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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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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5)- 첫 키스


BY 솔바람소리 2008-12-02

퇴원 후 보조기를 착용하고 지내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작은 서해바다, 그 곳으로 해가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다의 끝자락을 감상할 수 있는 옥상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것이...

그곳에 오르면 짠 내를 머금은 바람이 나의 온 몸을 스쳐지나갔다.

그 바람의 느낌이 좋았다.

답답해서 막막하기만 했던 마음도 그때만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처럼

저만치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요란한 배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우리배가

어떤 걸까, 짐작하는 재미도 괜찮은 놀이였다.

옥상을 즐겨 올라가는 딸을 위해서 아버지는 어느 날 넓은

옥상 한 가운데에 커다란 평상을 만들어 주셨다. 그곳에서

친구들이나 민욱이 찾아오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보조기를 풀어낸지 1달쯤 후부터는 부모님의 걱정을 무릅쓰면서도

버스를 타고 밖으로 나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민욱이가 괜찮은 영화가 나왔다며 함께 보자고 했다.

영화광이었던 나는 좋다며 승낙했지만 오래 앉아 있기 힘들면

중간에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양해를 구했던 것도 같다.

다음날인 일요일이었다. 오후 1시쯤이 아니었을까 기억되는데...

학창시절부터 친구들과 자주 찾던 영화관 앞에서 민욱과 만났다.

표를 구매하고 팝콘과 음료수를 사든 민욱의 팔을 잡고 아직

상영되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남은 흐릿한 불이 켜진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서 언제나 친구들과 앉았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민욱과 영화 관람은 처음이었다. (영화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류의 영화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희한할 정도로...)

상영시간이 되자 불이 꺼지고 곧 애국가를 비롯한 광고가 화면을

채워나갔다.

오랜만에 영화관에 들른 감회가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에 차서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리며 민욱이 건네는 팝콘을 먹었다.

오빠가 동생을 챙기듯 따개를 열고 건네는 음료수도 받아

마셨다. 함께 있으면 늘 챙겨주던 민욱이었기 때문에 어느새 익숙해진

그의 배려에 나는 부담 없이 입에 넣어주는 팝콘도 받아먹었다.

영화의 도입부분에서 팝콘 컵에 손을 넣다가 문득 민욱을 봤던

것 같다. 화면은 보지 않고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나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어둠속 화면으로

흘러나오는 빛으로 민욱의 표정이 어렴풋이 보였다.

영...부담스러운, 그동안 내가 봤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뭐야? 영화는 안보고 왜 날 봐!”

부담스러운 마음에 작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으응... 그냥... 네가 귀여워서... ”

평소와 다른 긴장한 민욱의 말투가 신경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누차 강조했던

말들도 있었고 내 말에 수긍했던 그였기 때문에... 그도 나처럼

우리 사이를 친하고 부담 없는 친구로 여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알어, 나 귀여운 거.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영화나 보자고 형아.”

“ㅎ ㅎ ㅎ... 너란 애는 참...”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하던 민욱이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영화였을까... 그 영화의 장면 속에서 코믹한 부분이 나왔고

내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던 것 같다.

그 순간이었다...기습적인 민욱의 입술이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 것이...

아주 잠깐 사이였다. 어안이 벙벙해서 넋을 잠시 잃었던 것도...

첫 키스였다. 남자와의... 입맞춤이... 내게 닿은 것은...

첫 키스의 짜릿함이란 표현을 수없이 들었건만

내게 닥친 첫 키스에는 짜릿함이 없었다.

찝찝하고 더럽고 불결했다. 짜릿함은커녕 치솟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던 나는 반사적으로 민욱의 뺨을 향해서 손을 날렸다.

짝!!!...

내가 들어도 컸던 마찰음이 영화의 음향과도 맞먹게 울렸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쪽팔렸다.

내가 우리는 친구라고 누차 강조했고 그때마다 수긍했던 민욱이었다.

그의 배반적인 행동과 불결했던 그의 입술의 감촉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마음은 더러워졌다.

더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는 나의 뒤를 황급히 민욱이 따라 나왔다.

 

“ **야!... 잠깐만...”

 

팔을 잡는 민욱의 손을 뿌리치고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오랜만에 들떴던 기분이 완전 꽝이 되고 만 것이 억울했다.

그날의 더러움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는 것도

미칠 노릇이었다.

남자들은 늑대라던 엄마의 말이 증명되고 말았다.

지도 남자라고 꼴에...

성질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간간히 쓰던 일기장에

별의별 더러운 심정과 민욱에 대한 욕을 몇 장에 걸쳐 써내려갔다.

민욱으로 짐작되는 집으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저녁에 울리는 전화를 엄마가 받곤 민욱이라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받기 싫다고 말했다. 엄마는 둘이 싸웠냐며 뭔가 캐내듯 물었고

쪼다처럼 입술하나 간수하지 못한 것이 쪽팔려서 나는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엄마의 추측대로 그냥 싸워서 끝장냈다고만

말씀드렸다.

한 달이 넘도록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욱은 반성의 편지를

수없이 보내왔다.

잘못했다... 내가 죽일 놈이다... 난 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다렸어야 했다... 너의 좋은 친구로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

정말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다...한번만 믿어주면 안되겠니?...

오는 편지 속에 들어있던 내용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