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저냥 집에 있는 기본 재료로 버티다가 보니 냉장고도 텅 비고
베란다에는 고구마와 감자만 잔뜩이다.
아무리 불경기라고 해도 좀 심했나?
감자를 볶고 조리고 찌게에 넣고 하는것도 이제 한계에 달한것 같아
어제 오후 동네 한바퀴 돌다가 골목시장엘 갔다.
꼬막, 양파 마늘 다지고 간장양념해서 얹어 먹으면 맛있겠다
코다리, 집에 잔뜩 있는 감자 넣고 파 숭숭 썰어서 조리면 맛나겠다
완성된 음식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게 아니라
시장에 나와 있는 원재료를 보고 입에 침이 고이는걸 보면
난 아줌마가 맞나보다.
한걸음씩 나아갈수록 손에 느껴지는 압박이 만만치 않다.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호박.
노오란 색깔하며 중후한 무게감 하며
찬바람을 꽤 맞고 걸어다니던 터라
따끈한 호박죽 생각이 나면서 난 어느새 호박 앞에 섰다.
반을 갈라놓은 호박의 속살이 정말 맛나게 생겼다.
요즘 작은 포장이 늘어가는건 알고 있었지만
마트가 아닌 시장에서도 호박을 잘라서 파는구나!!
두 손 가득 짐을 들고서도 호박에서 눈을 못떼니 아주머니가 날 놓칠리 없다.
깎아 줄테니 사 가라고 하면서 내 팔을 잡아 당기신다.
한번 들어본다. 이정도면 괜찮을거 같은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점점 후회가 밀려온다.
그냥 다음에 살걸. 아이구 손시려. 어깨도 아프고.
조금 걷다가 바닥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곱은 손을 주무르고 다시 걷고.
끙끙거리며 집에 오자마자 쌀을 물에 담가 놓고
원망스럽던 호박부터 손질하기 시작한다.
꼬막이며 코다리며 냉장고에 그대로 밀어 넣어 놓고
반찬 만들 생각은 안하고 호박죽만 급하다.
향긋하고 달콤한 호박 냄새를 아이가 먼저 알아챈다.
"엄마, 메론이 주황색이에요?"
엥? 그러고 보니 메론향 같네!!
그런데 호박이 익어갈수록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든다.
불린 쌀을 믹서에 갈면서도 딴 생각.
아이는 방 안에서
"엄마, 아직 안됐어요? 먹구싶은데.." 하고 소리친다.
우리 어릴적 생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생일상도 선물도 당연히 없었는데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엄마가 직접 하신 떡이었다.
수수팥떡, 백설기, 인절미, 경단, 콩떡 등등 해마다 바뀌었던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떡이 좋다.
특히 늙은 호박을 돌려 깎아서 말려 두었다가
콩,밤 등을 섞어서 만든 호박곶이떡은 내가 가장 좋아했다.
쫄깃쫄깃하고 달콤하고 향도 좋고
떡이지만 목이 메이질 않았다.
호박죽은 다 되어 가고 아이는 빨리 먹고 싶다고 성화인데
난 호박죽은 뒷전이고 아까부터 엄마표 호박곶이떡 생각이 간절하다.
속이 헛헛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