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의리를 부르짖으며 함께 몰려다녔던 친구들이 있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자고 손가락 걸며 약속하던 단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도 내 평생에 약점의 빌미가 될 요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보호자 될 자격을 부여할 수 없었다.
이모에게 믿고 부탁했을 사촌언니는 평생을 어떠한 일 앞에 지난 과오가 서두가
되는 빤한 공치사를 두고두고 듣곤 했다. 어제의 아군이 현재의 적군이 된 셈이다.
발 넓고 어떤 일도 능숙하게 처리해주는 경험 많은 이모도 내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너무 연로하셨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홀로 고민 속에 허덕이던 그 순간이 차라리 악몽이라면,
그래서 곧 깨어날 수 있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막연한 별별 생각들이 간절한
희망이 되었다. 온갖 상념들 속에서 난 열심히 잔머리를 굴렸다.
잔인한 난... 나와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이 살기 위해 뱃속에 아기를 감쪽같이
없앨 방법만을 강구했다. 그러면서 또 좌절했다...
나는 예민한 체질 덕에 일찍부터 남몰래 입덧을 해야 했고 남몰래 며칠을
고민했다. 철저하게 외롭던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한 사람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넘어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민혁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를 운운했던
순간부터 그를 심중에 뒀는지도 모른다. 답은 하나인 것처럼...
평소에 자주 들렀던 읍내의 레스토랑에서 며칠 만에 민혁과 만났다.
그는 알아서 내가 즐겨먹는 정식을 주문했고 언제나처럼 마주 앉은
나를 보며 여전히 싱글거렸다. 어떠한 부탁이든 철판을 깔고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듯 쉽게 민혁에게 뱉어내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야, 너 요즘 더 많이 핼쑥해진 거 알아? 왜 그래... 어디 많이 아픈 거야?”
민혁이 먹기 좋게 잘라서 내 앞으로 내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포크로 장난하듯 음식을 뒤척이는 나를 보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착한 남자였다. 민혁은... 내게 있어 늘 착하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간단한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할 어떤 말도 찾지 못했다....
임신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던 얼마 전,
그가 내가 어렵게 입을 떼며 부탁 한 것이 있었다.
제 엄마의 초대에 응해서 밥 한 끼만 먹자는 말을 한참을 우물거리며
꺼냈을 때 그 모습에 오히려 미안해진 나는 선뜻 허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집에 방문하기 전 집고 넘어갈 한 가지를 확신 받고 싶었다.
“형, 난 아직은 우리들의 사이를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부담스러운 것 딱 질색이야. 혹시, 내가 형을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던 말을 식구들에게 알린 것은 아니지?“
사랑해보겠다고 했던 나였지만 민혁을 내 남자로 확신할 자신이 없었다.
늘 교묘하게 빠져 나갈 궁리를 했던 것 같다. 졸지에 의도한바 없이 버린
몸으로 양다리까지 걸친 꼴로... 그래서 민혁에게 또 미안했다.
“그럼! 나만 혼자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도 아셔.
걱정하지 마. 엄마, 아니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친구라도 좋으니까 꼭
네게 밥 한 끼 먹이고 싶다며 노인네 소원처럼 그러시니까...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고 밥만 먹어주라...“
두말하면 입 아프다는 듯, 반복하면 숨 가쁘다는 듯, 뻔한 걸 뭘 묻냐는 듯,
내 까칠함마저 매력적이라던 민혁이 그 넘치는 매력(?)을 남발해대는 내게 여지없이
웃는 얼굴로 안심하라며 대꾸했다.
두 번째 민혁의 집에 방문하던 날 시내에서 둘이 만나서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들고 갈 마땅한 선물을 고른 뒤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관문이 열리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몇 번 통화했던 민혁의
어머니만 계실 줄 알았던 집안에 낯선 사람들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그들의 대대적인 환대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이번엔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교자상 2개가 나란히 덧붙여진 채로 그 위에 여러 음식들 푸짐하게
차려진 것이 보였다.
