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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에 (1)


BY 박예천 2010-06-15

 

       초롱꽃이 피었습니다.

 

 

 

 

때를 따라 적당히 비가 내려주니 날마다 텃밭이 풍성해집니다.

그에 질세라 마당 곳곳 심겨진 화초들도 제 역할 해내며 바빠졌는지,

여기저기 꽃을 피웁니다.

춘삼월 지나면서 구석마다 싹들이 솟아났지요.

여린 몸짓 지켜보며 과연 무슨 잎일까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들떠 지냈습니다.

점점 각각의 이름값 하는 화초들을 보게 됩니다.

 

초롱꽃 싹이 돋아나던 그 즈음.

곁에서 취나물과 참나물이 어깨를 나란히 맞추며 경쟁이 붙었지요.

당연히 한 무더기 모여 자라던 그 잎도 봄나물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시험 삼아 한 잎 뜯어 토끼 영랑이집에 넣어주니 고개 돌려 외면하고 먹질 않습니다.

호기심 많은 남편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요.

잎사귀를 베어 물고 어적어적 씹어봅니다.

몇 번 오물거리기도 전에 땅바닥에 도로 뱉어버리더군요.

입맛 당기는 맛은 아니어서 먹기엔 아예 글러버린 초록 잎이었습니다.

분명 나물은 아닌 거야. 그렇다면 저게 뭘까?

모든 것은 시간이 다 해결해 줍니다.

우리네 삶에 있어지는 의문이나 고난들도 적당한 시간이 흘러야 답이 나오듯 말이지요.

 

 

한낮에 내리쬐는 해의 폭이 넓고 길어지던 유월 어느 날.

아침 일찍 마당으로 내려서니,

의문의 초록 잎에 대롱대롱 뭔가 잔뜩 달려있는 게 아닙니까.

 


아하, 그것은 바로 초롱꽃이었답니다.

새색시 마중 나가는지 죄다 한쪽 방향을 향해 다소곳하게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잠깐 내려준 소낙비를 방울방울 얼굴에 점찍고 땅바닥만 바라봅니다.

같이 사는 남자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꽃들이 지기 전, 마당에 피어있는 것들을 사진기에 담아달라고.

말 잘 듣는(?) 그는 충실히 의무를 이행했고, 초롱꽃은 흡족하게 초상화로 담길 수 있었지요.

 

바람이 불 때마다 살짝 흔들립니다.

바로 옆에 든든히 서있는 살구 향을 머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주인여자의 ‘곱다’는 탄성을 입가에 담고 파르르 부끄러워 떨기도 합니다.

종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귀 기울여 봅니다.

눈앞에 보이는 초롱꽃 무리 대신 이미 여자의 가슴속에서 종소리는 한참을 울리고 갑니다.

아름다운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보다 차라리 눈물겹다 말해도 괜찮다고.

초롱꽃들이 흔들리며 대답해줍니다.

맘 적셔주고 채워준 초롱꽃들 무리를 오래 간직하고 싶어졌습니다.

남자에게 또 한 번의 부탁을 합니다.

한 폭 그림으로 남겨 달라고.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인 양,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합니다.

마침내 내밀어준 공간에 초롱꽃들은 그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길고 험했던 어둠의 길 뚫고 나와,

어리둥절 햇빛에 눈부셔 하는 나를 토닥이며 고개 숙이라 합니다.

눈을 들어 마주보고 있지 않아도 빛은 전부를 감싸줄 것이라면서.

겸손히 무릎 꿇어 기도하는 시간을 지녀 한 송이 꽃이나마 빚어내라 가르쳐줍니다.

작기만 한 마당 안에도 온 우주가 꽉 들어차있어 여자를 만족하게 합니다.

 

넘치는 감사로 손을 모으게 되는 유월 어느 날입니다.

 

 

 

 

 

 

2010년 6월 15일

마당에 핀 초롱꽃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