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들 아니야!
정신없이 콩콩거리던 하루가 지나고 밤이 깊었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 비누냄새 풍기는 아들 곁에 누웠을 때가 엄마에겐 제일 큰 행복입니다.
저녁기온이 제법 쌀쌀해지기에 아끼던 극세사이불을 장롱에서 꺼냈지요.
커다란 침대에 엄마와 아들이 누웠습니다.
“유뽕아! 엄마이불 같이 덮을까? 이거 따뜻한데....,”
“싫어요!”
단칼에 거절당하고 나니 조금은 서운해집니다.
덩치가 커지면서 이불 한 개로는 부족합니다. 자다보면 녀석이 이불을 돌돌 말고 있으니까요.
한 침대에 누웠지만 각각 다른 이불을 덮고 잡니다.
애기 때부터 엄마는 유뽕군 혼자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체취나 손길이 없으면 자다가도 깨어 울기 때문에 아빠를 밀어내고 할 수 없이 젊은 남자(?) 품으로 간 것입니다.
누나 방으로 밀어내려고 이층침대도 사보고, 유뽕이 방을 꾸며줘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절대 엄마만큼은 아빠에게 양보하기 싫은 것이지요.
형아가 되면 혼자 잠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여러 번 알려주고 따로 자기를 시도했으나 잠결에도 깨어 엄마를 찾아옵니다.
“야, 짜식아! 내 여자를 왜 니가 끼고 자냐구!”
아빠는 가끔 너털웃음이거나 장난기 섞인 푸념을 해보지만, 아들의 달콤한 잠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허락 한 셈이지요.
엄마와 유뽕이는 잠자리에 누운 시간 가장 많은 대화를 합니다.
“유뽕아! 오늘 말도 이쁘게 하고, 화내지도 않아서 정말 고마워! 최고 멋진 아들이야! 훌륭해!”
생각나는 찬사의 말들이 전부다 동원되어 칭찬꾸러미 속에 담깁니다.
유뽕이는 긴 대답대신에 정해진 코스로 애정고백을 하지요.
“나는 엄마를 사랑합니다!”
“유뽕이는 엄마만 좋아해요!”
어느 날은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 잠꼬대처럼 ‘사랑합니다!’를 중얼대곤 합니다.
어젯밤에도 엄마 목을 휘감고 뽀뽀세례를 퍼붓기 시작하더군요.
이젠 엄마의 할 말을 유뽕이가 먼저 해버립니다.
‘쪽!’소리 나게 엄마 볼에 입을 맞추더니 “엄마, 징그럽죠?” 하는 겁니다.
“그래, 으이구 징그럽다!”
했더니, 녀석은 뽀뽀한 엄마 얼굴부분에 뭔가 붙은 걸 떼어내는 것인지 양 손으로 집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말합니다.
“엄마, 뽀뽀 버려요!”
유뽕이가 침대 밖으로 손안에 든 “뽀뽀”를 내 던져 버리더군요.
가끔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 다 큰 녀석이 입을 맞춰대는 통에 엄마가 창피하다며 뽀뽀를 버린다고 했거든요.
나이는 열 네 살인데 하는 짓과 말투는 아직도 애기입니다.
엄마 눈에는 귀엽기만 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 한숨 나올 지경이겠지요.
(얼마전 아빠랑 등산갔을 때 사진입니다. 이젠 청년(?)의 모습이네요^^)
아빠랑 부부싸움 하고 화해를 하지 않은 상태가 며칠이나 되었습니다.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지내지요.
졸음 쏟아지는 유뽕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늘 하던 식으로 물어봅니다.
“유뽕아! 엄마를 왜 사랑해?”
“아들이니까 사랑하지!”
“넌 누구 아들이야?”
“엄마 아들이요!”
아무리 부부싸움 끝에 미운 아빠라지만, 아들에겐 인자한 아빠로 여기게 하고 싶습니다.
“아니지 아빠아들도 되는 거야. 아빠가 유뽕이 많이 사랑하잖아!”
유뽕이가 쉽게 인정하며 대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싫어! 아빠아들 아니야! 엄마 아들만 할 거야!”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거실에 있는 아빠가 듣는다면, 부부사이 삐친 일로 아들을 세뇌시킨다고 생각하겠네요.
잠이 달아나려는지 몸까지 들썩이며 거부를 합니다.
“아빠아들 하기 싫단 말이야! 엄마 아들이야!”
겨우 녀석을 달래주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뽕아! 너는 엄마아들도 되고, 아빠아들도 되는 거야. 그래서 ‘엄마아빠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해가 되는지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모기소리 만하게 중얼거립니다.
“아빠와 유뽕이는 부자(父子)!”
인터넷 게임에서 배운 것이 생각났던 겁니다.
유뽕이 녀석 때문에 간이 졸아붙을 지경입니다.
만약 이 말을 시댁어른들 다 모인 곳이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다면 엄마는 얼마나 어이없는 사람이 될까요.
“난, 아빠아들이 아니야!”
그렇다면, 엄마는 누구의 아들을 낳은 것이냐고요!
졸지에 정숙하지 못한 여인이 되어버릴 뻔했다고요.
이게 뭡니까?
유뽕이 나빠요!
2012년 10월 12일.
유뽕이에게 애비존재를 각인 시켜주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