자신을 민혁의 큰 누나라고 소개한 한 분이 나머지 누나 둘과 그녀들의 분신들,
형수, 매형과 인자한 인상의 민혁을 닮은 어머니까지 소개하고 업무가 바빠서
참석치 못한 장남과 매형 두 분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늘어놓았다.
민혁의 친구는 늘 이런 환영을 받았던 걸까? 아니면 집안에 잔칫날이 겹쳤던 걸까,
그도 아니면... 난 그들에게 있어 예비 가족으로 치부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모두 내게 있어 부담스런 자리였다.
난처해진 내가 곁에서 몸둘바를 모르며 미안해하는 민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평소 우리 둘이 있을 때처럼 잡아먹을 듯이 따져 묻지 않았고
고양이처럼 노려보지도 않았다. 나보다 더 긴장한 듯 내 눈치를 살피며 이마에
땀까지 맺혀 좌불안석인 그의 모습으로 짐작컨대 그 역시 가족들의 총 출동을
짐작치 못했던 것 같았다. 나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며 웃는 얼굴로 그들 속으로
들어가 안내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차린 건 없지만 어려워 말고 많이 들어요.”
민혁의 엄마가 내 맞은편에 앉아서 음식을 권했다.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할까 낯선 무리 속에 완전한 타인이던
내가 젓가락을 들자 이번엔 민혁마저 내 진땀을 빼려 들었다.
일정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모두 내 앞쪽으로 다닥다닥 붙여가며 집결(?)시키는
편애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기막히다는 듯 그의 누나들이 농담처럼 말 몇 마디를 늘어놓았고 어린 조카들은
삼촌의 배반된 행동에 울음보까지 터트렸지만 내게 있어 고양이 앞에
쥐처럼 굴던 민혁이 그 소란 속에서 이순신장군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을
굽히려 들지 않고,
“우리 누나들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이겨...”
그들은 안중에도 없단 듯 개의치 않았다.
민혁을 나 역시 좋아했다. 거짓 없는 솔직함이 좋았고 편했다. 내 단짝보다 더
가까운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의 수위에서 조금만 초과된 행동에선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이 그에게서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형, 왜 그래? 내가 무안하게... 형이 어린애처럼 구는 것 난 싫어. 친구에게 너무
편애를 하면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고.”
단체로 모인 그들 앞에서 나는 좀은 당돌하게 민혁에게 핀잔을 줬다.
그 말에 곧 바로, “앙... 알았어, 미안.” 하며
두 말없이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았다. 그 순간... 그의 가족들이 잠시 조용했었다.
어린 조카들까지 잠잠했었다.
내 말 몇 마디에 바로 시정됐던 민혁을 보고 기분 나빠하기보다 막내가 제대로 임자
만났다며 누군가 어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머로 이끌어갔고 다시 화기애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따뜻한 가족이었다. 그의 순박하고 따뜻한 인간됨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민혁은 가족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산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나만이 업신여기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날의 식사가 내 많은 부탁을 들어줬던 민혁에게 내가 유일하게 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될 줄은 몰랐다.)
민혁이 식어가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내가 먹지 않자 자신의 포크로 찝어
내 입 앞까지 내밀며 자꾸만 먹을 것을 재촉했지만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아, 하고 좀 먹어봐. 왜 그래... 다른 곳으로 갈까? 뭐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한 치의 거짓 없는 걱정담긴 그의 따뜻한 말에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밖에 내 보호자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물러날 수 없었다.
“형... 부탁 있어...”
조용한 음악의 선율까지 그 순간 소음처럼 들렸다. 마음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겨우 입을 연 내 한마디에 다시 얼굴이 밝아진 민혁이 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 어떤 거든지 말해봐. 난 네 부탁이면 모두 들어줄 거야.”
“... 나, 병원 가야돼...”
“응, 그래 안 간지 꽤 됐지? 언제 갈까?”
