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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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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7)-그치?


BY 솔바람소리 2008-12-02

다음 날,

나는 하루를 종일토록 집밖을 나가지 않고 안에서

강아지와 보냈다. 말을 섞은 적도 없는 사돈이 늦은 밤에 나를 찾은

이유가 뭐였을까를 밤새 뒤척이며 생각했다.

내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늦은 밤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도 충분히

알아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굳이 나를 찾지 않더라도 언니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사이에 궁금증을 가질 일이 또 뭐야?

 

꼼짝 않고 하루를 보냈던 날의 밤이 다시 찾아 왔다.

부쩍 까칠해진 딸 때문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조심하려고 나름은

노력하는 것도 같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급한 성질을 어쩌지 못해서

바르르 떠는 것과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내 방밖의 거실과 안방 사이에 자리한 응접실로 통하는 유리문을

나는 매일같이 열심히 닫아 놓곤 했다.

그러면 나로 하여금 아버지와 따로 사는 것 같은 단절감을 느끼게 했고

마음을 놓이게 했다.

 

시골의 밤은 늘 일찍 찾아왔다. 응접실에서 9시까지 TV앞을

지키고 앉아 있은 적이 좀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일찍들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래서 매일 밤 깨어있는 것은 나 혼자였다.

잠들지 못하는 밤조차도 나는 외로웠다.

네 번째 마지막 막차가 들어오고도 한동안 평소처럼 스탠드 불

아래서 잠들지 못한 밤을 버티고 있을 때...

챙!... 하고 다시 유리창에 작은 것이 날아와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선영이 이모...”

전날 밤과 똑같은 상황.

나는 곧바로 스탠드 불을 꺼버렸다.

“밖을 좀 내다봐요...”

전날 밤엔 내가 불을 끄고 바로 잠잠해 졌었건만

이번에는 작정한 듯 고집스럽게 불을 끄고도 몇 번을 더 창문으로

작은 것이 날아와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선영이 이모...여기 좀 봐요... 선영이 이모...”

당황+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황이 이틀째 연거푸게 벌어지니

천성이 소갈딱지 작은 나로서는 욱, 할 수 밖에...

생각 같아선 창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

‘아, 정말 왜 자꾸만 부르고 난리에요?!’ 하며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승냥이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릴 지도 모를 일...

나를 사려야만 했다.

 

동네사람들이 둘 이상만 모였다면 남의 집에 대해서

떠들며 까발려대기를 좋아했다. 뭔 일만 터졌다하면

먹잇감을 찾은 승냥이들처럼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침을 튀기곤 했다. 그들에게 동네의 가십거리들이 없다면

낙이 없어 이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궁금했다.

입 가벼운 사람들이 작은 동네를 가득 메우고 사는 것만

같았고 난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어린날부터 지켜봤던 마을 사람들은 남을 위하는 인정머리도

없었고 남이 잘되는 꼴 앞에서는 대놓고 배를 아파했다.

사촌 언니 중에 한명이 학창시절부터 몸을 함부로 하며

방황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마을 사람들은 물론 혈육으로

이어진 친척들조차도 조금만 섭섭하면 약점처럼

과거를 들춰내서 껌이라도 씹듯이 잘근잘근 씹고 또 씹는

것을 곁에서 나는 수없이 보고 들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일찍이 친했던 사람들도

등 돌리면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이유 하나가 나를 신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날만 밝아라... 날만 빨리 밝아라...

그렇게 죽은 듯이 조용히 사돈이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점심 시간대를 맞춰서 언니네로 찾아갔다.

전쟁터로 향하는 전사 같은 전의에 불타는 심정으로

언니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역시나...검은 피부의 일행들이 머리를 맞대고서 한창들

수저질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처제 왔는가, 식사해...”

 

형부가 상투적인 말을 건넸다.

방에 있던 언니가 이 시간에 네가 어쩐 일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선영이 삼촌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나의 까칠하고 냉랭한 목소리였다. 뜬금없이 사돈에게

할 말이 있다고 따져드는 나를 형부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곁에서 고개도 못 들고 밥을

먹으려고 애쓰는 자신의 사촌동생에게로 향했다.

살짝 당황한 표정의 언니가 방에서 걸어 나와 내 곁에 섰다.

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화기애애했을 분위기가

깨져버린 밥상머리로 사돈을 비롯한 친구들까지 고개를

잔뜩 처박고 있었다.

 

“왜...무슨 일인데...?”

 

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질문 선영이 삼촌한테 하는 것이 맞을 거야.

