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
훤칠한 키도 아니고 깎은 듯한 외모도 아니고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노총각 선생님 이었다.
그래도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방학때 선생님 댁까지 찿아가서 놀다오기도 했다.
문학소녀까진 아니더라도 감성적인 여고생이 보기에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부분도 있었고
어떤 상황이든 평소 읽으셨다는 책의 구절을 인용해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수가 없었기에
다른 선생님들을 제치고 인기 순위가 높았었다.
어젯밤 아이가 시험공부하는걸 지켜보다가
문득 그 선생님 생각이 났다.
꿈 많고 하고 싶은거 많던 시절 우리의 바램은
시간이 빨리 흘러서 힘든 고등학교 시절이 가고 성인이 되어서
나의 의지대로 생각대로 인생을 사는거였다.
그때 선생님의 답은
" 얘들아! 지금은 너희들 맘이 급하겠지만 기다려봐.
시간이라는게 나이와 비례해서 20대에는 20킬로로 달리고
30대에는 30킬로로 달려서 너희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때는
너희 바램보다 앞서 간단다.
그때 세월의 속도에 맞춰서 하고픈걸 해내려면 지금 준비를 잘해야돼.
준비없이 막상 눈앞에 닥치면
달려가는 시간을 뒤쫓다가 인생 끝내는 거야.
나중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지말고
지금 머리 팽팽돌때 공부해.
다 때가 있는거야. "
그때 우리는 일제히 선생님을 흘겨보며
" 에이~ 또 공부얘기로 끝나는 거에요?" 했었다.
아들이 화장실 갔다 오길래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을 아이에게 해주었다.
"엄마, 좀 있으면 번갯불을 이용할 날이 올거에요.
아마 지금 연구중일걸요?
끝내주는 에너지가 될텐데 그까짓 콩만 구워먹겠어요?"
아이구야 !!
순진하게 선생님 팔에 매달리던 엄마 세대랑은 다른걸 깜빡했네.
스리슬쩍 능구렁이처럼 빠져 나가는게 보통이 아니다.
그 번갯불 연구좀 니가 해봐라.
그럼 이 엄마가 신나게 콩 구워 먹으마.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 말씀처럼
난 화살같이 달리는 시간을 뒤쫓아 가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