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슈즈
원주 시댁에 갔을 때 얼음 빛의 시원한 신발을 보았지요.
신어보니 가볍고 편했습니다.
“어머! 어머니 이 신발 참 좋네요. 어디서 나셨어요?”
호들갑스런 며느리를 보시더니, 너 신어라 하십니다.
달라는 말보다 아예 발을 디밀고 신었으니 마지못해 주십니다.
못이기는 척 사양한번 안하고 널름 받아 신었지요.
속초까지 달려와서 나들이 때마다 신고 다닙니다.
그 신발이름이 ‘젤리슈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거리마다 예쁘게 생긴 종아리 밑에 젤리슈즈를 달고 다닙니다.
아가씨들과 어린 아이들까지 온통 젤리슈즈 바람이 들었지요.
유행도 모르는데 얼떨결에 저도 한 자리 끼어봅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물렁하게 엮어진 틈새에 발가락들도 숨을 쉽니다.
이삼일 전부터 딸아이 얘기 속에 젤리슈즈 냄새가 잔뜩 묻어있습니다.
못 알아들은 척 하니, 내용을 바꿔가며 엄마의 귀에 소곤거립니다.
“엄마, 젤리슈즈가 말이야 샌들도 있지만 슬리퍼로도 나왔던데?”
“으응....나두 알아. 봤어.”
사주지 않겠다는 대답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오후.
간식을 먹으며 또다시 조잘거리기 시작합니다.
“어젯밤에 꿈을 꿨거든. 근데, 내가 젤리슈즈를 신고 막 다니는 거야.”
빙빙 돌려서 엄마에게 젤리슈즈 신고 싶은 마음을 전합니다.
아하! 대단한 대화의 처세술입니다.
사달라는 말보다 더 무서웠지요.
엄마가 할머니신발을 빼앗다 시피 가져온 사실을 기억하고 있나봅니다.
이쯤해서 딸에게 속아줘야 모녀사이가 돈독해지겠지요?
학원에서 오는 길에 좌판에 늘어놓은 것을 본 모양입니다.
사천 원이라며 값까지 알고 있습니다.
사전 시장조사를 철저하게 마친 당당한 요구였지요.
허허 웃으며 천원지폐 넉 장을 건네주니 부리나케 현관문을 나섭니다.
신어보고 샀는지 검은 비닐봉지에 신던 신발을 싸들고 왔지요.
이제 동네방네 자랑할 단계입니다.
강아지를 끌고 놀이터로 직행했지요.
바글거리는 아이들 속에서 젤리슈즈에 모래라도 묻을세라 까치걸음을 걷고 있더군요.
오늘 밤 딸아이의 꿈이 빛날 것만 같습니다.
유리구두의 신데렐라가 되어 왕자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
2005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