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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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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16)-골기퍼있어도 골은 들어가더라.


BY 솔바람소리 2008-12-16

며칠이 흘렀다.

그날 밤 민박의 알리미늄 문이 부서져라 닫고 들어갔던 사돈을

며칠 동안 보지 못했다. 나는 수원에서 내려온 날이면 웬만해서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지냈다. 그를 피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쯤 나는 슈퍼를 정리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슈퍼에 대한 상식도 없이 나의 성급한 결정 때문에 이뤄진 그 일은 적자를

면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뭣보다 우리가족들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또,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 내가 망가질 것만 같아서... 타락하고 말 것만

같았기에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이 집에 내려와 계셔야 할 것만 같았다.

 

민혁에게 키스를 허락했던 그날 밤 일이 있은 후,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언제나처럼 맞은편에 앉아있던 민혁이 배시시 웃으며 날 바라봤다. 사랑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듯... 사랑해보겠다고 다짐하듯 말을 뱉어낸 이후로

아이러니 하게도 내 마음은 민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거북함을 느꼈다...

 

“**야. 나... 네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

 

민혁은 늘 내게 말할 때마다 조심스러워했다. 엄한 누나에게 주눅 든 막내와

비슷한 어투였다. 난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거기 있으면 돼지.”

 

내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 미쳤나봐... 자꾸만 네 입술만 생각나... 지금도 키스하고 싶어...그게... 미치겠어...”

용기 낸 듯 말하는 민혁이... 난 자꾸만 자꾸만... 부담스러웠다.

 

“형, 내가 형을 사랑해보도록 노력한다고 했지,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내가 한번 허락했다고 자꾸만 그러면 부담스럽고 거북해서 어렵게 갖은 마음이

돌아 설지도 몰라.“

 

“으...응... 미안... 그래... 내가 잘못했어...”

 

바로 꼬리를 내리는 민혁이... 난 결코 친구 이상으론 싫었다.

 

‘어쩌지...? 형... 왜 내 마음이 이럴까...’

민혁에게 드는 마음이라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이 아니라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날 평소와 달리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선영이가 보고 싶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언니네로 향했다. 평소처럼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선영아!!! 이모 왔네!” 하며 들어섰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리문을 열었다.

언니가 나를 맞고 환하게 웃으며 ‘왔니?’라고 반길 줄 알았는데... 나의 소란스런

방문에도 텅 빈 집안에선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안방에서 TV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문 앞에 벗어 놓은 언니와 형부의 신발들은 있는데... 뭐야...다들 벌써 자는 거야?’

닫혀있는 안방 문을 나는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

 

그가 있었다. 사돈이... 선영이 삼촌이...

언니 부부의 침대를 등지고 앉아서 그가 TV를 보고 있었다.

그 시간에 왜 그곳에 혼자 있는 것일까? 순간 떠오른 의문들이었지만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은 나는 얼른 열었던 안방 문을 닫고 몸의 방향을 돌렸다.

빨리...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머릿속으로 적색등이 깜빡이며 경고음을

내는 것만 같았다. 너무 놀란 심장이 터질 듯이 방망이질로 요동을 쳐댔다.

하지만...순간이었다. 짐작했던 것처럼... 유리문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잽싼 그에게

나는 붙잡히고 말았다.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많이 봤었다.

돌아서는 여자의 한 팔을 남자가 잡았다. 여자는 뿌리치며 가던 길을 가려했지만

남자의 힘을 못 이기고 곧 몸이 돌려세워졌다... 여자가 반항을 하지만 남자는 더욱

강력하게 여자의 두 팔을 잡고서 꼼짝도 못하도록 잡아 세웠다...

 

그 순간 우리 둘이 잠시 그러고 있었다. 그런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언니네 거실에서...

 

사돈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의 어깨에서 조금 내려온 양 팔을 터트릴 것처럼 꽉 잡고

누르듯 단단히 잡아 세웠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손아귀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파요!”

 

그가 두려웠지만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들어 내놓기엔 내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 때보다 강한 척 냉기를 머금은 말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날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말했죠. 놈들이랑 헤어지라고!

특히 그놈... 꺽다리 같은 놈!”

 

작지만 잔뜩 성난 목소리로 사돈이 말했다.

 

“내가 왜요? 내가 누구랑 사귀던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삼촌이?!

난 그 사람이랑 결혼 할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내 여자라고 말했었죠...”

“내가 물건이에요? 내 것 네 것 따지게. 어서 놔줘요. 아프니까”

“잤습니까, 그 놈이랑?”

“!!!... 그...럼요. 잤지요. 우리 결혼할 사인데...”

(그의 질문에 난 심장이 또 한 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잤느냐니...

그런 생각을 왜 했을까? 날 어떻게 보고... 하지만 그를 단념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사돈의 얼굴 표정에 변화가 일었지만 해석할 수 없었었다. 수갑처럼 양쪽을

잡고 있던 강한 힘이 느슨해지더니 그가 날 풀어줬다. 다행이 풀려날 수 있었지만...

우습게도 내 마음이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돈과 내가 동성동본만 아니었다면... 난 당신에게 마음을 줬을지도 몰라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너무도 짧은 순간에 그에게 빠져든 나를 어쩌면 좋을까...

