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나는 연체동물이었다.
뼈가 모두 녹아내린 것처럼 힘이 없었다. 격해지는 사돈의
숨소리와 못지않은 나의 호흡소리가 성난 바람에 시달리며 괴로워 떠는 창문의
신음소리를 삼킬 것도 같았다.
“이모... 사랑합니다...”
속삭이듯 말한 사돈의 뜨거운 입김이 내 귓가를 적셨다.
사랑... 우리에게 그럴 계기가 있었던가?... 우리에게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건가?
사랑이 그렇게 쉽게 생겨나는 마음이었어?
나의 머리는 잘못된 우리들의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의 거친 혀와 손놀림에 의해 무아지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늘어져만 갔다.
열에 닿은 엿가락처럼... 8월의 뙤약볕 가뭄 속에 채소들처럼... 자꾸만 한없이
처져만 갔다.
그때였다. 그런 나를 사돈이 번쩍 안아들고 바로 옆, 부모님의 침실로 들어서려던 것이.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서 비명이 튀어 나올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강하게 발버둥을
쳤지만 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결의에 찬 듯 표정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성큼성큼 나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던 내 부모님의 방으로 사돈의 품에 안겨 들어가게
될 줄을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이건 아니었다...
침대에 나를 눕힌 사돈이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벗기려 할 땐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상황까지 가도록 그를 통제하지 못한 내 자신을 저주하고 싶었다.
잠시 동안 그의 입과 손에 녹아내렸던 좀 전에 내가 역겹도록 추하기까지 했다.
뒤늦게...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기를 쓰며 몸싸움을 하듯 몸부림쳤지만 노가다로 뼈가 굳은 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더럽혀지는구나...내가... 나도 별 수 없는 년이었구나...
‘애를 벌써 셋을 뗬다믄서? 그거 시집이나 온전한데 가겄어?’
‘내가 지한테 한게 얼마야? 이 병원, 저 병원 내가 남몰래 끌고 다니면서
처리해줬지, 학교마다 다니면서 제 엄마 대신해서 전학을 시키며 돈은 또
얼마를 들였어. 그런 은공도 모르고 기집애가 싸가지 없게...‘
‘아니, 그 집 딸래미 옷이 홀랑 볏겨저서 소나무에 꽁꽁 묶여 있었담서,
뭔 일이여? 아니 일찍일찍 집구석에 들어갈 일이지, 뭐한데 오밤중에 댕겨가지고
그 험한 일을 당해?‘
건너 마을, 이웃집 선배들, 집안에 언니... 결혼도 하기 전에 순결을 잃은 사람들을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토시를 바꿔가며 어김없이 질근질근 씹어대곤 했던 것을
수없이 들었던 나는... 그래서 더욱 행동을 조심하고자 다짐했었다.
한번 낚였던 비운의 주인공(?)들은 세월 속에 삶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하이에나같은
그들에게 지난날이 수식어가 되어 현재 일어난 일까지 열거당하며 허락없이 씹힐 대상이 되어 도마 위에 오려지곤 했다.
‘왜 있짆여, 그 집 딸래미, 이 놈, 저 놈 붙어먹곤 했던... 그것이 이번에 시집간다매’
‘뭐더라, 그게 저기 그때... 에이, 몰러? 한동안 시끄러웠지, 왜! 어떤 놈한테 몸 주고
시집갔다가, 그거 이혼 당했다며?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던 사람들은 그 오래전 일들까지 하나 빠짐없이 자세히도 기억하며
입에 힘을 실곤 했다.
사돈의 아래서 힘도 못쓰고 깔려있던 내 뇌리 속으로 그들의 소리들이 울려 퍼졌고
침 튀기는 입술들이 클로즈업 되었다...
결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동성동본인 사돈과 붙어먹었다는 소리를 그들과 나, 어느 한쪽이 죽지 않는 한은 평생 듣게 생길 것이...끝장난 내 미래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엄마...내 엄마는 또 무슨 죄야... 딸 잘 둔 죄? 딸 간수 못한 죄로 아버지 앞에서 허리도 펴지 못하게 생겼구나...
내 뇌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했다.
안방 창문과 이웃집 할머니네 창문의 거리가 3m쯤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 분은 마을에서도 소문난 분으로, 제 몸에 덕지덕지 붙은 똥은 나두고 남의 몸의 티끌을 대놓고 나무라던 괴팍함의 소유자였다.
도움의 손길은커녕 그 순간의 추잡한 일을 들키지나 말아야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는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잔뜩 성난 그의 남성이 내 몸을 뚫고 들어오려던 순간에서 동작을 멈춘 사돈이
지친 듯 헐떡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험한 욕들을 합니까?”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내가 욕을 했었나?... 내가 뭐라고 욕을 했지?