선영이 삼촌, 저에게 할 말이 있으면 이렇게 환한

대낮에 해보세요. 밤마다 창 밖에서 나를 부르지

말고!“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쌀쌀맞게 사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사돈 친구들이 동시에 사래라도

걸린 듯,

“푸풉...!!!” 국물을 입 밖으로 분수처럼 뿌려댔고

“켁켁켁...,” 불편한 듯 목을 가다듬었다.

 

사돈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는 했지만 차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이 보였다.

 

“으음....무슨...말씀이신지... 저는 모르는 일인데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겨우 입을 뗀 사돈이 황급히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고 허둥대며 밖으로 나갔고 친구들도

그 뒤를 따랐다.

 

“형부! 나 한번만 다시 선영이 삼촌이 밤에 나를

부르면 가만있지 않아요. 주의시켜 주세요.“

 

나는 홀로 상에 남겨진 형부에게 아직 풀리지 마음으로

말을 했다.

 

“무슨 말이야? 밤에 부르다니? 왜?”

형부가 도통 모르겠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그걸 제가 어찌 알아요? 나도 알고 싶어서

왔는데 저렇게 도망이나 가고.“

“네가 잘못 안거 아냐?”곁에 서 있던 언니도 내게 질문했다.

“하루는 나도 참았어. 낮도 아니고 밤 10시가 넘어서

창문 밖에서 돌멩이를 던지며 나를 불러도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어제 밤에도 또 그러잖아. 정말 나한테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물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왜 도망가?“

“에이... 네가 잘못 안게 아니고?”

“언니! 내가 몽유병 환자야? 아니면 꿈을 이틀

내리 꿨겠어? 동생을 아주 미친년을 만들지 그래?“

 

할 말 다한 나는 속이 후련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밤부터 다시 침묵의 밤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한동안...

 

민욱은 심심해서 죽으려는 나를 위해 작은 이벤트들을

선사하곤 했다. 퇴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빵이나 책을

사들고 우리 집 마당에 서 있곤 했다.

그런 민욱에게 한 번도 고맙다고 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늦은 밤에 왜 찾아와서 성가시게 구느냐며

쏘아대곤 했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진 시간에 우리는

집 앞에 있는 가로등 불 빛 아래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작은 차나 한 대 뽑을까보다... 막차 신경 쓰지 않고

너를 만나러 다니려면...“

“됐어. 월급 얼마나 받는다고 차를 뽑아서 날 만나러 다녀?

그건 내가 부담스러워서 싫어.“

 

솔직한 내심정은 민욱이 차가 있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달릴 수도 있을 테고

힘이 들면 아무 곳에서나 세울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양심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민욱이 나를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친구란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을 강요했다. 그러면서도 온갖 귀찮은 일들을

서슴없이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실 미안했다.

민욱은 나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내가 돈을 쓰지 못하게 했다.

억지로 내가 돈을 낸 날이면 그 값보다 더 비싼 것들을

선물이란 명목으로 건네곤 했다.

그런 우리가 한날은 수원에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것을 알고 혼자는 보낼 수가

없다며 민욱이 보디가드 차원에서 따라가겠다고 했다.

친구에게 오해 사기 싫고 길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며

단번에 거절하니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3시간이 넘도록 친구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동안

민욱은 내 친구가 눈치체지 못하도록 거리감을 일정하게

두고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미안한 마음에 민욱에게 선심 쓰듯

데이트를 즐기자고 했다. 팔장을 끼고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가 신발 가게 앞에서 마음에 드는 신발이

보이길래 치수를 말하고 신어보았다. 발도 편했다.

 

“얼마에요?” 묻고 말한 값을 치루려니 민욱이 자신의

지갑에서 어느새 돈을 꺼내서 아줌마에게 건넸다.

 

“왜 형이 사? 이건 내가 살 거야.”

 

“총각, 애인 신발 사주는 거 아냐. 그거 신고

도망간다...“

내 말에 주인아줌마가 말을 거들었다.

 

"그런게 어딨어요...“

민욱이 아줌마의 말에 신경 쓰이는 듯 했지만 고집스럽게

내가 꺼내든 지폐를 다시 핸드백 속에 넣게 했다.

 

“**야, 괜찮아. 우린 지금 친구잖아. 나중에 애인되면

그땐 안 사주면 되지, 그치? 그러니까 네가 나를 도망갈 일은

없을 거야...“

민욱의 말에 아줌마는 착한 남자 만난 아가씨는 좋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