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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너만 보면


BY 박예천 2010-06-05

 

         감꽃 너만 보면


 


 


드문드문 감꽃이 피었다.

이불을 널어 말릴 때마다 계단 난간에서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도 하다.

감나무가 흔하지 않은 지역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여태껏 감꽃을 본 적이 없었다.

꽃 없는 열매가 어디 있겠냐마는, 감나무엔 열매가 꽃이려니 했었다. 

처음 감꽃을 보았던 날의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그 공간에도 아들이 있었다.

녀석으로 인해 절망스러웠던 시간을 등에 짊어진 채 허덕이고 있을 때다.

어느 구석에도 희망의 무게를 걸어둘 공간이 없던 암흑자체였다.

말 한마디 못하는 아들의 입술을 대신해 초록잔디위에서 종알거리던 꽃잎.

순간 나는 소망했다.

떨어진 꽃잎들이 온통 날아가 내 아들의 입술이 되어주기를.


해마다 감꽃은 피고지고, 내 아들도 감나무 닮아 키가 큰다.

입술 달싹이며 내 놓는 말마다 노란 감꽃 냄새가 달게 난다.

어쩌면......,

녀석이 다섯 살이던 그날의 감꽃들은 다가와 입술이 되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감꽃만 보면 눈물겹다.

누구는 떨어진 꽃들을 모아 목걸이 만들고 놀았다는데.

나는 감꽃만 보면 서럽던 봄날이 목안에서 절구질을 한다.

다 잊었노라, 벅찬 날만 기억하겠노라 했음에도 감꽃만 보면 눈이 무겁다.

잎사귀 뒤에 숨어 피는 꽃 모양새가 곱다가도 가슴 아리다.

까맣게 살다가도, 하얗게 웃다가도 불쑥 뜨거워진다.


감꽃 너만 보면.....,



2010년 6월 5일

마당가에 피어있는 감꽃 보다가.




 

 


(아래 글은....아들의 감각치료실 다니던 시절 썼던 글입니다. 감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나 예전 글이지만 올려봅니다. 다시 읽어보니, 저런 날도 있었구나 싶네요.^^)




 


                                                       감꽃


 

아들이 늦잠을 잔다.

흔들어 깨우려다 너무도 곤하게 자고 있기에 옆에 가서 조금 누워 있었다.

잠깐 졸았을까. 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이 깼는데 녀석은 잠들어 있다.

오늘 야외학습이 있으니 긴 바지를 입히라는 감각치료 선생님말씀이다.

서둘러 아들을 깨우고 감지 않은 머리는 대충 빗어 넘겼다.

아이의 옷을 챙겨 입힌 후 버스정류장으로 뛰다시피 급하게 걸었다. 지각대장 엄마는 오늘 역시도 선생님을 기다리게 했다.

버스한대가 금방 떠난 뒤라 한참을 있어야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되었다.

설악산 아래 있는 호텔 잔디밭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야생마가 되어 마구 뛰어 다닌다.

훌라후프도 돌리고 공도 던지며 즐거워한다. 아들은 다리가 불편한 여자친구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겨우 다섯 살인 녀석이 갑자기 든든한 청년의 모습으로 잠시 머릿속에 들어온다. 저렇게 엄마가 힘겨울 때도 업어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간식시간이 되어 야외용 돗자리에 둘러앉는다.

“어머, 감꽃이 피었네요!”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올려다보던 나는“어디요? 안 보이는데요....?”하며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초록이 무성한 잎새들로 가득한 그것이 감나무인지도 꽃은 어느 곳에 매달려 있는지 관심 밖이었다.

내 꼴이 안타까웠는지 “저기요! 저거 안보이세요?” 하는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던 내 눈앞.

보기에도 앙증맞은 감 꽃무더기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잔디밭 위에 띄엄띄엄 점박이처럼 박혀있던 것들이 감꽃이었구나.

손바닥 위에 한 개씩 모아 올려 보았다. 어찌 그리도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요정들의 웃음조각 이거나 밤하늘에서 나들이 나온 아기별들의 속삭임이다.

소복하게 손안에 모았다가 공중으로 뿌려보았다. 팝콘처럼 날아가 다시 초록바닥으로 송송 박힌다.

 

아침부터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아들을 업고 뛰어와서 일까. 허덕이던 나는 그때까지도 맥없이 쳐진 어깨로 앉아 있었다.

감꽃을 만지고 나서부터 갑자기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잊고 살았거나, 모르고 지낸 것을 어느 날 무심코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바로 오늘처럼 나를 휘감는 희열과 벅찬 무게의 감동.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이어서 감사하다.


손바닥에 감 꽃 무리들이 재잘대며 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을 다 읽었다는 듯 귀여운 고개를 끄덕이고들 있다.

세상엔 감꽃처럼 숨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키우고 있는 것들이 더 많으리라. 그것을 보는 눈을 제대로 갖기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오만의 배를 불룩하게 내밀고 살았던 나의 철지난 사진첩을 접어본다.

소박하고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이제라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 넣어봐야지.

가진 것을 살짝 감추고 웃는 감꽃의 미소를 닮은.

   


2003년 5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