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폭탄
아찔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위협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끔찍하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단순하게 여겨보려했으나 여전히 뒤끝이 찜찜하다.
어제 오후의 일이다.
유뽕이를 미술학원 보내놓고 근처 제과점에 가려던 중이었다.
지인이 며칠 전 교통사고로 입원한터라 좋아하는 케이크 좀 챙겨가려던 참이었다.
평소처럼 같은자리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내리려는 순간이다.
걸음을 막 내딛으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잘 아는 후배이다. 문병 가는 중이면 동행하자는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딱!’하는 소리였는지, ‘퍽!’이었는지 굉장한 폭발음이 들렸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 너 발짝 걸어갔다면 내 머리위에 고스란히 떨어질 상황이었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통화를 하느라 주저하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비명소리와 함께 말을 멈추자 후배가 놀란다.
“왜 그래요? 일단 전화를 끊어요!”
“아니.....어...., 저기..., 이게 뭐지? 얼음덩어린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서너 살 된 여자아이와 곁을 지나치던 아낙이 대신 답해준다.
“어머! 저거 큰 물주머니네요. 세상에!”
제과점은 주차공간이 없어 늘 바로 옆 아파트주차장에 세우고 일을 보곤 했다.
꼭대기쯤에서 떨어졌으니 14층일까, 15층이었을까.
한참을 멍하게 서서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놀란 심장이 옥죄어오며 뻐근하게 아파온다.
2000년 교통사고이후 약해진 심장의 고통이 그날마냥 되살아나며 욱신거린다.
또 몇 시간을 이러겠지.
재수 없었다, 운이 좋았다 코웃음 치며 넘겨버릴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후배의 전화가 때마침 오지 않았다면, 정확한 지점을 걷던 내가 어찌 되었을까.
가늠할 수 없는 상대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오스스 공포가 밀려왔다. 세상 험해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무섭다.
거리를 나서는 일도, 제 속도 안전하게 지키며 신호위반 하지 않건만 시시때때 들이대는 무법자들도 두려운 대상이다.
세상에 태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지닌 생각은 이렇다.
적어도 남에게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해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파트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책임자인 듯한 남자가 나온다.
방금 전 소리를 그 사무실 안에서도 들었다고 한다.
목격한 장면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관리사무소 측에서 취할 안내방송이랄지 사후 관리도 부탁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아니건만, 지나친 오지랖일까 주저되었으나 말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수도 있겠다싶었다.
언제인가 뉴스보도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고층에서 던진 물 풍선에 맞은 아이가 실명되었다는.
높은 위치에서 무게가 실리니 굉장한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넘기기엔 머릿속이 아직도 어지럽다.
도처에 숨어있을 무모한 돌팔매에 엉뚱한 사람들이 다치지는 않을지.
하루하루 살아있는 자체가 모험이다.
2009년 7월 8일
물 폭탄 떨어지던 어제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