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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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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기억들


BY 통통돼지 2008-11-21

문자를 받았다.

'00학번 ***동문 부친 금일별세 

\\\병원영안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학교 써클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단다.

이제 내 나이가 부모님과 이별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나이인가 보다.

최근 부고가 늘었다.

이런 연락을 받으면 전화부터 해서 간단한 인사와 위로를 하고

장례식장에 가게되는게 순서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지 남편이 먼저 혼자 간다고 말한다.

나도 움직이기 싫어서 전화조차 안했다.

 

내가 2학년때 남편은 졸업한 선배이니 쉽게 만나기 힘든 사이인데

남편이 철이 덜 들어서인가 직장 다니면서도

학교 행사며 써클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바람에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나를 찜(?)했고

난 그때만 해도 너무 나이 차가 많은 써클선배가 사귀자 하니 겁이나서 도망다녔다.

그런데 이 남자는 집요하게도 학교 후배들을 쫙 풀어서 내 강의시간표를 알아내고

후배를 강의실앞에 배치 시키기까지 했다.

수업 중간에 후배시켜서  날 데려다가 카페에 앉혀놓고

도서관에도 찿아오길래 빈 강의실에 숨어 공부했더니 귀신같이 찿아오고.

전부터 추진력있게 일하는거 리더쉽 있는거는 익히 알던 바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한편 찍게 될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내겐 없는 적극적인 성격과 결단력있는 행동에 끌려

그래 설마 날 잡아먹겠냐 사귀어 보자.

그대신 나의 즐겁고 다양한(?) 학교 생활을 위하여 써클엔 비밀.

이렇게 연애가 시작되었다.

난 학교 다니고 남편은 직장 다니고

캠퍼스 커플이라 해도 만나는건 저녁때나 주말뿐.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집밖에 모르다가 대학의 자유로움에 푹 빠져버린 나는

선배들 모임, 동기들 모임, 후배들 챙기기에 바쁘고

공부도 해야지 과임원도 맡았지 써클 봉사활동도 해야하고..

남편은 불안해 했다.

그리고 둘의 나이차이가 만들어낸 다툼들.

그때 나타난 이 선배.

남편보다 2살어린 복학생이자 남편의 절친한 후배.

복학하고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묻혀 살던 선배.

무조건 밀고 나가는 남편과는 좀 다르게 먼저 배려하고 이해시키는 사람.

그래서 본의아니게 남편과 나 사이에서 상담역할을 하게 된 사람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밥먹고 같이 다니는걸 보다보니

나와 그 선배가 커플인줄 아는 친구가 많았다.

그땐 남편이 찰떡같이 믿는 후배라 같이 다녀도 암말 안하는줄 알았는데

나중 생각해보니 딴짓 못하게 일부러 내옆에 붙여놓은거 같았다.

암튼 졸업후에도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자리 차지한 나와 그선배

연애라고는 모를것 같던 그 사람이

학교 동문과 사귀어 우리커플 보다도 먼저 결혼을 했다.

세상에 그때의 놀라움이란...

지금도 잘~ 살고 동문 모임에도 나온다.

 

오전에 문자 받고 하루 해가 시시각각 방향을 달리하는 동안

내 머리속 기억들도 새록새록 고개를 들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럴까.

남편이 장례식장에서 전화를 했다.

날 보고싶어 하는 사람을 바꿔준단다. 그 선배다.

너무 미안하다.

수술하고 힘든 시간 보내셨는데 이제 좋은곳에 가셨을거다.

너무 상심말고 몸조심하라 위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TV를 켜놓았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혼자 꿈꾸듯 대학시절로 돌아가

그 가을의 교정에서 헤메다가 남편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