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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에 (2)


BY 박예천 2010-06-16

         

      브로콜리도 꽃을 피웠다네.

 

 

 

 

아침식탁에 새순 샐러드 곁들여 먹고 싶다며 지난겨울, 남편은 씨앗 여러 종류를 구해 왔다.

사각 그릇 서너 개에 보드라운 천 깔고 그것들을 뿌렸다. 양지바른 창가에 두고 오가며 스프레이로 물을 분사해줬다.

곧 소복하게 콩나물시루처럼 새순이 돋아 올랐다.

기대를 잔뜩 품고 소스에 버무려 먹어보았으나 생각만큼 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약간 풋내가 나며 아린 맛도 강했다.

어쩌면 자주 먹어보지 않던 맛이어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실망감이 커서였을까. 두어 번 먹어보다 내키지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안청소 할 때마다 거추장스럽게 자리차지하고 있어 쓰레기통에 담아 버릴 작정이었다.

허나 막상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화초삼아 키우기로 했는지 남편이 실내에 있던 싹들을 뒤란 담 밑에 심어놓았다.

뿌리내려 살아있던 것이니 함부로 내버려 죽게 할 수 없다는 그의 심성이 내린 결론이다.

가끔 나도 텃밭을 적시며 물뿌리개에 남은 물을 뿌려주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자 잡초 곁에서 새롭게 탄생한 또 한 부류 풀이라도 된 듯 순응하며 흙에 뿌리를 내린다.

 

실 줄기 같은 작은 싹들이 자라나 연두 잎 여러 장 내밀더니 자리 잡기 시작한다.

너풀너풀 겹잎까지 생겨나와 들여다보던 남편과 나는 싹들의 원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느 것이 무순이었고 브로콜리였는지 고물거리며 돋아나는 모양새를 보니 알게 된다.

햇살의 잦은 방문으로 녀석들의 덩치가 몰라보게 실해졌다.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몸을 부대며 진땀 흘리는 게 남편 눈에도 보였나보다.

화단 중앙 코스모스 바로 앞에 시원스러운 자리로 이사를 시켜준다.

옮겨간 브로콜리는 날마다 튼실한 모습으로 꽃대를 내밀며 키가 큰다.

마치 장다리꽃인양 기다란 대궁을 올리더니 어느 날 노란 꽃을 피워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쉬어가듯 걸터앉은 모양인가 착각할 정도로 느껴지는 꽃잎 넉 장.

샐러드 한 접시로나마 아침식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미안해져,

주인내외의 눈이라도 즐겁게 해주겠다며 꽃으로 다가와 주었다.

브로콜리 꽃을 난생처음 보게 된 터라, 나의 하루는 꽃밭근처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노란꽃잎 먼저 발견한 남편이 한낮에 졸고 있는 아내에게 문자를 찍어 보냈다.

‘마당에 브로콜리꽃 핀 거 봤니?’

누가 보면 뭐 대단한 문자씩이나 주고받는 부부인가 하겠지만, 우리가 나누는 메시지는 늘 이렇다.

호박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 기미가 없는 날엔, 붓으로 꽃가루 찍어 암꽃 수꽃 짝짓기도 해주라며 휴대전화를 울린다.

정말 별 걱정을 다 하는 남자다.

세심한 성격에 보답하듯 그래서 브로콜리도 꽃을 피워놓았지 않은가.

 

산과 들에 이름 없이 핀 꽃들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던 지난날들.

야생화무리 찾아 헤매던 정성으로 이제는 마당 안을 숨죽이며 두리번거린다.

감자꽃, 파꽃, 달래꽃, 호박꽃......,

저마다 누구에겐가 또 하나의 의미이고 싶어 꽃을 피운다.

 


곧 몰아칠 올 여름 긴 장마 기운이 손바닥만 한 내 마당만큼은 순조롭게 지나치기를 하늘에 부탁해 본다.

나는 지금도 나란히 늘어서서 노랗게 졸고 있는 브로콜리 꽃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루해가 꼴깍 설악산으로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르고.

 

 

 

2010년 6월 15일 저녁

브로콜리 꽃을 처음 보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