하긴, 우린 함께 벌써 여러 번 병원에 다닌 사이였다. 내 개인 비서처럼 알아서
접수했고 번호표 뽑고 약을 탔던 민혁이었다. 그게 무슨 부탁 속에 들어가기나
하느냐는 듯... 그의 얼굴이 천진난만하게 태평했다.
“... 그 병원 말고...”
“응, 다른 병원 가야돼?”
영심이에 나오는 병태처럼... 민혁은 순딩이처럼 고분고분하기만 했다.
1m를 떨어져 걸으래도 ‘알았어... 화 풀어’ 하며 내 말에 따르던 것까지
병태와 똑같던 형을... 끝없이 무시하기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쥐구멍을
찾고 싶은 부끄러운 심정이 되어 고개를 들 수도 없었지만... 끝까지 당당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깁스한 목처럼 꼿꼿이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응, 산부인과...”
“왜? 어디가 아픈데, 산부인과를 가야해?”
“아프지 않아... 해야 할 일이 생겼어.”
“응...”
그때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고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민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는 입을 마저 열었다.
“임신했어, 나... 애를 뗘야겠는데, 병원에서 보호자를 데려오래... 형이
내 보호자가 돼 줘.“
“!!!...”
평소에도 구릿빛 피부는 아니었다. 백옥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던 내 피부보다
조금 더 진한 살색이던 민혁의 낯빛이 순간 하얗게 질리는 것을 똑똑히...
내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몇 분 동안 입을 굳게 다문 그의 입술이 바싹 말라
들어가는 것도 보았다. 철판의 낯 두꺼운 얼굴로 죄책감마저 들어버린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난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의 변하는 얼굴을 지켜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형한테 미안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부탁할 사람이 형밖에 없었어.
하지만... 형이 싫다고 해도 괜찮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누구니...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넌 내게 키스에도 인색했어... 그런 네가...
어떻게 애까지......“
겨우 그 말 뿐이었다. 충격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중간에 그가 일어설지도 모른다고 각오했다. 유리컵에 담겨있는
냉수를 내 뻔뻔한 얼굴에 뿌릴 지도 모른다고 만반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순하디 순한 민혁이 언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화냈던 것처럼 무섭게 화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덜 미안할지도 모른다고...
얍삽한 내 마음이 그의 분노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민혁이 과하게 착한 남자라서 매력을 느낄 수 없던 걸까... 제 맘대로 내게
함부로 대했던 사돈에게조차 연민을 이유로 나의 뇌리 속의 출입을 허가하기도
했는데... 성격 못돼 처먹은 년은 사람 보는 눈도 시원찮은가보다, 나를 탓했지만...
탓하기만 할뿐 민혁을 마음에 품을 수는 없었다.)
그날 우리는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민혁의 어떤 질문도 당당해 대꾸했던 나는 ‘누구니...’라는 질문에 차마...
그날 밤... 그 사돈이야,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민혁과 함께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던 날 막차까지 놓치고 말았다.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남은 우린 내가 타고 갈 택시를 기다리며 거리를 서성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불현듯 흰색 트럭 한 대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급브레이크로
곁에 섰다. 차의 운전자가 차 창문을 내리고 단 한마디 “타요!”라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뜻 타지 않는 나를 노려보며 이번에는 운전자가 신경질 적으로 고요해진
밤의 정적에 맞서듯 크락션을 울려대며 우리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의 고집을 알기에
할 수 없이 “형, 나중에 설명해 줄게. 저 사람, 사둔이야...” 하며 차 쪽으로
몸을 옮기려는 내 팔을 이번에는 민혁이 잡았다.
“사돈이 왜 저런 행동을 해. 저 사람 믿을 수가 없어. 택시 타고 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말하는 민혁 역시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내게 연민을 만들어주는 사돈과 미안함을 넘어서 죄의식까지 만들어주던 민혁과
졸지에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말았다. 확실한 것을 좋아했던 내가 어쩌다가 둘에게
안일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그 역시 내가 의도한 바 없었다.