몰랐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의 정지된 행동과 갑작스런 말에 눈을
떴을 때... 놀란 듯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과 내 눈이 가까이서 마주쳤다.
“!... 나 좀 나줘요. 빨리...”
한발 물러선 듯한 그의 말과 행동이 내게 일말의 희망을 느끼게 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즐기는 듯 웃음이 들어 있는 것도 같았다. 평소에 나였다면 새침 떨며 따져들었겠지만
그 순간의 일이 결코 평소의 상황이 아니었기에 절박한 심정의 나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아니, 벗어나야만 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이모는 나를 더 많이 피할 겁니다.”
더 많이...
내가 자신을 피할 거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니, 그의 치밀함에 진저리가 쳐졌다.
“아뇨... 왜요... 피하지 않아요. 정말... 정말 안 피해요...”
내가 듣기에도 비굴한 내 목소리였다. 반나체의 내가 나체의 한 남자와 맨 살을 닿은 채로
고스란히 나를 들어내 놓고서 꼼짝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 비참하고 부끄러워서일까
끝내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절망적인 말에도 선뜻 내려가지 않던
사돈이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의 입이 다시 눈물이 흐르는 내 눈,
코... 다시 입술에 점을 찍듯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대고 말했다.
“사돈은 내 여잡니다. 확실하게 알아둬요. 지금 만나는 놈들 정리해야합니다.”
작지만 단호했다.
“우린 사돈이에요...”
나는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줘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의 일들이 크나큰 실수라는 것을,
지금의 행위가 결코 둘에게 있어서는 아니 돼는 금지된 행위임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친 사돈도 아닙니다.”
뜨거운 그의 입김이 내 얼굴을 녹일 것도 같았다.
그새 그가 술에서 깨어버렸는지 아니면 그의 모든 것에 내 몸이 익숙해졌는지 그 싫던
술 냄새가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풋풋한 풀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린 동성동분이에요.”
“같은 피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번에 말한 거 거짓말이었어요. 나, 애인 있어요.”
“골기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갑니까? 내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지금
그냥 물러나지 않아요. 모두 정리해요! 알았어요?!”
그는 내 어떤 말로도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할 말까지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잠깐의 뜸도 없이 바로 대꾸하는 그를 보며 나는 노예처럼 순순히 “네...”라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가 돌아간 밤 나는 1초도 잠들지 못했다.
그의 능숙한 입에 녹아내린 내가 그의 행동을 부축인 것만 같았다.
그가 돌아가자마자 동생 방문을 열어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막내가 코까지
골며 잠에 떨어져 있었다. 내 방 침대 위에 민혁이 선물한 멜로디 인형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욕실에 들어가서 그의 채취가 묻은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냈지만 더럽혀진 마음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그를 피해야만 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겠다. 지금이라도 그가
스스로 깨치도록 만들겠다... 많은 다짐을 나 혼자서 외롭게 정리해야만 했다.
나는 일부러 민혁을 더 많이 만나고 다녔다. 내 얄팍한 속내를 모르던 민혁은
마냥 좋아만 했다. 그런 나를 경고하듯 사돈이 읍내를 돌아다니는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서 차를 세워 클락션을 눌러대기도 했다. 나는 대놓고 그를
무시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그가 누구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며 친구들과
함께 골목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간 민혁에게 갑자기 빵이 먹고 싶다고 사들고 오게 하던 밤에
그가 보길 바라는 마음에 찬바람 속에서도 그가 묵고 있는 민박과 바로보이는 가로등
아래 서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야, 그렇게 빵이 먹고 싶었어?”
피곤한 눈을 어쩌지도 못하면서 민혁이 해맑게 웃었다. 추위에 어깨가 움츠려든
민혁이 제 손을 비벼 열을 만들어서 내 얼굴을 만져주며 말했다.
“응...”
왜 나는 이런 착한 형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차라리 그냥 형이랑 결혼을 해버릴까...
별별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민혁이 말하는 것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춥지?”
벌써 그 추위에 몇 번을 다녀가면서도 민혁은 우리 집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왜 들어오라고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나는 나보다 한참 키가 큰 민혁을 올려
보았다. 내 얼굴을 만지던 민혁의 손이 차갑게 식은 내 손을 끌어 올려 자신의 롱코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형...”
“응?”
“내가 그렇게 좋아?”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하니? ㅎㅎㅎ... 새삼스럽게...”
“형...”
“응?”
“내가 노력해 볼게... 형을 사랑해보도록...”
“진짜?! **야! 정말이지?!”
“응...”
“야! 이게 꿈은 아닐거야. 그치?... 아 미치겠네. 아까부터 저 사람이 자꾸만
여길 바라봐서 신경 쓰이네.“
신나서 하늘까지 치솟을 듯 흥분하던 민혁이 내 뒤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민혁의 시선을 쫒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민박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현광불빛에 들어난 눈에 익은 흰색 츄리닝이 보였다. 그였다...
