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입을 앞둔 중3, 키 176cm에 몸무게 60kg.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안경을 썼다는 오점을
지닌 내 아들.
녀석이 어느새 어깨가 벌어지고 인중에 솜털들의
색이 짙어졌으며 목소리가 굵직해졌다.
출산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밤낮으로 울며
보챈 녀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다.
산모가 된 줄 안 순간부터 7개월이 넘도록 친정식구들에게
낙태를 강요받았었다. 임신을 축복받고 출산하는 그날까지
어린양 닮은 투정을 부린다는 산모 얘기는 드라마에서나 있는
소재임을 통달한 순간부터 내 삶을 밑바닥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피자가 먹고 싶었다. 내내. 모짜렐라 치즈가 잔뜩 얻어진
뜨거운 그것이 왼쪽 늑골, 그 속에서 붉게 팔딱이는 심장에
사무치도록 먹고 싶었다. ‘절실’이란 말로 표현해도 부족할만치.
남편의 친구 집 방 한 칸에서 5개월가량 얹혀살며 지냈던 때가
아빈이를 뱃속에 담고 있던 7개월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고작해야 먹을 수 있던 것이 눈치 묻은 김치쪼가리와
물만 맨밥 정도였다.
남편이 아닌 ‘남의 편’인 작자가 며칠 놀고 며칠 번 일당으로
제 맘대로 몽땅 고기와 술을 사들고 온 것으로 친구 와이프란
여자와 함께 차린 밥상이었지만 내 젓가락은 선뜻 고기 쪽으로
가지 못하고 입맛에도 맞지 않는 김치 쪽으로 가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을 나와 지하단칸방을 구해서 둥지를 틀고
임신 10개월이 되도록 끝내 치즈를 잔뜩 머금은 피자를
맛볼 수 없었다. 돈 몇 푼 생기면 외식하자고 설치는 남자에게
‘피자’를 먹자고 했을 때, 그걸 뭔 맛으로, 왜 먹는 거냐고 투덜
거린 다음 날부터 다신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집 떠난 순간부터 출산을 할 때까지, 매일 밤을 이불 속에서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이 먹고 싶어서,
내 편인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외로울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혼자서 나지막하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참고 또 참지...’
난관이 닥칠 때마다 씩씩하게 홀로 이겨내는 캔디가 닮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나약한 내 자신을 원망하며 울었다.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엄마를 찾아 날아가는 기러기가 부러웠다. 그렇지 못하는 내처지가
처량해서 울었다.
공기의 향기를 느낄 만큼 예민한 탓에 지독한 입덧을 10달 동안
겪으며 물만 먹어도 토했다. 그럼에도 새벽 늦게까지 술을 먹고
들어오지 않는,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고 사는 남편을 기다리다
치미는 울화통을 어쩌지 못하고 깡소주를 마셔댔다.
“넌 왜 내게 왔니?...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이 고생을 자처
했다만... 널 낳고 키우며 지켜낼 수 있을지... 겁이 난다.“
태교...따위 하지 못했다. 남자를 증오하고 발악했고 그 남자역시
못지않은 지랄들을 떨어댔다. 그의 거짓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처녀가 두 번째로 갖은 아이를 결코 낙태 시킬 수
없다는 그 각오하나만 생각했다.
내게 점지되어 찾아 온 아이에게 감사함을 느끼기보다 원망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꼭 낳아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다.
작은 뱃속에서 10달을 힘겹게 있다가 태어난 아들에게 젖가슴을
내주는 것이 의무일 뿐, 못된 짓 많이 했음에도 멀쩡한 몸으로
태어나 준 것만 잠시 고마웠을 뿐, 키우는 즐거움이 없었다.
재미도 없었다. 그래도 잔병치레 많이 하는 녀석이 더럭 겁이
났기에 때마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찾아 다녔다.
간호사의 우스갯소리로 ‘출석체크’가 운운될 정도였다.
아빈이는 돌이 넘도록 맹물에 가깝다는 모유만 먹었다. 내가 녀석을
품었을 적에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조차 차단시키고 김치쪼가리로
대충 한 끼를 때우며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것처럼 이유식을
거부했다. 억지로 먹이면 토하기 일쑤였다. 녀석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야 비로소 힘겹게 젖을 뗄 수 있었지만 철분결핍성빈혈
판정을 받고서 6개월가량 치료약을 먹여야했다.
세상 제일의 어리석은 인간임을 증명하듯 한발 늦은 후회의
연속에 빠져 허덕이며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미래를 계획하기가 겁이 난다.
지금까지 남편 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태교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을 텐데.
아니, 낳지 말 것을... 차라리 좀 더 죄를 짓더라도 낙태를 해버릴
것을... 그도 아니다. 낳더라도 모진 꼴 보여주고 사느니
아빈이를 고아원에 버리더라도 내게는 줄 수 없다며 협박으로
잡고 늘어진 남편에게 일찌감치 줘버리고 떠나버릴 것을...
앞니가 몽땅 생긴 녀석에게 돌을 넘기도록 가슴을 내주며 꼭지를
씹힌 통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이러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울 정도로 상처가 깊은 젖꼭지를 녀석이 찾을 때마다 물로 깨끗이
씻고 입으로 대주었다.
눈물을 찔끔일 정도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젖꼭지가 떨어지면 아빈이가 어떻게 빨지? 짜서 먹여야 하나...'
매순간마다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라면 늘 떠나고픈 마음의
제 엄마를 알고 붙잡으려는 듯 아빈이는 젖에 집착했다. 배가 고프거나
잠들기 위해서, 잠들어서 살짝 빼내면 바로 깨어나서 또 젖을 찾았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단칸방의 밤은 말 그대로 칠흑.
녀석이 기어 다닐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내가 어디 있던 귀신
같이 나를 찾아내는 신통함을 보였다.
울고 보채고 예민하고 탈 잘나는 지긋지긋한 녀석을 챙기는 마음이
사랑인지... 인식치 못했다. 지금은 자식들에게 사랑을 부르짖지만
그 사랑이 참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제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녀석에게
이유 없이 고통을 안겨준 것 같아서, 또 이 험한 세상 밖으로 꺼내
놓은 죄인된 마음으로, 짐스럽고 귀찮았지만 미안해서 내쳐버릴 수
없었다.
녀석과 풀어내야할 숙제가 많았다. 내겐...
그 숙제는 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되고 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