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결혼 전 같이 살집에 대한 이자부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01

유뽕이 시리즈 24 - 기뻐져요


BY 박예천 2010-09-09

        

        기뻐져요



 

엄마는 가끔 꿈을 꿉니다.

잠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당연히 유뽕이녀석이지요.

누군가 나타나서 물어본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한 가지만 말해보아라!”

망설일 틈도 없이 엄마가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저를 세포보다 더 작게 만들어주세요!”

순식간, 꿈속 엄마는 눈에 뜨이지도 않을 현미경속에서만 보이는 아주 작은 크기로 변해버립니다.

쿨쿨 자고 있는 유뽕이 입속으로 쏙 들어갑니다.

핏줄을 타고 흘러가다 머릿속에서 멈추지요.

쓱쓱 싹싹 녀석의 뇌 속을 청소하기 시작합니다.

저런!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네요.

정리정돈 잘하는 엄마 솜씨가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자주 쓰이는 단어끼리, 동사와 명사는 한쪽으로 형용사, 조사도 가지런히 줄을 세워둡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유뽕이 몸 밖으로 얼른 빠져나와야 합니다. 슝!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생시인양 유뽕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봅니다.

정말이지 감쪽같이 녀석이 재잘거릴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꿈이었군요.

유뽕이는 여전히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같은 음색으로 말소리를 냅니다.

뜻도 알아듣지 못하고 의미 없는 광고문구만 혼자서 중얼댑니다.

엄마는 가슴한번 쓸어내리며 꿈으로 끝난 것이 안타까워 한숨만 쉬지요.


요즘 유뽕이는 도움 반에서 반대말 익히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요.

“크다! 작다!, 길다! 짧다!, 밤! 낮!,빠르다! 느리다!”

녹음기처럼 되돌이표 붙여 아무 때나 어디서나 떠들고 다닙니다.


오늘 엄마는 어떤 어른의 실망스런 전화를 받고 맘이 우울해졌답니다.

유뽕이 앞에서 내색을 않으려 애썼지만 표정이 어두워졌나 봅니다.

운전을 하며 혼잣말하듯 조그맣게 중얼거렸지요.

“유뽕아! 엄마가 좀 슬프다!”

조수석에 앉은 녀석이 금세 알아듣고 엄마 얼굴을 쳐다보더니 울상이 되어 말하네요.

“아니...., 기뻐져요!”

“엄만 슬프다니까!”

“아니, 아니..., 기뻐져야 해요!”

제 딴엔 ‘슬프다’의 반대말을 읊어대느라 애를 씁니다.

유뽕이 머릿속의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여 나오느라 힘겨워 하는 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은 앞 뒤 다 빼고 명사만 늘어진 말을 엮어 놓기도 합니다.

“미시령 터널, 원주, 할아버지!”

원주 할아버지 댁에 갈 때 미시령터널로 가고 싶다는 말이지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도 다 했고,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유뽕이.

엄마는 정말 세포처럼 작아지고 싶습니다.


그래도 녀석의 마음엔 배려가 숨어있습니다.

뒤섞인 단어들이나마 적절하게 내밀어 엄마를 위로 할 줄도 알거든요.

슬픔의 끝으로 떨어질 엄마를 위해 기뻐진다며 건져줍니다.

아들이 기뻐져야 한다니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요?




2009년 4월 16일 유뽕이 반대말놀이에 의미가 담긴 날.


0개
솔바람소리 2009.04.30 14.08 신고
꿈... 바람이겠지요.
유뽕이 머릿속에 들어가서 낱말들을 정갈하게 나열시켜놓고 나오셨다는
꿈에 그동안의 님의 아픔을 조금더 깊숙이 이해할 것도 같아요.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을 짜맞추어 이해해야하는 어려움이 어떤 걸까요...
상황에 맞춰서 아이를 대해야하는 순발력을 펼칠때와 하고난 후의
심정이 어떤 걸까요...
감히 그 맘을 다 헤아린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사랑한데이' 유뽕이를 바라보며 주문처럼 외치는 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인지는 감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부르짖어요.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다녀갑니다.
  
