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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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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설날이다


BY 통통돼지 2009-01-23

어릴적 우리집은 큰집이 아니었는데 친척들은 우리집으로 모였다.

큰할아버지는 안계셨고 집안 어른인 나의 할아버지께 신년 인사를 하려니 그랬던가보다.

덕분에 나와 동생들은 편하게(?) 세뱃돈을 챙겼다.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집에 오신 어른들께 꿉벅 절만 하면 되니까..

손님이 많이 오시니 당연히 음식도 많이 해야하고,

명절 내내 상 차리고 치우고  차리고 치우는 일을 반복하는 건

외며느리인 친정 엄마의 몫일 수 밖에.

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아 내게 큰언니뻘 나이쯤인 고모들은

친구 만난다 약속 있다 하며 집에 있지 않았다.

중학생 어린 나의 눈에도 고모들이 얄미웠다.

엄마 혼자 고생하시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나갈 핑게만 대는거 같았다.

나라도 도와드린다고 나서면 엄마는

"시집가면 죽을때까지 평생 할걸 뭘 벌써부터 해. 놔둬라."

하셨지만 결국은 혼자하는게 힘에 겨워서 내 손을 빌리셨다.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만두피를 만들면 나는 만두를 빚었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만두소는 그릇에 한가득 이었고

아무리 빨리 빚어도 내 옆에 놓인 만두피의 높이는 높아지기만 할뿐 줄어들지 않았다.

커다란 채반 몇개를 채워놓고야 만두 만드는 작업을 끝낼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을 엄마가 찜통에 쪄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먹기 아까워 했었다.

여태껏 놀기만 했던 동생이 홀랑 집어 먹으면

할아버지 눈을 피해 꿀밤을 먹이기도 했다.

엄마를 돕는다고 해야 만두 빚기나 전 부치기 아니면 설겆이였다.

나머진 나의 역량에 넘어서는 일이라 도저히 할수 없었다.

엄마 손은 어찌나 빠른지 내가 전 부치는 동안 그 많은 일을 뚝딱 끝내셨다.

하룻내 일을 했지만 엄마랑 오손도손 나누는 얘기도 재밌고

내가 도왔다는 뿌듯함에 별로 힘든줄은 몰랐다.

그리고 다음날이 설날이라는 기대감이 커서 그랬던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하고 한 집안의 며느리로 명절을 맞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기억엔 집안에 넘치도록 손님이 와도, 엄마 혼자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엄마가 싫은 내색을 하거나 아버지께 잔소리 하는걸 못본거 같다.

그래서 난 며느리 역할이 힘든건줄 몰랐었다.

결혼 전 엄마의 반대가 이해되지 않았었다.

부모님 모시고 사는거, 시누이 많은거, 외며느리인거...

'딸은 엄마 인생 닮는다는데..'

어렵게 결혼 허락을 하고 끝에 혼잣말하듯 뱉은 엄마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