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16년 내가 전근 간 직장으로 주문받은 토피어리 선물을 만들어 배달 온 사람이었다. 갓 이혼한 그녀는 사회 복지 대학을 입학하여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찰나였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절히 설명하고 그녀에게 자원봉사를 해 보겠느냐 물었고 그녀는 순순히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초면인데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하는 그녀가 싫지 않았던 것 같다. 11년이 지난 지금 그 때를 회상하니 참 새삼스럽다.
그녀는 새로운 분야에 첫발을 들이기 위해 혼자 힘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지금은 어엿한 개인 사업체를 내어 운영을 하는 대표가 되었다. 거친 야성으로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며 현장을 개척해야 했던 6개월을 전쟁 무용담처럼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여리고 따뜻한 사람으로만 기억되었는데 매우 당차고 용기 있어 보였다. '도전' 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온실 속에만 있던 나로서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 눈에는 분노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로 보이는 현실이 그녀에게는 생존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 먹이 사슬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거쳐 왔던 어디에서나 흔히 행해지고 있는 공공연한 부조리 속에서, 그녀는 이제 책임자로서 그러한 부조리를 암묵적으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백조 마냥 고개를 쳐 들고 만인의 질타를 받으며 꼿꼿이 혼자 서 있을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힘없이 그 부조리 속에서 당하고 있을 때에야 욕하며 나오면 그만 이지만, 이제 사업체 대표로서 그 행동이 사업체의 성공과 직결되어 있고 먹여 살려야 할 식구까지 있을 때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암묵적으로 용인 되어 누구나 다 한다고 그것이 부조리가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가리기도 힘들지만 당장 내 앞에 다가왔을 때 최소한 나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양심의 소리는 말한다. 은근슬쩍 그 어디 쯤 숟가락을 얹으려고 찾아 갔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퇴직 후 직면해야 할 당장의 나의 현실이라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마음을 치료하는 순수한 일도 사업의 형식을 취하게 되면 본질이 변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퇴직 후의 행보를 정해야겠다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돌아오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