헤헤헤.....나, 치맨 가봐! 휴대전활 두고 온 거 있지.”

머리를 긁적이며 총총히 뒷걸음치듯 내려왔다.

공원길 내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뭔가 바지 주머니에서 덜렁거린다.

'어라? 이게 뭐지? 엉....? 휴대폰이네! 으이구 내가 못살아!'

 

오후 4시 10분경.

아들의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에 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끝나 주차장에 나오니 감자선생 부인의 차가 보인다.

보건소 어느 부서엔가 근무한다던 말이 떠올라 내친김에 얼굴이나 보자 생각한다.

“아들아! 우리 o o엄마 만나보고 갈까?”

“네!”

그래.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은 있겠지.

저장된 번호를 검색하여 자신 있게 꾹!

신호음이 연거푸 열 번 넘게 가도 받지 않는다.

“아줌마가 바쁜가보다. 그냥 가야겠네. 다음에 만나자 아들아!”

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도로 쪽으로 빠져나갔다.

 

저녁 6시.

공원길 골목으로 들어서다 퇴근하던 감자선생 부인과 마주쳤다.

볼멘 목소리로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나는 버럭 거렸다.

“어이! 아줌마! 전화 좀 받아라! 어쩜 그렇게 통화가 힘드냐?”

“무슨 전화? 온 거 없는데....? 언제 했어?”

“아까 예방접종 갔다가 얼굴 좀 보려는데, 받지도 않더구만. 내 전화에 최근 기록 보여줘? 볼래?”

이때 까지는 그럭저럭 당당한 목소리였다.

“자! 여기 봐봐! 어라?......, 이게 뭐여? 집 전화번호네! 나 뭐한 거니? 빈집에 전화해댄 거야?"

얼굴이 화끈 거렸다.

 

몸에 휴대하고 다니면 뭐하나.

뭔 장식품도 아니고.

전화기는 그만두고라도 몸 떠난 정신이나마 제대로 휴대하고 다니자!

나도 점점 나사가 빠져가는 나이로구나.

 

 

 

 

2011년 6월 13일

덜렁이 증상 심각해지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