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네...”
눈을 뜨고 곁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하니 낮 1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2시간가량 잤을까...빨갛고 노란, 훌쩍 큰 울창한 단풍나무들을 울타리 삼은 3층의 저택을 바탕으로 벌어졌던 스펙터클한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32도를 웃도는 더위에 진즉 깔아놓은 대나무 돗자리 덕분에 들숨날숨 쉴 때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지만 배짱이 놀이 삼매경에 빠진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선풍기가 꺼져있어도 견딜만했다.
의식이 선명하게 깨어난 정신이었지만 꼼짝 않고 똑바로 누운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특별한 얼룩은 없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한 아이보리색 천장벽지가 덤덤하게 눈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뒤로 재끼니 창가 근처에 매달린 풍경이보였다. 그것은 5~6년 전쯤 친구와 함께 다녀왔던 용인의 와우정사에서 사온 기념품이다. 본분을 잃고 과묵한 그것은 후끈한 바람이 살짝살짝 드나드는 창가에서 좀체 미동도 없이 묵언수행중이다. 태풍이나 불어야 그 청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 하긴 조용한 것이 그리웠던 터였다. 풍경의 과묵함도 반겨야지...자위해본다. 지난 6월, 다니던 직장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두어 달 동안 두 곳의 직장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남들은 갑작스런 회사통보에 다른 직장을 구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지만 그동안 근무태도라면 타에 모범이 될 만큼 열심이었던 탓이었을까 와달라고 했던 곳이 있어서 쉬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사 한 곳은 마음에 걸릴 정도로 영업업무가 양심적이질 못했다. 배가 덜 고픈 걸까?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수 없다며 입사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는 백수가 된 시점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 십년동안 그런 류의 일을 하면서 한 달에 적게는 5백만원부터 많게는 천만원이상 소득을 올리며 자녀들을 키우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땅을 샀다는 60을 바라보는 분들도 진득하니 잘들 버티는 그곳들을 겨우 급여를 생각해서 한 달씩을 채우기가 어려웠던 나는 그동안 얼마나 양심적으로 살아왔다는 말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분들은 어느 교회에 집사님이거나 권사님이기도 했고, 공양을 열심히 한다는 불교의 보살님이기도 했다. 나는 섬기는 분이 부처일뿐 절의 문턱을 1년에 한 번 넘을까 말까하는 사이비 종교인일 뿐이다. 서서히 내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곳을 다니던 능력을 인정받을 만큼 열심이었다. 여자소득치고 적지 않은 돈을 벌기도 했다. 나이와 직위를 막론하고 함부로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 역시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직장 안팎으로 찾는 이가 많아서 통화를 하던 만남을 갖던 사람들에 치여서 피곤함을 그림자처럼 붙이고 살았다. 하지만 현재는 백수생활 17일째인 무미건조한 인간을 뿐이고 모아놓은 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며 몹시도 외로운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영업정지가 해제되는 시기가 9월 아니면 10월쯤이 될 거라는 실장의 연락이 여러 차례 왔었다. 다른 곳에 있더라도 연락 줬을 때 다시 와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아놓은 터였다. 당시엔 알겠다고 대답은 했었지만 지금 시점에선 그것조차 선뜻 내키지 않는다.
-언니...오늘이 언니와 마지막일 것 같아...언니 알아가는 동안 너무 고마웠어^^-
번호차단은 했지만 아직도 지우지 않은 미경이가 보냈던 토시하나 바꾸지 않은 문자내용이다. 나보다 4살 어린 그 애 이야기를 조금 할까한다.
2014년 3월, 미련 많은 꽃샘추위가 쉽게 물러나지 않던 그 달에 14명 남짓한 직원이 전부인 어느 텔레마케팅 지부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서 내 나이 서열은 중간쯤이었다. 성격상 낯선 곳에서 기죽지 않았고 굳이 붙임성 있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인사는 깍듯하게 했다. 낯선 분위기와 사람들 속에서도 놀러온 것이 아니라 일하러 왔으니 호의적이기 보단 배타적인 사람들의 성향 또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보단 업무파악이 우선인지라 업무자료와 스크립터 녹취자료를 바탕으로 습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매번 욕심만큼 실적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뿐이었다. 보통 도시락들을 싸왔지만 일주일에 한 번인 금요일만큼은 밖에서 식사들을 하는 분위기였다. 1시간10분하는 점심시간이라면 밥을 먹고 실컷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여유를 갖고 오고가는 동안이라도 동료들끼리 수다는 떨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부장과 과장 빼고는 모두가 여자뿐인 그곳, 아니 다른 곳도 여자들만 있는 곳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싶다. 낯선 사람에게 살짝 관심을 보이는 듯, 결국 소외시키기 일쑤인 분위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곳이든 끼리끼리 모이고 파가 나눠지기 마련. 난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정도로 제법 사회 물을 허벌나게 들이킨터였다.
신입으로써 받아들여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텃새였지만 정말 난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업무에만 신경 썼고 일주일에 한번씩 나가서 먹는 점심때도 꿋꿋이 혼자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 지키기를 고수했다. 시간이 흘러 들린 풍문에 의하면 당시 나를 성격이며 분위기가 보통 아니며 잘난척하는 밥맛이라도 했단다. 나라님도 욕먹는 판에 뒷전에서 하는 말 따위 신경쓰지 않으마, 차라리 내게 그런 말 전한 사람을 경계했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달쯤 됐을까?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미소 뒤에 경계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터였다. 이 정도면 사회생활에 도통했다고 거들먹거려야하는 건지, 하는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걸까? 노골적으로 날 무시하는 한 사람이 신경에 거슬렸다. 이미경! 사람 이름 외우기 젠병인 내가 쉽게 외운 유일무이한 그 이름. 키가 150cm가 조금 넘는 작달막한 키에 너무도 반듯한 짧은 단발은 목 중간을 넘지 않는 길이였으며 정중앙에 앞가르마를 타고있었다. 살짝 째진 눈에 꼭 다물고 있는 입 꼬리까지 표독스러운 것이 때론 분장 없이도 전설의 고향에 출연해도 될 만큼 독을 머금은 독사의 얼굴과도 흡사해보였다. 입사한 3일 정도는 그 친구의 무시와 상관없이 아침인사만큼은 깍듯하게 했던 나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구분하지도 못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덤덤하고자 노력했던 내가 정확하게 파악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 것이 분명, 싸가지를 챙겨들고 다니지 않는 다는 것뿐. 입사 4일째 되는 날부터 그 친구가 입사한지 제일 오래된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이 신입인 나에겐 투명인간일 뿐이었다. 나 역시 그 친굴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 친구가 내게 했던 것처럼...개무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