  박예천 2009.05.16 09.18 수정 삭제 신고
지난 글을 보다가....
님의 댓글이 보여 이제사 답을 하네요.
고마워요.....늘.
나같은 사람 바라봐 주어서.
그리고....좋게 여겨 준 것은 더욱 고맙지요.
우린...어미니까 뭐든 잘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패러글라이딩 2009.04.18 00.30 신고
괜시리, 유뽕이가 뭐라 그러지도 않는데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리 ...^ ^;  
  박예천 2009.04.18 08.13 수정 삭제 신고
에구....이런말 어떠실지요? 님이 무척 귀엽(?)게 느껴져요. 저보다 연세가 많은 분이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요. 댓글 감사드리고요...이럴 땐 아컴 채팅방에서라도 만나 작가글방 아줌마들 수다나 떨어봤으면 싶네요...ㅎㅎㅎ
언제 우리 만날까요?^^ ----아컴 채팅방에서!!!  
  패러글라이딩 2009.04.18 11.20 신고
귀엽게 봐주셨다니 감샤합니다.(꾸벅) 댓글 달아놓고 성의없게 느낄까봐 혼자 소심놀이 하고 있었거든요~ 참고로 전 4학년에 입학한 새네기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박예천 2009.04.18 11.55 수정 삭제 신고
아이고...님도 차~~암!
같이 늙어(?)가는 4학년이구만....오히려 귀엽다 말한 제가 죄송하지요.
주말동안 초여름 기온이 된다네요....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라리 2009.04.17 18.52 신고
그럼요... 분명한 천사이지요...  
  박예천 2009.04.17 20.02 수정 삭제 신고
라리님도 예쁜 꽁쥬 천사가 있잖아요...^^  
통통돼지 2009.04.17 11.30 신고
엄마 얼굴을 읽어내고 기뻐지라고 주문 외우는 아들이 있으시니 님은 행복하신 겁니다. 보통의 엄마와 천사 아들이 매일 만드시는 행복을 꼭 여기에 올려주세요. 저도 그 행복의 기운좀 받아가게요. 꼭! 꼭!  
  박예천 2009.04.17 14.00 수정 삭제 신고
실은...제가 너무 떠벌이며 아들 이야기를 올리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곤 했답니다.
통통님께서 이리 응원을 해주시면...얼씨구나 계속 올릴건데 괜찮을까요?
난...몰라요. 전부 통통님 탓으로 돌려야지...ㅋㅋㅋ
계속 유뽕이 지켜볼게요.
또 뭔 말과 행동으로 엄마를 뿅가게 할런지 저도 사실 궁금하답니다.
햇살 좋은 오후네요...남은 시간 잘 보내시길~!  
살구꽃 2009.04.17 11.19 신고
어제 어느님의 댓글에서 시어머님 전화 받고 기분이 우울하다고 본거 같은데..
제가 울시모땜시 3월달에 속썩어서..그심정 조금은 알지요.다들 어른들 계신
집은 비슷한 근심 거리가 늘 따라 다니데요..울시엄닌 술을 너무 드셔서 그걸로 저희가 골치를 썩고 있거든요.자식들이 적당히 드시래도 고깝게만 여기고
버럭 성질을 내시고 도통 말이 안먹히죠..어쩜그리 자식들 말을 안듣는지..
저는 이런 가족사의 얘기도 자주 올리곤 하는데요..그러면서 제맘에 응어리가
좀씩 풀리기도 하거든요..저를 흉보는이도 있겠지만..사람맘은 다다르니..님도 가끔 여기다가 넋두리 하세요..ㅎ 좋은하루 보내고요.  
  박예천 2009.04.17 13.57 수정 삭제 신고
시모께서 술 드시는 모습 상상이 안가네요....ㅎㅎㅎ
울 어머니는 술 안드셔도 다른 것으로 충분히(?) 역할 하십니다.
에혀~~ 그냥 살아야지요. 제 운명이니까.
그나마 모시다 분가해서 좀 나은겁니다.
워낙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도라지꽃 2009.04.17 01.41 신고
유뽕이는 천사예요. 아이들은 다 천사들이라지만 유뽕이는 더욱 천사라고 생각해요. 언어적인 문제가 있고 발달장애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의 마음이 눈밭같이 순수함을 님의 유뽕이 시리즈를 통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저절로...
유뽕이가 엄마의 이토록 지극한 사랑과 정성과 눈물로 엄마의 바람처럼 건강한 아들로 쑥쑥 자라주기를 함께 빌고 싶습니다.^^  
  박예천 2009.04.17 09.31 수정 삭제 신고
고마워요.. 천사로 봐주셔서요.
유뽕이 시리즈는 저 자신을 위로삼고 싶어 시작한 글인지도 모릅니다.
보통의 엄마일 뿐...저도 대단한 여자는 아니지요.
그래도 자기최면 걸듯이 맘 다잡으며 살고 싶어 유뽕이를 바라봅니다.
하루하루 녀석이 저에게 주는 메시지를 잡으면서 견디지요.
님도 그러실겁니다. 빳빳이가 주는 행복감이 있을 거예요.
꽃님을 비롯해 여러님들이 빌어주니...유뽕이 좋아지겠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려구요.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이 유뽕이 시리즈로 만들어 지리라 믿어요.
비온 뒤 속초의 하늘은 참으로 청명하네요.
오늘 하루 산뜻하게 보내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