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사나보다고 짐작은 했었다.
점심 도시락을 한 번도 싸오지 않던 놈이 때마다 교문을 향해 꽁지에 불붙은 것 마냥
뛰쳐나갔던 모습으로 점심 끝나는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헐떡이며 돌아왔던 것을
매번 지켜봤기에 말이다.
녀석 집이 버스종점 부군인지, 아니면 외할머니 댁보다 윗동네에서 살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관여 할 맘이 결코 없었다. 그런 녀석이 찬바람 속에서 남의건물의 높다란
담장에 있거나 말거나, 떨어져서 거꾸로 바닥에 처박히면 어쩌나 걱정이 살짝 밀려들던
그 맘마저 떨쳐버릴 수도 있을 만큼 녀석은 내게 있어 백해무익한 존재였다.
보통의 사내 녀석들과 달리 내 태클에도 움츠려 들거나 발끈 조차 않던 왕 무시가 오히려
내겐 도발로 느껴졌기에 품고 만 똥 누고 밑 안 씻은 것 마냥 찝찝함을 선사하던 놈이었다.
“내가 초록대문에 살거나 말거나 니가 무슨 상관이야?!”
살을 에는 찬바람만치나 냉랭한 냉기를 머금고 뱉어냈던 내 말에도 역시나 녀석은 덤덤함을
유지했다. 다른 것을 굳이 꼽자면 학교에서처럼 개구졌던 표정이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그것이 내겐 슈퍼맨이 빨강 빤스를 입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만치나 어색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맘마저 떨쳐버리고 지나가는 내 뒤통수 위에서 녀석이 또 말을 이었다.
“야! 너 동생이 세 명이지?!”
개뼈다귀 같은 녀석이 어느새 내 호구조사를 마쳤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갑작스레
칭찬 받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갑작스레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인지
괜한 말로 자꾸만 꼬리를 잇는 것이 그렇잖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 동생들 때문에
심통 풀인 상태의 내 마음심지에 라이터를 들이대는 꼴이었다. 게다가 할머니가
성급하게 칼국수 면발을 벌써 육수 솥에 집어넣었다면 그 불어터진 것을 어찌 먹어줘야
하나, 보통 때도 밥알을 세느냐는 타박을 내게 일삼던 할머니의 잔소리 앞에서 팅팅 분
면발과 실랑이를 벌이며 내가 곧 옌병할 년을 면치 못하게 될 것까지 계산해야했던
시끌, 복잡했던 심정까지 보태졌다.
“아이 씨, 그래서 뭐 어쩌라구! 자꾸 말시키지 말고 얼른 니네 집으로 꺼져, 새꺄i!”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잔뜩 구긴 얼굴에 뱁새 눈을 하고 돌아서서 바람결에 악다구니를
뱉어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파리 끈끈이만치나 끈진 녀석이 또 발길을 붙잡고
말았다.
“여기가 우리 집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녀석의 그 말에 놀란 맘이 되어 담장 위를 올려다 본 것 같다.
근 1년을 이웃에 살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 어쩐 일이진, 무엇보다 그곳이
간첩이나 문둥병 환자가 숨어살아 갈지도 모를 음습한곳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외골수적이고 있이 살 놈이라고 여겼던, 내게 있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쾌했던 녀석이
살고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로 잠시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이 제대로 헛 다리를 집었나? 아니면 고립된 듯 보이는 낡은
건물이 안으로 들어가면 궁전이 따로 없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여러 마음을 한 대 안고 올려다 본 곳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던 녀석이 입으로 뭔가를
오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추운 겨울 날 밖에서, 그것도 높은 담장 위에서 얇은 야구
점퍼를 입고 먹을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나 신기를 넘어서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놈이 산다는 요새 같은 건물처럼 도통 알 수 없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집은
뭔가를 베어 물고 맛나게 씹고 있는 녀석에게 좀 더 명확하게 듣고 싶었다.
“여기가 니네 집이라구?”
“응.”
“너 거기 올라가 있으면 엄마한테 안 혼나냐?”
“엄마 없는데?”
“언제 오시는데?”
“안와. 멀리 있어서.”
“그래도 한 번씩은 만날 거 아냐?”
“저기 있는데 어떻게 오냐?”
녀석이 뭔가를 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을 때야 비로소 상황파악을
뒤늦게 했던 눈치 젠병인 나는 녀석이 내게 맞고서 표정 3종 셋트를 선보였을
때보다 더한 뻘쭘함과 호랑이 시집가는 날이면 내린다던 갑작스레 쏟아졌던 맑은 햇살
머금은 소나기처럼 불쑥 찾아든 미안함으로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멀리 바닷가까지 고기잡이를 떠나곤 했던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일이 많았고
여러 이유로 할머니 댁에서 지내며 간간히 부모님을 만나야했던 것처럼 녀석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나보다고 성급한 지레짐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녀석의 엄마를 계속해서 운운했던 것이 참으로 미안했지만
그것을 내색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치를 않았다. 하지만 내가 행한 좀 전의 실수로 인해
그동안 녀석에게 우후죽순 생겨났던 불만에 대해서 반값으로 바겐세일 해주고픈
너그러운(?) 맘마저 숨기고 그 자리에 짱 박혀서 녀석을 대했다.