요란한 경적소리를 고집스레 내고 있는 사돈에게 민혁이 화가 나서 싸울 태세로
차로 향했고 그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단 듯 사돈까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난투극이 벌어질 것이 자명할 순간이었다.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던 불리한 것은 나였으니까, 사돈과 나의 일이 들통 날 것이 뻔했으니까.
아쉬운 것은 역시나... 그 순간... 나뿐이었다.
“형이 여기서 싸우면 오늘 이후 난 형을 안 봐. 내가 나중에 설명한다고 했잖아.
내가 잘 아는 사돈이라고. 내가 늦게 다니는 것이 화가 나서 그런거니까, 이해해“
그 순간 내 협박에도 선뜻 뒤로 물러나지 않던 민혁은 동상처럼 굳은 채로
내가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를 돌아서 민혁에게 돌진하려던
사돈이 그때서야 다시 운전석에 올라서 트럭을 출발시켰다. 커브로 돌기 전까지
백미러로 본 민혁은 계속해서 동상인 채로 있었다.
다음 날 일찍 민혁에게 전화가 왔다. 밤새 잠 한숨 못 이룬 듯 목소리엔
피곤이 묻어있었다. 사돈이 밤늦은 시간에 왜 그곳에 나타났으며 무례한 그
행동은 또 뭐냐며 지난밤 트럭에 오른 내 행동의 섭섭함을 잔잔히 털어내고
있었다.
“형, 우린 동성동본이야. 한 동네에서 지내다 보니 가까워져서 날 동생처럼
여기며 걱정을 해줘서 그래...“
민혁은 그 말에 겨우 안심된 듯,
“응...동성동본...그랬구나, 난 또... 괜한 걱정 했잖아. 헤헤...”
바로 내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어 버렸다. 선영이 가족과도 인사를 나눴던 그였기에
언니와 나의 친 혈육 못지않은 친근함을 알고 있었다. 언니의 시동생이면 나의 사돈이
분명할 거고... 뭣보다 <동성동본> 완벽한 차단막 앞에 안심하던 민혁이었을 거다.
‘누구니...’
이 말에 비겁했던 난 결코 ‘동성동본, 그 사돈.’ 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처음으로 형에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런 나를 마른 침을 삼키며 바라보던 민혁이 웨이터를 부르더니 ‘위스키 더블’을
주문했다. 냉수처럼 맑은 술이 곧 내어졌고, 민혁이 그 독한 술을 원샷으로
들이키더니 다시 한 잔을 주문하는 것을 지켜봤다.
더운 여름 맥주 한잔만 마셔도 되냐고 묻던 날 나는 ‘마셔, 말리진 않아.
하지만 나 없을 때 마셔. 술 먹는 인간들 딱 질색이야.‘ 하며 몸을 일으켰고
당황하며 ‘미안’을 외치며 나를 잡았던 형은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술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었다. 그런 형이... 내 앞에서 내 허락 없이 연거푸
그 독한 술을 두 잔이나 벌컥이며 들이켜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제 그를 내 올가미에서 놓아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까발리며 도움을 요청하던 순간부터
나는 작별을 고할 작정이었다.
민혁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고 있던 것 같다.
“그래... 가자. 병원... 난 어떤 순간에도 널 보호할 거야. 어떤 놈인지!...
그 놈은 널 사랑한 건 아니었을 거다... 나도 맘만 먹었다면 널... 함부로
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난 널 지켜주고 싶었다...
결혼해서 첫 날밤을 맞는 순간까지... 널 지켜주고 싶었어...
그래... 가자... 병원...“
나직이 말하는 민혁은 내게보다 독백처럼, 다짐처럼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어려운 부탁 들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형에게 상처를 주게 돼서...
한 입도 먹지 않은 음식을 앞에 두고 나는 다음 날 몇 시까지 터미널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 위에 고개를 묻고 있는 민혁을 혼자 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