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황무지 작은 자갈밭엘 들어섰다.
그곳에 들기 전에 고심했었다.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빛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으로 홀딱 적실 열기가 두려워 내가 있던 자리
그늘이 가까이에 있는, 내 힘들이지 않고 가꿔진
비옥토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갈등의 계단을 한없이 오르내리며 내린 결정이었다.
결코 손 댈 수 없는 척박한 땅이라며 손사래 치는
이들이 있었다.
‘네가 그곳에서 뭘 하겠니?’ 팔짱끼고 이죽거리며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걱정으로 발을 동동 거리며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
어느 몹시 강한 바람이 부는 날 자갈밭 주변을
무심코 지나가는 내게 돌멩이 하나가 가슴팍으로
날아들며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때...
원망으로 바라 본 자갈밭이 말했다.
‘나 좀... 일궈 줘...
왜 모두들 나를 외면하는 거야?
나, 조금만 손대주면 씨앗을 품을 수도 있는 몸이고
연약한 뿌리로 내게 들어온 것들을 굳건하게 키울 자신까지
있단 말이야... 나를 믿어 줘.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듣지 말고 내 말만 믿어 봐. 나도 할 수 있단 말이야.
기회를 줘... 나를 일굴 수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날 이대로 방치하지 말아줘... 제발...‘
상처를 남겨준 자갈밭에게 몹쓸 연민과 신의를 품고 말았다.
너 밖에 없단 말이야, 이 말보다 그것의 자신감에 끌려서
길가에 잡초조차 뽑아본 적 없는 몸으로 강쇠 호미와
곡괭이만을 장만해 들고 돌멩이에 맞아서 검게 멍이든 가슴을
안고 무턱대고 자갈밭 안으로 들어섰던 거였다.
무작정 엎드려 호미로 자갈을 캐내고 돌멩이를 거두며
바위 돌을 뽑아냈다. 물집이 잡혀서 진물이 흐르는
손으로 곡괭이를 집어 들어 반복적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렇게 시간이 흐리고 숨 쉬듯 반복적인 노동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나그네 바람 한 자락이 귓가를 스치며 말했다.
‘괜한 짓이야. 그래 봐야 소용 없다구. 다른 사람도 그 짓 하다가
일찌감치 떠나가더라. 너도 그쯤하고 말어. 보기 안쓰러워.‘
돌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지친 몸을 그늘 속에서 쉬어놓고 싶은
바람을 굳은 살 벤 발로 눌러 밟았건만... 지나는 말 한 자락에
다시 갈등이 일고 말았다.
“정말... 가망 없을까? 별로 크지 않은 밭에
생각보다 돌들이 많긴 하지만 내가 열심히만 하면 곧 기름진
땅이 되어 내가 뿌린 씨앗을 가꿔서 값진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 이 밭도 내게 그렇게 말 했는걸...“
미련처럼 놓을 수 없는 마음이 그럼에도 무모한 짓은 아닐
거라며 대꾸했건만... 바람이 저만치 떠나기 전에 던진 말이
귓가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니 맘대로 하세요. 내 조언담긴 호의를 저버린 것은 너란 사실을
잊지 말길...‘
하긴... 자갈밭에 들어 선 순간부터 내게 등 돌리고 냉정하게
배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무한한 사랑 속에서도
투덜거리며 불만으로 살아 갈 적에, 그것조차 애교라며
바라봐주던 혈육들조차 냉랭한 표정과 상투적인 말들로
거리감을 두고 대하곤 했다. 세상의 시시비비들을 내려주며
나를 감싸 안던 그늘을 내 발로 벗어나고부터.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햇살이 살갗을 비집고
들어오고 때론 비와 바람, 눈의 방해로 치룬 고생들보다
그들의 변심으로 다친 맘의 상처가 크고 아팠다.
내 결정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오기로써
초심을 떠올리며 다짐만을 되뇌었다.
외로우면 낙후하고 낡아버리기까지 한 농기구를 손질했다.
때론 맨 손으로 흙을 일궈내었다.
그래도 외로움을 삭으러들지 않았다.
언제쯤 이 황무지를 개간할 수 있을까, 그 의문조차 머리에서
떨궈 내려 했다. 지나가던 바람은... 오랜만에 진심어린 맘으로
나를 걱정해서 찾아왔던 친구.
길가에 초목들을 일일이 아는 체하며 저만치 달려간 바람을
잡고 싶었다. 그리고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팠다.
지긋지긋한 추억만을 남긴 자갈밭을 벗어날 마지막 발작을
떼려고 할 때였다.
그동안 가려운 곳을 긁어줘서 시원하단 듯 편안한 얼굴로 하늘을
시청하다 잠이 들곤 했던 무심한 밭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지금 벗어난다면... 아마도 이곳은 더 황폐해지고
말거야... 나 같은 존재는 풀 한포기도 느껴볼 수 없겠지...
나는 그동안 네가 고생하는 것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차마
입조차 열 수 없었는걸...그래도 네가 쉬지 않고 일해준 덕분에
내 몸이 많이 가벼워 질 수 있었어... 곧 나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겠구나, 기대하기도 했는데... 틀린 거니? 널 믿었는데...
네가 지금 이곳을 떠나면... 난 다시 돌들에 눌려서 있겠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바드드득... 바드드득...
돌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밭의 통곡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마지막 발을 떼지 못하고 밭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사라져간 바람을 찾았다.
도토리 한 톨만큼도 없었다. 그새 바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