중늙은이로 여겼던 남자가 어느 순간부터 깊은 쌍까풀을 비롯한 남성미 넘치는 이목구비가

탤런트 이 병헌보다 훨 낫게 보이는 것을 어쩜 좋을까...

내가 미쳤나보다...돌았나보다...

그를 홀로 언니 집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마음은 갑자기 슬픔까지

밀려들고 말았다. 소설을 쓰듯 우리들이 슬픈 멜로 영화의 주인공만 같았다.

 

불쌍한 남자...

일찍부터 사회를 떠돌며 고생만 했다던 가엾은 남자...

입을 옷이 하나뿐인 건지 매일 그놈의 츄리닝과 운동화 짝... 옷 좀 사입지...

별별 생각들이 잔뜩 나를 괴롭히기만 했다.

그래도 정리해야하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우리란걸 내게 타이르며 저녁을 맞고 잠자리에

들쯤 인터폰 소리가 울렸다.

막내가 받도록 했지만 내 마음은 그가 누군지 동생이 확인하기도 전에 꿰뚫고 말았다.

 

“누나, 삼촌인데... 문 열어 달래요.”

 

동생이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나는 인터폰을 동생 손에서 받아 들었다.

 

“왜 그러시는대요?”

차분하게 말했다.

 

“이모에게 할 말 없습니다. 난 호진이를 만나러 온 거니까... 호진이 좀 만나게

해줘요. 잠시 들어갑시다.“

 

평소보다 목청이 높은 것을 짐작컨대 그가 취한 듯 했다. 또... 술...이다...

 

“취했으면 들어가서 얼른 주무세요. 우리들 지금 잘 시간이에요.”

 

“어서 문 열어줘요! 이모!!! 난 이모랑 할 얘기 없고 호진를 만나러 왔다구요!!!

호진아!!!~~~삼촌 문 좀 열어줘라!”

 

이성을 잃은 걸까... 술 취한 인간이 싫었다. 그런 인간은 상종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제대로 미쳤는지 세상을 술이 아닌 맨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를 이해 할 것도 같단 생각이 되었다. 찬바람 속에서 얇은 츄리닝 하나로 서있을

그가 자꾸만 가엽단 생각이 머릿속에서 신파를 그리고 있었다.

 

“호진아~!!!”

 

인터폰을 내려놓아도 밖에서 막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소리가 안에까지 크게 들렸다.

막내가 곁으로 오더니 걱정스럽다는 듯이 안방 창가 쪽으로 가서 밖의 동태를 간간히

살피곤 했지만 그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얼어 죽을 것을 작정이나 하고 온 것처럼...

 

“누나... 잠시 들어왔다 가라고 하면 안될까요? 매일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워서 그래요.

삼촌이...“

 

막내가 애원하듯 나를 보며 말했다.

‘괜찮겠지...? 동생이 있는데... 내게 또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분명이 결혼할 남자와 깊은 관계라고 말까지 했는데... ‘

남들의 이목을 생각하며 그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던 내가 그동안의 개념들을

깡그리 휴지통에 집어넣어버렸는지 동생이 있으니까... 그 말 같지 않은 이유 그 딱한가지를

대고 사돈을 안으로 들인 날... 나는 짐작도 못했다... 내가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가

될 줄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취한 사돈이 술 냄새와 냉기를 퐁퐁 풍기며 우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동생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들을 사들고 식탁위에 올려놓은 그가 사이좋게 막내와 함께 그 애의 방으로 들어가서 장난처럼 침대 위에서 씨름을 하는 것이 보였다.

사돈이 나는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동생과 말을 주고받고

재미난 듯 낄낄 거렸다. 나는 동생에게 다음 날 학교 갈 것 생각해서 일찍 자야한다고

넌지시 말하며 살며시 그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집안에 모든 불을 언젠가 사돈이 왔을 때처럼 환하게 켜놓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오디오를 작게 켜놓았다.

 

간간히 크게 들렸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잠잠해진지 1시간쯤 흘렀을까... 내 방 문이 벌컥 열렸다. 침대에 누워서 일기장을 끄적이던 나는 막내인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문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문을 연 이가 막내가 아닌 사돈인줄 알았을 때... 용수철에 튕기듯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말았다. 그만 보면 긴장하는 나를 이제 어쩌지를 못했다. 그 순간은 더욱더...

그가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안에서 잠갔다.

 

“호진이는... 호진아!~”

 

그날 밤...

나는 기어이 사돈에게 나의 순결을 잃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내게 큰 장애물처럼 등장한 사돈은 여러모로

나를 뛰어넘은 생각들을 지닌 듯 했다.

동생을 재우고 내 방으로 들어 올 줄을... 감히 짐작도 못했던 나...

골기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던 사돈은 직감적으로 험한 꼴을 예상하고 동생을 부르려던

내 입을 틀어막고 능숙하게 나를 범하고 말았다...

그의 예언대로 골기퍼 있어도 골은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골기퍼로 민혁을 만들어 두고 있었지만 시답잖게 여겼고 그를 진정한 나의 골기퍼로

여기지도 못했다. 부실한 골대와 골기퍼를 뚫고 강한 한방 슛~이 들어 왔을 때...

무너져 버린...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