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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길 사람들 3 - 개들의 천국


BY 박예천 2010-06-10

 

       개들의 천국



 

 

눈 뜨지 않아도 시간을 알 수 있다.

한 차례 수탉의 목청 가다듬는 소리가 골목을 흔들어 깨운 뒤였다.

곧바로 이어지는 달마와 그 졸개들의 울부짖음들.

동굴 속에서나 있음직한 울림으로 컹컹대거나 자잘하게 짖는다.

손 더듬어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본다. 역시나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벗어난 시각이다. 뒤척이다 간신히 빠져든 잠이 순식간에 박살나고 있다.

거의 매일 있어지는 규칙적인 알람역할에 오히려 고맙다 해야 하는지.


공원길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상황인지라 누구도 불만을 표하는 이가 없다.

이사 온지 겨우 두어 달 지난 우리가족에게만 적응 되지 못한 절차인거다.

먼저 주인이 살고 있을 당시 이 집은 대문도 없고 담장마저 허술했었다.

사방이 뻥 뚫린 형국이니 마당이며 잔디밭은 그야말로 동네 견공들의 지상낙원이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흰둥이 얼룩이 서로 짝지어 사랑을 나눌 은밀한 장소로 제공되었거나, 내 집 화장실마냥 편하게 일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집주인이 이삿날 정해 떠난 며칠 뒤, 남편과 빈 집을 찾아왔었다.

마당은 그야말로 좋게 말하면 거름더미 그 자체였다. 곳곳에 겨우내 동네 개들이 쏟아놓은 배설물들로 가득했으니까.

추운 겨울 눈 속에서도 모양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다양한 크기의 개똥들. 무슨 예술가의 작품이었다면 조형물로서의 가치라도 있겠지만, 보기만 하여도 절로 구역질이 나왔다.

텃밭 거름용으로 퇴비 삼아 따로 모아놓기라도 하던지 집 꼴이 이게 뭔가.

지켜보던 나는 인상 구긴 채 입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집수리에 들어가자마자 하얀 철제 대문을 해 달고 낮은 담장까지 둘러쌓았다.

감히 벽돌담 뛰어넘으면서까지 똥 싸대는 녀석들이 없어서인지, 마당 안은 차츰 사람 사는 집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허나 대문 밖 상태는 여전했다. 골목길에 주차를 하고 들어서다보면 대문기둥아래 보란 듯이 한 무더기 쏟아놓은 개똥.

싸 놓은 걸 즉각 치우기라도 하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마치 온 동네 골목이 개들의 화장실이 되고 만 현실이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기온이 올라가니 슬슬 냄새도 더해진다.  

억센 여편네가 되어 시비 걸자 식으로 싸움을 걸 일도 못되고 난감했다.

누구라도 대신 일을 터뜨려준다면 얼씨구나 추임새나 넣자 했는데 동네사람들은 보면서도 침묵이다.



대문 옆으로 길게 돌을 쌓아 만든 화단이 있다.

경계를 무시하고 꽃밭 안까지 침범한 개똥무더기에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똥글똥글 경단수준의 크기였다면 권정생선생님의 동화 속 ‘강아지 똥’이라 여기며 치우면 그만이다.

펑퍼짐하게 거대한 양을 보니 기함하겠다.

참지 못한 남편이 저녁나절 또 그 곁을 어슬렁거리는 달마티안 한 마리 향해 소리 질렀다.

네가 한 소행이냐? 저리 썩 꺼지라며.

순간, 골목 끝집 주범으로 심증이 가는 개떼들의 어미인 듯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절대 자기네 개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야 원, 개똥을 퍼다 현미경으로 과학수사 의뢰할 것도 아니고 그저 허허 웃고 말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다음이다.

새벽미명 흔들어 깨운 개들 짖음보다 더한 강도로 여자는 찢어지는 음성을 내쏜다. 

화단 안에 똥싸놓은 녀석들 나무랐던 나와 남편이 듣도록 일부러 개들의 이름을 핏대 세워 부른다.

이리오라고, 달마야 빨리 와라. - 얼룩무늬 다리가 긴 개를 ‘달마’라고 불렀다 - 얼른 오지 못하겠느냐며 온 동네를 깨부순다.

차라리 개소리를 듣는 편이 저 여자의 악다구니보다 낫겠다고 나는 잠시 생각한다.


저녁밥 짓는 우리 부엌창가에서 그 집 앞마당이 잘 보인다.

물끄러미 뒤란에 핀 꽃들 쳐다보며 파 다듬고 있으려니,

개들의 배변시간인지 한 남자가 여러 마리 거느리고(?) 골목길에 나타난다.

도마 위에서 똑딱이던 칼질을 멈춘 채 물끄러미 남자의 행동을 바라본다.

뻐끔 담배연기 한 모금 입에서 내 뿜으며 이리저리 개떼를 바라보는 남자.

개들은 일보기 편한 자리 더듬느라 정신없고, 벌써 근처 맨홀 옆이든지 담벼락에 싸대고 있는 중이다.

볼일을 마쳤는지 꼬리치며 모여들자 태연자약 손짓하여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뒤이어 여자의 째지는 소리가 골목 안을 휘젓는다. 

빨리 들어오라며, 어미로서 분신 같은 개자식(?)들을 품으로 들이느라 저녁어스름 동네가 떠나간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바락바락 자기 식으로만 목소리 세워 우겨대는 여자,

절대 제 언행만 옳다며 타인을 손톱만큼도 배려할 줄 모르는 남자.

자기는 개들을 묶어놓지 않고 자유롭게 키운다며 자랑삼아 말하던 옆집 또 한 아줌마.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공원길에도 산다.

개들은 주인 덕에 자유 얻어 온 사방 펄펄뛰고, 정작 골목 오가는 사람들은 개똥냄새에 구속되어 몸살 앓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개자식의 부모 된 독불장군 그네들이 나는 그저 두렵기만 하다.

공원길 여기저기엔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넘치게 모여 산다.


내일도 새벽은 개 짖는 소리로 마침내 열리려는가.

 


 


 

2010년 6월 10일

개똥(?) 널브러진 골목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