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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19 - 다 됩니다


BY 박예천 2013-08-01

             

            다 됩니다

 

 

 

 

유뽕이 키우면서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녀석을 씻기는 일입니다.

장애가 있는지라 대중목욕탕은 생각도 못하고, 집에서 해결하는 편인데, 덩치가 커갈수록 엄마는 진땀을 흘리지요.

애기였을 때는 달랑 들거나 안기가 편했지만, 나이가 더해질수록 힘이 듭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아빠랑 둘이 욕실로 떠밀다시피 들여보냈습니다.

아들이니까 엄마보다 힘 좋은 아빠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부자지간 알몸으로 거품 풀고 씻는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있노라면 한바탕 싸우는 것만 같습니다.

지시에 제대로 따르지 않는 유뽕이를 향해 아빠는 엄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자신에게 뭔가 혼내는 말투라 여기는 유뽕이는 계속 징징거리기만 합니다.

참다못한 엄마가 끼어들 때도 있습니다.

“자기야! 좀 부드럽게 칭찬하면서 시켜봐! 그럼 잘 한단 말이야!”

“알았어!”

아빠도 대답은 알았다 하면서 실상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상냥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익숙했던 언어표현이 아니라 어색해서 그럴 겁니다.

좋아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등등의 말들을 자주 하지 않으니까요. 가족이니까 다 알아주려니 일일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며 지내온 터라 새삼 바뀔 리가 없지요.

이젠 아빠도 늙어가나 봅니다.

아들 씻기고 나오는 표정을 보면 파김치가 다되어 있으니까요.

“아휴! 진짜 힘들어 죽겠다! 저 녀석 혼자 씻는 법 좀 가르쳐야겠어. 때 밀어주는 것은 내가 하더라도 샤워정도는 할 수 있게 말이야!”

투덜거리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는 속으로 많이 미안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엄마의 책임인 것만 같았어요.

진즉에 가르쳐보려 했지만, 떼쓰며 울어대는 아들 앞에서 맘 약하게 무너지곤 했지요.

설사 혼자 씻는다 해도 지켜보면 어찌나 엉성한지 엄마 손이 한 번 더 가야 했습니다.

샴푸거품 풀어 머리감는 걸 시키면, 머리중앙에만 몇 번 문지르다 대충 헹궈내는데 비눗기가 그대로 남아있어 안심되지 않았지요.

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석구석 골고루 닦지도 않고 가슴과 배만 몇 번 문지르다 말거든요.

부족한 아들을 믿지 못하고 매번 엄마가 진땀 흘리며 닦아준 겁니다.

 

중학교 2학년 형아가 되었다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유뽕이.

아빠가 단단히 맘을 먹었는지, 매일 욕실에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첫날은 샤워하는 내내 거의 괴성만 들립니다. 중간에 참견하고 싶어 안달이 난 엄마는 그걸 참느라 안절부절 합니다.

아들이 울어도 설마 친아빠인데 죽이기야 할까요.

그럼에도 속이 아프네요. 다른 아이들은 식은 죽 먹기로 습득하는 일상생활훈련도 울 유뽕이에겐 거대한 고통이며 공포로만 다가오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다음날도 아빠는 유뽕이를 부릅니다.

“유뽕아! 아빠랑 샤워하자!”

“왜요? 싫어!”

소리 지르며 거부합니다. 몇 번을 달래고 이해시켜서 욕실로 들여보냈지요.

또다시 아빠와 싸우는 소리가 밖으로 들립니다.

그래도 첫날보다 약해졌고 샤워시간도 많이 짧아졌네요.

팬티만 입은 유뽕이가 젖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립니다.

엄마는 다가가서 칭찬을 넘치게 해주었지요.

“우와! 울 유뽕이가 다 컸네! 혼자서 샤워도 척척하고 말이야. 최고!”

엄마의 격려에 당연한 듯 따라하기식의 자기 말을 하는 유뽕이.

“네에! 정말 유뽕이가 잘 컸지요? 정말 최고지요?”

엄마 말을 인용해서 자기말로 대꾸합니다.

 

오랜 연습의 결과일까요.

엊그제부터 유뽕이는 혼자서 샤워를 순서에 따라 말끔하게 하고 나옵니다.

방학 중 ‘희망누리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휙 던져놓고 욕실로 갑니다.

그러면서 엄마를 향해 들릴 듯 말 듯 한마디 한답니다.

“엄마! 유뽕이 샤워 좀 할게요.”

궁금증에 참지 못한 엄마가 살금살금 욕실 문틈으로 아들의 벗은 몸(?)을 훔쳐봅니다.

건장한 청년이 샤워를 합니다.

샤워기를 벽면 고정 틀에 꽂아놓고 쏟아지는 물줄기 맞으며 샴푸도 풀고 제법 하네요.

아빠가 순서를 제대로 알려준 모양입니다.

바디클렌저를 짜내어 구석구석 잘 닦아내고 목욕타월 길게 잡은 채 등도 쓱싹쓱싹 문지릅니다.

잘 헹궈내고 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물기를 닦습니다.

속옷까지 챙겨 입더니 젖은 머리를 드라이어로 탈탈 털어가며 말리네요.

스스로 잘 할 수 있는데도 기회를 주지 않았던 엄마는 순간, 미안해지고 후회가 됩니다.

못난 엄마가 아들을 망칠 뻔 했습니다.

저렇게도 잘 해내는 것을 말이지요.

유뽕이가 스스로 샤워를 하고나니 일이 한결 줄어들었다며 아빠는 좋아합니다.

언제나 맘 약한 엄마가 문제입니다. 강하게 훈련시켜도 될 것을 주저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아빠가 해결해 주어 다행입니다.

 

느리고 천천히 걷지만 울 아들도 다 됩니다.

하나하나 알려주기까지가 힘겨워서 그렇지 일단 습득한 것은 잊지 않습니다.

단박에 알아듣는 친구들에 비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도 될까 말까 불안한 울 유뽕이.

초스피드로 세상은 바뀌고 흘러가는데 청하태평인 내 아들.

굼벵이 걸음이어서 그렇지 불가능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 됩니다!

 

 

2013년 8월 1일

혼자서 샤워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