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호박고구마 풍년이 들었다.
헤헤.. 내가 고구마를 키워서 캐낸게 아니라 산거다.
주변분이 산다니까 시어머님이 덩달아 사셨고
군고구마 하니까 맛있다고 추가로 두 박스나 사셔서 주방 뒤에 두었다.
지난번에 감자를 두 박스 사셔서 싹이 한창 나고 있는데 고구마도 세 박스다.
어머님 손 큰거야 익히 알던 거지만 저걸 언제 다 먹을지.
아침에 출근해서 빨라야 9시에 집에 들어가니까
왕래하는 아줌마들도 없고.
줄창 고구마만 먹어도 한참은 먹겠다.
편한 이웃이 없는게 아쉽다.
우리 앞집은 어찌나 쌀쌀맞은지 가끔 마주쳐도 인사를 안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이사온지 1년 다 되가는거 같은데
이사올때도 어디서 오는지 가족은 몇명인지 몇가지 물어도 대답이 없었었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왜 꼬치꼬치 묻나 하는 표정이었었다.
기껏해야 출근때 몇번 본것 뿐이지만 나만 인사하고 그 쪽은 멀뚱.
슬쩍 봐도 나보다 나이 많아 보여서 먼저 인사를 해도
유일하게 아는체 하는 건 늦둥이 막내 초등생이다.
남편은 네가지(예쁜말 하기 운동본부 :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아는체 말라 하지만
애 키우는 엄마가 그럼 못쓴다 하고는 계속 인사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참으로 애매한 공간이 될때가 많다.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가벼운 눈인사라도 나누게 되니 그나마 낫다.
얼굴은 아는데 말 한마디 없이 인사할 타이밍마저 놓치면
아무리 초고속 엘리베이터라도 그렇게 느릴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앞집만 탓할게 아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고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 했다고
아는 속담을 끌어 모아서 입으로 뇌이며 어제 저녁에 고구마를 구웠다.
빈 그릇 돌려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까봐 일회용 그릇에 담아서
용감하게 앞집 초인종을 눌르려 했는데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고구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앞집이니 잘못 찿아온 양 할 수도 없고.'
쟁반을 손에 들고 주방과 현관을 몇번 왔다갔다 하다가
넉넉히 구운 고구마를 그냥 식탁에 펼쳐놓았다.
일요일 낮에나 가야 할까?
푹 쉬는 일요일의 방문을 달가워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구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나 보다.
고구마 하나 나눠 먹는것도 신경쓸 게 이렇게나 많다.
앞집과 내외하는 덕에 곱절의 군고구마를 해치우느라 내 살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