“너, 지금 거기서 먹는 것이 뭐냐? 날도 추운데?”
“자지 떡. ㅎㅎㅎ.”
녀석이 제가 말해놓고도 재미난지 신나게 웃을 때 찬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 것 같은 추위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잠시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지만
그 녀석이 내가 고작 단어 하나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될까봐서
바람에 목소리가 날아가서 작게 들릴 것까지 꼼꼼히 계산하여 힘준 목으로 입을 벌렸다.
“얀마! 자지 떡을 거기서 먹으면 맛있냐? 나두 주라.”
“ㅎㅎㅎ...”
뒤지고 싶지 않아서 뱉어낸 말에 실컷 웃던 녀석이 그 높은 곳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는
것을 간담 서늘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내 앞으로 다가 온 녀석이 쥐고 있던 것을
흔쾌히 반을 잘라서 내밀었을 때... 찝찝했지만 역시나 지고 싶지 않은 오기로 받아들었던
자지 떡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것에 또 놀라고 말았다. 아무튼 녀석은 나보다
심한 엽기를 지니고 있었다. 딱딱한 것을 맛나게 오물거리며 추위를 모르는 듯 너무나
태연자약한 표정과 행동들조차도 엽기였다.
새해를 맞을 준비로 분주했던 엄마가 방앗간에 가셨던 날이면 빨강 고무다라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가래떡을 하나 가득 보자기로 덮어서 담아 오셨던 날이면
밖에서 놀던 때 구정물 줄줄 흐르는 양손으로 욕심껏 잡고서 흔들며 자랑스레 밖으로
돌던 저학년 시절에 이웃 후배나 선배들 앞에서,
“자지 떡 줄까?!”
외쳐댔던 딸래미 손을 황급히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던 엄마가 험상궂은 얼굴이 되어,
“**야. 자지가 뭐냐?”
하는 생뚱맞은 질문을 내게 던졌을 때도 결코 엄마의 딸이 바보가 아님을 확신 시켜
드리기 위해서라도 속 시원한 목소리로 대꾸하던 나였다.
“호진이 꼬추.”
알고 있는 것을 막내 동생의 신체 일부로 예를 들어 적절한 표현으로 대꾸했던
슬기로운 딸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으며 엄마의 훈계가 이어졌었다.
“그럼, 자지 떡이 호진이 꼬추 떡이란 말이냐? 계집애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자지 떡이 뭐냐? 자지 떡이!“
그 말씀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어쩌든지 알아내야 한다고 가르쳤던 엄마에게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드랬다.
“그럼, 엄마는 왜 자지 떡을 자지 떡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왜 자지 떡이라고
이름 붙인 거야? 자지 떡이 자지보다 훨씬 긴데. 근데 엄마, 자지 떡을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
내가 입을 열수록 눈이 퀭하게 들어갔던 엄마의 얼굴로 떠오른 웃음이 어이없음으로
비롯된 건지도 모른 채, 엄마를 웃겼다는 기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엄마도 어릴 때 그렇게 듣고 자랐기 때문에...몰라!!! 아무튼, 자지라는 말은 부끄러운
말이야. 남자 꼬추를 뜻하는 거잖아. 다음부터는 긴 떡이라고 하던지, 가래떡이라고
불러. 알았어? 또 다시 자지 떡이라고 했다간 혼날 줄 알아.“
엄마의 엄포에도 겁 없이,
“가래떡? 왜...? 이 떡 먹으면 감기 걸려?”
물었던 내게서 후다닥 멀어져갔던 엄마의 말을 깊이 새기며 훗날부터 긴 떡을
호명(?)할 적마다 한동안, “자지...아니, 가래 떡!”을 각인 시킬 때... 목을 타고 올라왔던
노랗고 걸쭉한 반고체를 떠올려야만 했던 일이 추억되어 흘려보낸 시간이 첩첩히
쌓여 갈 때마다 새삼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래떡을 대했던 나를 익히 알고 있던 듯
거침없이 ‘자지떡’ 운운하며 뱉어냈던 괴짜 녀석의 말에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고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을 어째야 할까 잠잠히 고민에 빠져있던 나를 보던 녀석이
시범 보이듯 이도 좋게 씹어대는 거였다.
“달라면서 왜 안 먹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