몸의 상체는 어둠에 숨어있었다. 하체는 불빛에 들어난 채로 서있는 그가 한겨울에
반딧불을 잡고 있는 것처럼 불꽃을 머금은 담뱃불을 지피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서
그가 나와 서있던 걸까... 그가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우습게도 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나약한 내 마음과 나를 그리 만든 사돈에게 화가 나버린 나는 해서는 안돼는 줄 알면서도 오기를 부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나는 그에게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영이 삼촌, 우린 안돼요. 알아요?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우린 동성동본이라구요.
결코 사랑을 운운할 사이가 아니라구요.’
차마 뱉어내지 못한 말을 가슴속에서 고함치듯 쏟아내며 사돈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민혁을 바라봤다. 나는 쫓기는 듯 마음이 급해졌다.
“형, 나 키스해줘...”
“헉!!!... **야... 왜 그래...?”
한겨울 밤의 추위에 얼어버린 것처럼 몸이 굳은 민혁이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이 금세 땀으로 젖는 것이 느껴졌다.
“뭐가... 키스하기 싫어...? 형을 좋아하려고 노력해본다고 했잖아...
아무소리 하지 말고 해줘 키스...”
“저기서 누가 아까부터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그게 신경 쓰여? 알았어... 관둬.”
처참한 기분이었다. 며칠 사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 이후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외로운 막막함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나는 결혼을 꿈 꾼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평범한 집안일 따위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연애는 하고 싶었지만 로맨스
소설 속에 주인공들처럼 외모, 지성, 능력을 고루 갖춘 멋진 남자를 대상으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애조차 몸을 섞는 일 따위는 계획에도 없던 나였는데...
그만큼 금기시하던 남녀관계였는데... 그날 밤, 순결은 잃지 않았지만 잃은 것과
다를 것이 없던 더럽혀진 내 마음이었다.
사돈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져버린... 뒤죽박죽 나조차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고만 싶었다.
결코 친구 이상으로 바라볼 수 없던 민혁에게 어쩌면 시집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즉흥적인 생각이 든 순간... 착한 그를 끝까지 이용하려고만 하는 내 자신이 차라리
결혼을 해서 죄 값을 치루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억지 해석까지 만들었다.
순진한 민혁... 바보같은 민혁... 그는 내가 허락하는 입술 앞에서도 주저하고
말았다. 비참함의 나락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 것일까...
주저한 민혁을 돌아서는 순간 내 머리가 맛이갔는지 그날 밤의 사돈과
순진하기만 한 민혁을 저울로 달 듯 비교하는 나를 느꼈다. 그런 내게 우습게도
나는 놀라고 있었다. 한 번의 키스로... 여차하면 순결을 뺏길 수도 있던 상황까지
갔다고 해서 뇌리 깊이 그를 인식하고 있는 걸까... 내 자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마저도 화나났다. 나를 이상하게 물들인 사돈에게, 그에게 쉽게 빠져든 나에게,
너무 착하기만 한 민혁에게... 나는 모두에게 화가 났다...
민혁에게 돌아서고 한발을 내딛던 순간에 민혁의 주머니 속에서 나와 자유를 맞은 내 손이
다시 민혁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당기는 힘에 중심을 잃고 민혁의 품에 쓰러져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허락된 키스여서 일까,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이라 그런걸까... 흥분한 민혁의 숨소리가
사돈의 거칠었던 숨소리와 비슷했다.
‘보고 있겠지...’ 나는 생각했다.
지금의 나를... 민혁을... 화산을 품고 지켜볼 사돈을 의식하며
‘이래도 골기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 가냐고 물을 건가요, 사돈...?‘ 그에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뜨거운 민혁의 입술을 내 입술이 힘을 빼고 맞았다. 민혁이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심스런 소심한 그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사돈과 너무 다른 키스였다. 그런 비교를 하고 있는 나를 죽여 버리고만 싶었다.
‘하이에나들이여, 나를 봐라!!! 니들이 씹든 말든, 로맨스 제대로 만들어서 결혼을
하면 될 거 아냐!
사돈! 내가 댁 때문에 사지로 내몰린 듯 절망적인 상태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구요! 어때요? 지금 심정이!!!‘
나무토막처럼 꿋꿋이 서서 미안할 정도로 무덤덤한 상태의 나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지긋이감고 있는 민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쾅!!!
쥐새끼 한 마리 나다니지 않는 길가, 어둠을 피한 가로등 불빛 아래 적막했던
고요 속에 있던 나와 민혁을 놀라키기에 충분한 소리였다.
고요를 깬 이가 누구였는지,
보지 않아도 그가 어떤 심정으로 무얼 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