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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죽


BY 박예천 2010-05-11

콩죽

 

 

“오늘 할머니 뵙구 왔다. 콩죽 조금 쑤어가지고 갔거든. 너는 왜 안 오느냐고 물으시더라. 멀리 시집가서 못 온다구 하니까 결혼은 언제 했느냐고 하시더라.”

 

어버이날, 안부 차 드린 전화 속에서 어머니는 묻지도 않은 할머니 얘기부터 한다.  

나를 찾으신단다.

흐릿해진 기억속에서도 어찌 손녀딸은 또렷하게 자리해 있는 걸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당신의 아들을 오라비로 이름붙이고, 며느리는 맏동서도 되었다가 손자는 장조카로 만들던 치매기운 중에도 오직 나만 정확히 알아보는 할머니.

젖이 부족하여 영아기 내내 배곯던 손녀딸이 여태 굶고 있을 염려에 콩죽이라도 떠먹이고 싶었던 걸까.

고소한 콩죽냄새 코끝으로 스미기도 전에 손녀딸을 찾았단다.


어머니에게 콩죽이야기를 듣던 전날이었던가.

꿈을 꾸었다. 유독 꿈마다 잘 들어맞아 가끔 누군가 돗자리 깔아라, 복권을 사라 우스개 소리를 한다. 그걸 예지몽이라 한다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꿈속에서 뵈었다. 끔찍하게도 손녀딸을 아끼던 분이었다.

잔치분위기다.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 손을 잡아끌고 나온다. 곧 축제가 있을 예정이니 준비하란다. 여기저기 손님들로 북적인다. 고모 셋과 특별 찬양을 준비해야 한다며 목청 가다듬다 반짝 눈이 떴다. 꿈이었다.

할아버지 가시기 전, 자주 꾸었던 꿈도 축제를 여는 찬란한 내용들로 꾸며진 것들이었다.

친정어머니께 전화 넣어 꿈 얘기를 하니, 그날이 마침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이란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곧 할머니마저 가시려나.

 

 

 

거의 이주일 내내 아들녀석이 감기로 아팠다. 먼저 앓던 남편도 증세가 낫질 않아 졸지에 두 사람 병간호를 했다.

어느 정도 부자가 회복되자 이번엔 덜컥 내가 앓아누웠다. 편도가 부어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다. 입에 닿는 것마다 쓸개 맛이다.

열이 치솟아 맥없이 쓰러지기만 하였다. 사나흘 꼬박 누워 빌빌대니 집안 꼴은 말이 아니다.

세탁기에 넘치는 빨랫감이며, 구석구석 먼지 무더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잇고,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자한다.

기운내보겠다 억지로 밥을 쑤셔 넣었다. 맛이고 간이고 알 수가 없었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으나 청소기라도 돌리면 개운해지겠다싶어 끙끙 밀어댔다.

평소엔 삼십분이면 족할 것이, 걸레질까지 마치고 나니 한 시간이나 걸렸다.

 

다시 오한으로 턱이 덜덜거린다. 미련하게 무리를 했나싶다. 느긋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몸이 혹사당하는 거다.

거실바닥에 깔아놓은 전기매트 버튼을 고온으로 올리고 누웠다.

솜이불 머리끝까지 덮은 채 어금니 물고 있자니.

찔끔찔끔 눈물이 나온다. 처음엔 훌쩍이다 말 작정이었는데, 집안에 나 혼자다 생각되는 순간부터 콧물까지 새나온다.

젠장! 뭐 이러냐. 때 맞춰 밖에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꽃 지고 잎사귀 푸르게 펄럭이던 살구나무도, 배나무 잎도 비 맞아 운다.

나처럼 몸 떨다 울고 서있다.   


꺼이꺼이 울다 멈추다 반복하다가 짭짤한 코끝을 훔쳐내는데, 콩죽냄새가 난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샛노랗게 불린 콩을 맷돌에 갈고, 끓이고 쌀 섞어 나무주걱으로 젓다가 떠먹일 손녀 생각에 웃으셨을 울 할머니.

한 숟가락 받아먹으면 거뜬히 일어날 것 같은데.....,

 

아! 콩죽 먹고 싶다.










 

 

2010년 5월 11일

몸살 끝..., 할머니 콩죽 먹고 싶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