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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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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것


BY 박예천 2009-05-19

 

                 몹쓸 것

 

 


보기 싫은 사람과도 세월 부대끼다 보면 미운정이나마 든다.

낯 설은 장소이거나 행동도 자주 대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허나 이 몹쓸 것하고는 이가 갈리도록 친해지지 못한다.

올해로 꼭 십년이다. 이쯤 되면 이웃이 될 만도 한데 영 꼴사나워 피하고만 싶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여름초입부터 난리굿을 피우는가.


삼 십도를 웃도는 때 이른 더위가 무엇이든 녹여댈 기세였다.

아이의 하교시간 맞춰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다. 잘 달구어진 차체에선 후끈거리는 열기가 가득했다. 문은 열었으나 운전석으로 궁둥이를 들이밀기 주저되었다. 

엿가락처럼 녹아내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환기라도 시켜 볼 요량으로 양쪽 차창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칼날을 번뜩이며 대든다. 긴 혀를 널름거리는 거대한 우주괴물이 저러할까. 온통 흙먼지 끌어안고 침입하는 무법자 수준이다.

서둘러 창문을 끌어올렸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할 수없이 에어컨 버튼을 누른다.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길바닥 배회하는 녀석을 째려본다. 저 혼자 돌아다닐 일이지 온 동네 쓰레기는 어쩌자고 산발적으로 흩날리게 하는가. 

좀 나긋하고 부드럽게 찾아오면 얼마나 좋으랴. 살랑거리고 나풀대는 초록 잎을 보며 고맙게 생각하련만.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던 동요 속 착한 내용은 사라지고 없다. 그와 상반된 엉뚱한 한 무더기가 하루 온종일 항구도시를 들썩이고 있을 뿐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겪어냈다.

꼭 밤에만 통곡하며 들이대는 통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혼자는 계면쩍은지 엄청난 부스러기들을 대동하고 나선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휩쓸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다. 미친 여자 치맛자락 찢어놓듯 쑤셔놓아야 지랄병이 끝난다.

해마다 예고 없는 발작에 이골이 난다. 심술이 어느 한 대상에게만 초점 맞춰져 있다면 미리 준비나 하지.

불특정다수를 향한 무고한 행패에 시도 때도 없이 당하고 산다. 


운전하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구르는 바퀴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가 하면 차체가 들썩이기도 한다. 핸들이 좌우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옆 차선에서 나란히 운행되던 자동차가 뒤뚱거리다가 슬쩍 내 곁으로 다가서려 한다. 이 또한 녀석의 장난이다.

앞면 유리가득 모래알을 일순간 뿌려대기도 한다.

어디에고 고발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기관이 없다.

가지가 꺾여나가 나뒹구는 가로수도 있다. 난전에 있던 파라솔이 아득하게 날아간다.  길가에 세워 놓았던 오토바이도 저만치 거센 힘에 쓸려 나가는 중이다. 뭐 하나 제자리 지키는 것이 없다. ‘혼을 쏙 빼 놓는다’라는 말이 적절히 쓰이는 순간이다.

꽃처럼 차려입은 여자들도 종종걸음 치기 바쁘다. 어쩌다 꺼내 입은 짧은 치마가 홀라당 뒤집힐까 손으로 여미느라 정신없다. 머리카락마다 제멋대로 범벅이 되니 미인의 기준 세우는 일이 이럴 땐 무색해진다.

추운겨울이라면 꽁꽁 털옷 싸매기라도 하지. 염천에 발광하는 작태에는 대책이 없다.



이쯤해서 여태 침 튀기며 흉본 장본인을 소개할까 한다.

이름도 거창한 속초바람이다.

앞서 말한 일들 외에 벌여놓은 끔찍한 그림들은 직접 목격해야 진상을 알 수 있다.

차마 눈 뜨고 거리를 활보할 수 없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흙먼지가 입과 코는 물론이요, 귓구멍에까지 안착 식을 거행하게 만든다.


속초토박이들도 정들지 못하는 것이 바람이라하니 가히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는지 짐작되지 않는가.

예전엔 상가의 간판이 나뒹굴고 바닷가 집들은 지붕이 날아갔다는 바람이다. 

살살 불어댈 미풍이 아니라면 속초바람은 영락없이 불청객이다.

 

낮 동안 힘썼으니 지칠 만도 하건만 여전히 거뜬하다. 밤이 이슥토록 꺼이꺼이 목쉰 소리를 내고 다닌다.

제 욕하는 양을 아는지 유독 내가 앉아 불 밝힌 창 앞에서 서성거린다. 

잠버릇 예민한 탓에 이 밤도 잠들기는 포기해야 하나보다.

몹쓸 놈의 바람 같으니.

바람도 성별이 있을까? ‘놈’자를 붙여놓으니 그럴싸하다.

바람과 상관있을 여러 ‘놈’들께서 귀 꽤나 간지러울 밤이겠구나.




2009년 5월 19일 새벽으로 가는 시점에.

성난 속초바람 꾸짖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