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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국


BY 박예천 2009-10-20

 

              곰치국

 

 

‘이거 한 그릇이면 될 거야!’

묵은 김치 한포기 꺼내 담으며 혼잣말 해본다.

사나흘 밤새 앓던 남편의 감기를 곰치국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심산이다.

나이를 먹는지 남편도 계절 바뀌는 틈새에 끼어 못견뎌한다. 예전 같으면 하루 만에 거뜬히 일어나곤 했는데, 역시 세월은 거스를 수 없나보다.

지어온 약도 효험이 없어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입안이 깔깔 하다며 못 먹는다.

이럴 땐 정성담긴 음식이 보약보다 나을지도 모르는데 뭘 해준다지.


시장에 가서 잘 손질한 곰치 한 마리를 샀다. 알과 애가 듬뿍 담겨 있는 것이니 딸아이도 좋아하겠지.

친정어머니가 보내주신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둔다. 달리 요리법을 알아둔 것도 아니고 그저 내식으로 끓여보기로 했다.

다시마 육수를 만들었다. 김치를 넣어 조금 끓인다. 씻어둔 곰치도 넣으니 더욱 푸짐하게 끓는다. 국물이 시원하라고 콩나물도 집어넣는다. 

파 마늘도 듬뿍 얹었다 이제 푹 끓이기만 하면 된다. 밑간은 김치에 들어있고 소금이나 기호에 따라 조미료로 간을 더하기 한다.

어떤 음식이든 부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제 맛을 잃는다.

한참 지나니 온 집안에 곰치국 냄새가 가득하다.


거실 장의자에 간신히 누워있는 남편을 부른다.

상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빨리 식지 말라고 일부러 옹기그릇에 곰치국을 담았다. 청포묵처럼 흐물대는 생선토막을 잘 담아내 남편에게 내밀었다.

“아! 맛있다. 시원하네."라고 조그맣게 말한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맛있게 먹었으니 약이 되었을 거다.

밥공기는 몇 술 뜨다말고 곰치국 한 사발을 다 마시듯 넘긴다.

 


곰치국은 속초에 이사 와 살면서 알게 되었다. 유명한 음식점이라며 소개받은 곳에서 먹게 되었다. 술 좋아하는 남자들의 해장국으로 더 잘 알려진 음식이기도 하다.

숙취해소에 그만이라는 것.

사실 곰치라는 생선모양이 어찌나 못생겼는지 징그럽기만 했다.

허여멀건 것이 중앙시장 어판 대에 올려있는 모습이라니. 마치 비계 덩어리가 수북이 쌓인 정육점인가 했다.

도저히 음식으로 마땅한 생선은 아니라고 여겼다. 슬쩍 비위에 거슬리기도 했다.

우연히 맛본 곰치국 맛에, 국속에 어우러진 생선이 바로 허여멀건 그것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겉모양새로만 곰치를 음식물 재료에서 실격처리 했는데 말이다.

진국인 녀석을 몰라봤다.


젓가락으로는 절대 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물컹거리는 생선살.

한 숟가락 떠서 후루룩 마셔야 한다. 어느 것이 국물이고, 무엇이 생선살인지 알아내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가시는 억세다. 여린 살을 버틴 골격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날카롭다. 끓이다 보면 저절로 살과 뼈가 분리된다.

곰치국을 마신(?) 남편의 안색이 밝아졌다.

“어때? 역시 부인밖에 없지?”

반 억지 식으로 인정받아내려 알랑방귀를 뀌어본다. 남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부부로 만나 여태 살면서 내 언제 곰치국 마냥 슬슬 흘러 넘어간 적 있었던가.

꼭 따져 물어야 하고 뭐든 알아내야 직성이 풀렸으며, 잔소리를 달고 살기만 했지.

억센 가시로 다가서고 돌기 잔뜩 세운 태도였으니 저사람 병이 날만도 하다.

남편생일 하루 전날 곰치국 한 사발 끓여주고, 나는 거하게 부끄럽구나.


마른 미역을 불린다. 횡성한우 국거리도 핏물 빼놓아야지.

생일 아침 미역국이라도 뜨끈히 상에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밉든 곱든 아이들 낳고 잘 살아냈구나 싶다. 굽이굽이 아픔도 추억도 간직한 채, 우리는 그렇게 세월을 엮는다.

애써 씹지 않아도 저 혼자 목구멍을 넘는 곰치국 처럼.

 

 


여보, 남편 동지!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 그렇게 우리 남은 인생도 넘어봅시다.

생일 축하해요.



 


2009년 10월 20일

남편 생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