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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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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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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BY 박예천 2010-08-30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여전히 그는 집 안팎을 가꾸느라 바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퇴근해 파김치 되어 돌아와도 거실바닥에 드러눕거나 티브이 리모컨 먼저 집어 들지 않는다. 마당에 풀이라도 뽑으며 땀 흘려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버젓이 등기상 소유자인 나는 자청하여 머슴역할(?)에 충실한 그가 고마울 뿐이다.

구석구석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니 얼마나 성실한 머슴인가.

때 맞춰 텃밭에 씨 뿌리고 가꾸며 결실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참 기특한 남자다.

 

주말오후.

밖에서 들어온 나는 거실풍경을 보며 의아했다.

여기저기 전선이 늘어져있고 드라이버 같은 도구를 들고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에 뭐하냐고 물어볼 여지도 없었다.

잠시 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그가 나를 부른다.

“여보! 거실 거기쯤에 서봐. 아니, 아니 좀 더 옆으로 몇 발짝 움직여 보라구!”

자기 방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버럭 거린다.

“도대체 뭐 하는데?”

궁금증에 다가서는데 모니터 속 낯익은 여자도 뒤뚱거리며 다가선다. 나다.

CCTV 설치 중이었던 거다.

아파트처럼 공동주택인 경우 따로 경비실이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남편은 스스로 자기 집 보안에 나섰다.

혹시 누군가 집안에 대형금고라도 있는 것으로 알면 어쩌나싶다. 현관과 뒷문 출입구에 턱하니 카메라 작동중이라는 스티커까지 붙여 놓았다.

오히려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뭐 중요한 물건 있는 집이라 광고하는 표시로 여겨진다.

 

월요일 오전.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로 빠져나가 텅 빈 집안.

건조대에 널었던 빨랫감 개고, 세탁기 속 것은 꺼내 널며 집안 대청소를 한다.

이제부터 먼지 털어내고 환기도 시켜야지 하며 청소기 바퀴를 굴렸다.

걸레질을 시작하면서부터 목과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다 끝낸 후 시원한 샤워물줄기를 기대하며 신나게 움직이는 중이다.

무심코 평소대로 작업 반경을 넓혀가려는데 뭔가 의식되는 눈동자가 있다.

아! 맞다. 저놈이 있었군.

외눈박이 외계괴물마냥 툭 불거진 눈알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분명 집안에 혼자 있는데도 왜 이리 신경 쓰이는지.

흔들흔들 마구 걷던 걸음걸이도, 쩍쩍 입 벌리고 내뱉던 하품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본능에 충실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무너지고 있다.

콧구멍 근처로 손가락하나 쑤셔 넣다가도 힐끗 천정에 그놈이 거슬린다.

간신히 파낸 코딱지도 함부로 버릴 수 없어 조신하게 화장실 변기 속에 투하했다.

녀석은 눈꺼풀이 없는지 깜박이지도 않는다.

집요하게 오로지 실내의 움직임만을 눈도장 찍어대고 있는 중이다.

 

이게 뭔 꼴이람.

도둑 잡으려다 내가 먼저 저놈에게 매달려 숨 막혀 죽을 지경이다.

틈만 나면 허리 아픈 핑계로 거실바닥에 벌러덩 눕곤 했는데, 지금은 최대한 교양 있는 척 꼿꼿하게 앉아 책도 넘기고 자판 두드리며 글쟁이 흉내를 내는 중이다.

점점 생각의 타래가 엉키고 있다.

혹시 남편은 나를 감시하기 위해 저놈을 달아 놓은 것은 아닐까.

고귀한(?) 마누라님 누가 물어갈까 철통보안장치를 설치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기막힌 추측.

아니면, 자기가 집을 비운 낮 동안의 방문자 상황이 궁금한 것인지. 혹시 의처증?

 

갑자기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함부로 행동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이런 것이었구나.

삶 전부 지켜보고 계실 하나님의 안테나 감지를 느끼면서, 소홀히 살 수 없었던 내 지난날들처럼 말이다.

누가 보든 안보든 매순간 한결 같은 자세로 임했다면 떳떳할 것을.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2010년 8월 30일

몰래카메라가 날 지켜보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