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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뽕이 시리즈 112 - 엉터리 간병인


BY 박예천 2013-04-23

 

엉터리 간병인

 

 


 


주말 내내 엄마와 아빠는 1층 서재에 짐을 2층 방으로 옮겼습니다.

덩치 큰 책장에서부터 무거운 책들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날랐지요. 아빠물건이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책도 엄청난데, 카메라, 낚시도구, 컴퓨터기구들, 음향기기까지 어느 한 집의 이삿짐만큼 되더군요.

아침부터 늦은 밤이 다되도록 개미떼처럼 짐꾼이 되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나중엔 선뽕이 누나까지 합세하여 가족애를 발휘했지요.

다만, 우리의 유뽕군만 뺀질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몸집은 제일 큰 녀석이 종잇장 하나를 나르지 않네요.

뭐라도 시켜보려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징징대거나 사고를 쳐놓기 일쑤이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렇지. 참 괘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휴! 유뽕이만 놀고 있구나! 좋겠다!”

아래 위층으로 날아다니던 선뽕이누나가 비아냥거리듯 한 소리를 합니다.

누가 뭔 소리를 하든 녀석은 콧노래 흥얼거리며 인터넷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지난 2월 영흥대교앞에서 누나랑 찍은 사진입니다. 누나보다 크지요^^)

 


일요일 밤이 되자 엄마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허리며 팔다리도 손가락하나 꼼짝할 수 가 없이 아파오네요. 나중엔 발바닥도 저려오는 듯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엄마는 평소 애용(?)하는 전기 찜질팩 깔고 허리를 지져댑니다.

입에선 자꾸 끙끙 신음소리가 나옵니다.

“아이구! 죽겠다. 아휴! 허리야!...., 아야! 어깨야! 팔, 다리, 종아리야!”

방안에 있던 유뽕이가 엄마의 앓는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옆에 앉네요. 한참동안 어깨 주물러 주다가, 오른손을 엄마 허리 밑으로 들이밀고는 열과 성 다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허리 안 아프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믿습니다! 아멘!”

어디서 많이 듣던 억양 같아서 녀석에게 물어봤습니다.

“엄마 기도해주는 거야? 근데, 누가 그렇게 기도하는데?”

“목사님이요!”

교회에서 본 걸 엄마에게 또 실습중입니다.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 유뽕이.

몸을 돌려 누워보려는 순간, 이번엔 엄마 어깨가 빠질 듯 아픕니다.

“아..아! 어깨야!”

사이비교주님이 잽싸게 달려옵니다.

녀석만의 치료법을 과시할 모양입니다.

“하나님! 어깨 안 아프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믿습니다! 아멘!”

끝부분에 ‘믿습니다!’를 어찌나 세게 강조해서 외치는지 진짜 짝퉁 목사님 같았습니다.

녀석 딴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도했건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엄마는 계속 앓는 소리만 깊어집니다.

나중엔 안 되겠는지 주방으로 달려가 자기가 먹던 시럽감기약에 들어있던 조그만 플라스틱 컵에 물을 담아옵니다. 

말없이 컵만 엄마 허리춤에 갖다 댑니다.

“어머! 너 뭐하는 거야? 물 흘리면 어쩌려구?”

간병인의 치료법도 무시하고 엄마는 함부로 말해버렸습니다.

감기약 먹듯 아픈 허리에 대면 낫겠다는 생각일까요?

하여간 귀찮은(?) 녀석의 간병 덕에 엄마의 허리는 억지로 차도를 보였습니다.


월요일이 되어 유뽕이는 학교에 갔는데, 이번엔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자꾸 인상이 찡그려지고 눈까지 아파오네요.

오후에 녀석이 하교한 뒤에도 엄마는 또 누워 빌빌거렸습니다.

아! 아무리 아파도 입 밖으로 티내지 말아야했습니다.

얼떨결에 나온 소리에 유뽕간병인이 새로운 치료법을 실행하고 말았네요.

“아이구! 머리야!”
“엄마! 머리 아퍼요?”

“으응..., 여기가 너무 아프다 유뽕아!”

그러고는 잊었습니다.

잠시 누워 쉬면되겠거니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뭔가 부스럭 부스럭 다가오는 소리.

눈 깜짝 뜨기도 전, 엄마 이마에 소름끼치도록 찬 결정체가 내려앉습니다.

“어? 이게 뭐야? 얼음이잖아! 유뽕아, 너 왜 그래 차가운데.....,”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요.


엄마는 곧 미안해지고 말았습니다.

유뽕간병인의 순수한 정성을 매몰차게 밀어낸 꼴이네요.

머리 아프다는 엄마가 열이 나서 그런 줄 알고, 냉동실에서 얼음 한 조각을 꺼내 이마에 얹어본 겁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의술을 전수받은 적도 없는 유뽕 아들의 끔찍한 엄마사랑이었지요. 

그제야 엄마는 껄껄 웃으며 녀석에게 넘치는 칭찬멘트를 날립니다.

“우와! 유뽕이가 치료해줘서 머리 안 아픈 걸. 울 아들이 역시 효자야!”

효자가 별 건가요.

엄마 맘 알아주고 부모의 기쁨이 되면 그만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2013년 4월 24일

지극한 간병으로 거뜬해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