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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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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9)


BY 박예천 2010-09-10

 

* 98년 9월 15일 (화) - 날씨 : 비오다 갬

 

 

참으로 오랫동안 너에게 편지를 적지 못했구나.

여러 가지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이젠 이층에 올라오는 일도 내겐 힘이 든다.

몸이 무거워 그런 것은 아니고, 계단을 오르는 일이 싫어졌어.

그러다 보니 너에게 글을 적는 일도 뜸해진다.

 

실은 그보다도 아가야!

가을을 타는가보다.

왜 그런지 자꾸 우울해지고 이유 없이 짜증도 난다.

애꿎은 너의 아빠에게만 화풀이를 하고 있단다.

아빠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

그러나 마땅한 대상이 없구나.

그냥 참으면 될 일이지만 어디에고 푸념을 늘어놓을 대상이 없어.

이웃집 아줌마부대와 친한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어서 신세한탄이라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래서 화살은 자꾸 너의 아빠 전ㅇㅇ씨 한테 돌아가지.

네 아빠 아주 불쌍한 남자야.

좀 더 풍족하거나 많이 배웠으면 지금보다 나은 여건과 배우자를 만나 큰 뜻을 펼치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지.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할 거야.

좋은 환경을 만났으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지.

운명 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주어진 환경을 어느 만큼 잘 살아내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

갖추어진 조건들을 누리며 사는 미련한 사람보다는,

없는 환경을 개척하며,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아가, 너에게도 바란다.

 

 

너는 분명히 나와 여러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직 무엇으로도 너의 존재를 느낄 수는 없지만,

그저 내 속에서 나와 함께 호흡을 한다는 막연한 느낌으로 너를 본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아가야.......!

나는 너를 키우며 얼마나 또 우리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려야 할까.

좀 추워지는 기온이다.

분명히 가을은 왔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