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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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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문장


BY 박예천 2010-07-23


36.5℃ 문장

 

 

인지치료실과 피아노학원에서 돌아와 시큼한 땀 냄새 나는 유뽕이를 욕조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뽀글뽀글 거품으로 온 몸 닦아주고 녀석이 저녁메뉴로 추천한 부대찌개를 끓입니다.

남편은 야간자율학습 있어서 늦게 오고, 딸아이는 설악산 대청봉 등반 떠났습니다.

모자지간 먹는 저녁이 쓸쓸합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없어서 그런가봅니다.

샤워를 해서인지 말끔해진 아들에게 뽀뽀 한 번 찐하게 해주고 얼마 전 만든 살구주스 건넵니다.

 

설거지 끝내고 노트북을 켰지요.

유뽕이는 흰둥이 견우와 손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들리는 코스가 일정합니다.

메일 확인 후 곧바로 들리는 아줌마닷컴.

화면이 열리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오른쪽 꼭대기에 낯익은 얼굴, 아들이 보이고 녀석이 좋아하는 피노키오도 흐릿하게 있네요.

세 줄의 글 중 맨 위에 ‘36.5℃ 문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제 얼굴이 표시된 숫자 몇 배 곱하기 온도로 화끈거렸습니다.

과연 그동안의 제 글들이 사람체온만큼이라도 온기가 담겨 있었을까 되돌아봅니다.

 

여고시절 문예반 선생님 말씀도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에게 감동 줄 수 있는 글을 써라.’

‘어렵게 고뇌하여 쓰되, 쉽게 읽히는 글을 써라.’

가슴에 새겨두고 살기는 했는데, 실상 스승의 가르침대로 흡족히 펼치지는 못한 듯합니다.

아줌마닷컴 첫 화면에 이름이 떴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많은 분들이 제 글방을 찾아오시겠지요.

홍보효과가 추가되어 글의 조회 수도 엄청나게 불어날 것입니다.

기대를 안고 혹시나 찾았던 분들에게 실망감 안겨줄까 솔직히 맘이 편치 않습니다.

가끔 독자들의 넘치는 칭찬이 있을 때도 덩달아 춤 출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 자신의 글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줌마닷컴을 처음 만난 것은 아들이 대여섯 살적이던가.

언어치료 하는 시간 대기실에서였습니다.

탁자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신문 들춰보다가 광고지면 한 부분 적혀있는 주소를 보았지요.

펜이 없어 신문 귀퉁이를 잘 찢어와 집에 컴퓨터로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에세이방이었나요.

‘바다새’라는 닉네임 내 걸고 글이라 할 수도 없는 내용들을 올렸습니다.

아들로 인한 절망의 순간이었던 그때, 아줌마닷컴을 알게 된 것이지요.

기댈 언덕을 만난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댔습니다.

그렇게 아줌마닷컴과 저와 유뽕이는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녀석이 어느새 열두 살이나 되었답니다.

자신의 일 인양 눈물 찍어내 주시고, 힘찬 응원의 박수 아끼지 않았던 여러 님들 덕분에 여태 잘난 척 일삼고 글을 씁니다.

 

사람의 감성지수를 어찌 숫자로 매길 수 있을까요.

허나, 용광로의 열정만큼 타오르지 못하더라도 온기 가득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되도록 가식적이지 않으며, 진솔한 삶을 옮겨보려 애썼지만 언제나 벌거벗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 각박해지더라도 오늘 표시된 온도만큼은 지켜보려 노력하겠습니다.

더 이상 내려가지도, 팔딱거리며 끓어오르지도 말고 꼭 지금만큼의 36.5℃를 간직한 사람이 되어 보렵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지극히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아줌마닷컴 측의 주문사항(?)으로 감사히 받습니다.

 

제 글방을 찾으시는 분들.

더위에 건강 하시기를 기도 손 모으겠습니다.

 

 

2010년 7월 23일

과분한 글귀에 지난 날 되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