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좋은 남매 2
“선뽕아! 이것 봐라. 엄마가 네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 유뽕이 도와주는 참 좋은 누나라고 말이야. 근데, 너 약간 찔리지 않냐? 좋은 누나라는 말에....”
자기 이야기를 글로 올렸다고 하니 누나는 기분이 좋은지 입이 헤벌어집니다.
“엄마, 그것도 써봐 우리 둘이 잘 하는 거 있잖아!”
이번엔 엄마에게 글 소재까지 던져줍니다.
자기가 등장인물로 나왔다고 하니까 이왕이면 역할배정에 최선을 다할 모양입니다.
선뽕이가 던져준 이야기를 펼쳐봅니다.
누나는 여섯 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답니다. 수준급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곡은 척척 연주하지요.
공부하다가 지치거나 심심하면 예전 엄마가 사용하던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명곡에서부터 만화주제가나 복음성가를 둥당거리면 부엌에 있던 엄마는 잽싸게 달려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성가대 연습량이 부족할 때도 누나의 피아노 반주가 큰 도움이 됩니다.
음을 못 잡아 쩔쩔매는 엄마 위해 제 음을 콕 집어주며 알려주니까요.
요즘 선뽕이누나가 빠져있는 곡은 일본애니메이션 삽입곡입니다.
자주 듣다보니 엄마도 어느 순간 멜로디를 익혀버릴 정도가 되었지요.
사실 선뽕이보다 천재적인 재능이 뛰어난 녀석은 유뽕입니다.
유뽕이가 절대음감이라는 것은 이미 지역 전문가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계이름도 잘 모르면서 한 번 들은 곡을 제대로 연주해 냅니다.
리코더나 멜로디언도 배우지 않았는데, 아무곡이나 음을 딱 맞춰서 듣는 이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하지요. 실로폰 역시 배운 적이 없지만 즐겨 치는 악기입니다.
이런 유뽕군이 누나가 연주하는 곡을 놓칠 리가 없습니다.
피아노앞에 앉아 귀에 익은 곡이 들리기만 하면, 자기 방에서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있다가도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손에는 반드시 녀석만의 전용악기가 들려있고요.
누나가 치는 빠르기에 맞춰 멜로디언을 부는 유뽕이 얼굴을 들여다보노라면 웃지 않을 수가 없지요. 어찌나 심각한지 숨소리조차 죽이고 진지해져야 한답니다.
기분이 내키면 실로폰 들고 피아노 두들기는 누나 옆에 다가가 딩동댕 손목에 힘을 줍니다.
그 소리가 어떤지 아세요?
일류 연주가의 듀엣 화음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답게만 들립니다.
물론 팔불출 엄마만의 평가이니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헌데, 선뽕이 누나가 가끔 얄미운 짓을 한답니다.
일부러 곡의 빠르기를 알레그로 몇 배가 더해진 박자로 쳐댑니다.
유뽕이가 따라하지 못하려는 속셈이지요. 그 와중에도 유뽕이는 박자 놓칠세라 현란한 손놀림으로 손가락을 움직이지요.
밥하던 엄마가 듣다못해 물기 젖은 손을 닦지도 않은 채 달려옵니다.
“에이, 못된 기집애! 동생 좀 따라하게 해줘라. 그게 뭐냐?”
핀잔주는 엄마 눈이 옆으로 찢어지는 게 재밌는지 선뽕누나가 더 크게 웃습니다.
어젯밤엔 유뽕군이 엄마한테 호되게 맞았답니다.
되도록 때리지 않으려고 굳세게 마음먹던 엄마에게도 용서하지 못할 부분은 있지요.
생떼 쓰거나 엄마를 때리려 드는 일은 꾸짖는 편입니다.
악쓰며 대드는 유뽕이 달래보다가 엄마 우습게 아는 건 안 되겠다 싶어 매를 들었습니다.
기다란 주걱이 유뽕이 전용 맴매입니다.
이미 오래전 맞다가 이가 빠졌지만 엄마는 일부러 버리지 않고 요리할 때 사용합니다.
마음을 다잡는 도구로 삼고 싶어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매를 들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엄마이지만 과감히 매를 들었습니다.
울다가 콧물 눈물범벅이 된 녀석이 “엄마! 잘못했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라고 할 때는 솔직히 속이 아려옵니다.
화가 난 엄마가 소리쳤습니다.
“너, 자꾸 이렇게 미운소리 하고 화내면 엄마랑 살 수 없어. 유뽕이 그럼 누구랑 살 거야?”
질문에 맞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유뽕군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누나랑 살 거야!”
근엄해야 하는데 엄마 입에서 웃음이 나오려 근질거립니다.
꾹 눌러 참고 다시 무게 잡은 목소리로 선포했지요.
“엄마는 화 잘 내고 시끄러운 남자는 싫어! 조용히 생각하고 있는 남자가 더 좋아!”
엉엉 소리 내어 울던 유뽕이가 엄마 말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울다말고 갑자기 집게손가락 펴더니 이마 옆머리에 찍으며 눈 감고 폼을 잡는 겁니다.
생각하는 로댕이 된 것이죠.
웃음이 폭발지경에 이른 엄마는 참느라 이젠 배가 아플 정도입니다.
진정시키고 꼭 안아주었지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려는데 잠시 후 유뽕군이 달려옵니다.
“엄마! 여기 약 발랐어요!”
평소엔 연고만 바르면 촉감이 싫어서 곧바로 수건으로 닦아버리는 녀석입니다.
“어? 왜 발랐어?”
팔과 다리에 옷 걷어 올리며 엄마를 향해 정확히 지적해 줍니다.
“여기요, 엄마가 때려서 약 발랐어요!”
과연 하얀색 연고가 묻어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닦아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약서랍에 가 봅니다. 도대체 녀석이 무슨 약을 찍어 발랐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세상에나! 연고 뚜껑이 열린 채로 책상위에 있네요.
바로 엄마 발뒤꿈치 갈라진데 바르는 약이었답니다.
엄마한테 맞은 곳이 아프게 갈라지기라도 한 것일까요. 최대한 겁만 주고 약하게 때렸는데 말이지요.
엄마가 맘에 안 들면 누나랑 살면 된다고 엄포라도 놓고 싶은 것이 유뽕이 마음인가 봅니다.
이렇게 누나 사랑에 빠진 녀석 덕분에 잠시 외면당한 엄마였지만 마음만은 든든한 저녁이었습니다.
유뽕이로 인해 매 순간이 모험이고 드라마입니다.
물론 우리가족 모두 조연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이고요.
출연료는 누가 줄 까요!
2012년 10월 11일
누나사랑 유뽕이 매 맞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