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염둥이들입니다.
며칠째, 때 이른 여름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장마 앞두고 꼭 찾아오는 절차이기도 하겠지만, 기운 넘치고 먹성 좋은 저도 식욕을 잃었답니다.
마당 곳곳에 제 자리를 지키며 손짓하는 꽃들이 보입니다.
숨 한번 고르고 쉬어가라 말합니다.
그저 하는 짓이 귀엽고 사랑스러울 다름입니다.
얼마 전 진땀 흘리며 주인여자가 새끼줄을 꼬아 버팀목 세워놓았더니 오이넝쿨이 잘 뻗어 올라갑니다.
감사의 표시로 한낮에 고운 별 하나 띄웁니다.
노랑별 쳐다보며 잊고 지냈던 유년의 소꿉친구를 떠올려 봅니다.
백합과 호박꽃, 오이꽃을 따다가 계란요리라며 칼날로 송송 썰어 사금파리조각에 올리고 놀았지요. 어머니는 호되게 꾸지람 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끝내주게 재미난 놀이였습니다.
오이꽃만 바라보고 예쁘다 칭찬하니 시샘하듯 토마토 꽃도 노랗게 꽃다발을 내미네요.
모종을 심어놓고 꽃이 없다며 주인아저씨 한숨이 들락날락 토마토 잎에 닿았습니다.
걱정 말라며 뭐든 기다리면 때가 오는 법이라고 꽃으로 대답합니다.
줄줄이 열매들도 달아놓을 테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토마토 꽃다발이 속삭입니다.
토마토 꽃이 드디어 피었다며 아저씨 음성이 하늘 높게 치솟자,
벌써부터 꽃 피우고도 차분히 앉아있는 나는 쳐다보지 않느냐며 돌나물도 아우성입니다.
노란 꽃이 오이, 토마토뿐인가요. 우리 돌나물 가족은 전부 동원되어 이토록 노래한다며 질펀히 땅바닥에 드러누워 아름다운 시위를 벌입니다.
주인남자 미안해졌는지 가장 아름답게 사진에 담아준다며 돌나물 꽃들을 위로합니다.
어떻게 씨앗이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계단난간 아래 흙더미 곁에 이름 모를 것이 자라고 있었네요.
이게 뭘까? 부부는 몇 날을 지켜보았답니다.
꼭 어디에선가 본 기억도 있고, 화원에 있었던 선인장을 닮기도 했습니다.
시멘트기둥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었지요.
맘 넓은 주인아저씨가 햇빛 잘 드는 곳으로 이사를 시켜줍니다. 동그란 화분집도 마련해 주었네요. 다육이들 같은데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여태 궁금하답니다.
텃밭과 잔디밭 경계삼아 돌다리를 놓았지요.
돌 틈에 심을만한 화초 고르다가 저번에 심은 토종채송화를 떠올렸습니다.
화원에 구하러 가보니 모종이 없다는 군요.
헛걸음 한 게 아쉬워 두리번거리는데 꽃집 아줌마가 색다른 꽃을 권합니다.
채송화종류라고 꽃이 아주 곱다며 심어보랍니다.
집에 가져와 토종채송화 옆줄에 나란히 옮겨놓았습니다. 꽃이 피기도 전인데, 잎만 보아도 꽃이 핀 듯 예쁘네요. 이 녀석의 정확한 이름도 모른답니다.
아파트에 살적에 누군가 멀쩡한 화분을 쓰레기장에 버렸습니다.
투박한 황토색인데 항아리 같기도 하고 정감 가는 모양이라 몇 개 주워왔지요.
비어있는 화분 두개에 제라늄을 심었습니다.
마당에서 올라가는 첫 번째 계단 양쪽에 올려놓았는데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습니다.
연이어 올라오는 꽃대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제 손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에 그저 벅차오르고 자신감마저 생깁니다.
채송화들이 앞 다투어 자기 색을 내밀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렌즈를 대고 주인아저씨가 사진에 담았습니다.
꽃잎 속 가득 담긴 웃음까지 퍼 옮기느라 애먹었다는 군요.
우리집 귀염둥이들이 날마다 재롱 피우는 덕에 저는 늘어져 앉아있을 틈도 없답니다.
시시때때로 귀 기울여야 하고 목도 축여줘야 한답니다.
작은 일에도 분내고 금세 토라져 시기질투 일삼는 사람친구들보다 어떤 날은 녀석들이 훨씬 더 믿음이갑니다.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다독이며 지친어깨 감싸주라 하나님이 보낸 선물들만 같습니다.
다시보고, 몇 번을 쳐다봐도 눈물겹게 곱기만 하여 감사한 날들입니다.
우리집 마당에는.....,
이처럼 대단할 것도 없는 작고 흔한 꽃들로 삶을 엮어가는,
또 한사람 주인여자도 있답니다.
2010년 6월 22일.
일부 마당가족 소개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