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25

손가락 빠는 할머니


BY 김미애 2010-01-12

손가락 빠는 할머니/김미애

 

38번 시내버스를 탔다. 출근길이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려 자리가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 없었으나 웬 걸! 운전석 뒤로 두 번째 좌석에 앉아 계신 초라한 행색의 70대 할머니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할머니는 앞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듯이 고개를 수그린 채 쭈글쭈글하고 뼈마디가 앙상한 손을 모아 쥐고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쪽! 쪽! 빨고 계셨다.

조금 전에 나보다 먼저 차에 오른 총각이 할머니의 옆자리가 비어있음에도 뒤쪽으로 가버린 이유는 그 총각의 눈에 비친 할머니가 언뜻 보기에 정신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 짐작이 갔다.

나는 얼른  할머니 옆에 앉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연세 드신 분을 보면 왠지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짠한 마음이 든다.
"학동에 가믄 잘 듣는 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이 있다고 항께 한 번 가볼라고 그라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여전히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웅크린 채 두 손이 허옇게 불도록 번갈아 가며 빨고 계셨다. 할머니의 등이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에 찌들어 등골이 휜 것이 역력했다.
"어디가 편찮으셔서 그 멀리까지 가세요?  "
"손꾸락 때문에 가요. 남들이 보면 내가 손꾸락을 빨고 있응께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할랑가 몰라도 손꾸락이 쑥! 쑥! 애린께 할 수 없어라우. 이렇게라도 빨고 있을 때는 괜찮단 말이요. 그랑께 남들이 보든 말든 이라고 빨고 있어라우."라고 말씀 하시면서 또 손가락이 입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
"할머니, 손가락이 어떻게 애리는 거예요?"

잠시지만 나도 역시 약간 이상한 할머니가 아닐까, 선입견을 갖고 보았던 게 죄송스러웠다.
"파를 다듬어서 그라요. 파 한 단 다듬으면 400원 준디 놀면 뭐 한다요? 그거라도 소일거리 삼아 받을라고 맨날 파를 다듬다 보니 손끝이 모두 벌어지고 이렇게 쑥쑥 애리요."라고 하셨다.
38번 시내버스를 타고 광주역까지 가는 동안에 그 할머니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건 60세부터 한 10년을 딸 사위랑 아들 내외가 여기 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해서 집에서 편히 지냈는데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애들한테도 미안해서 소일거리 삼아 파를 다듬고 있다고 하셨다. 
광주에 자식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다들 지들 사는 게 빠듯한데 얼마나 용돈이라고 주겠냐는 거다.  지들이 줄 때는 큰 맘 먹고 줘도 받는 입장에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셨다.
잘 하고 싶어도 돈이 앞서야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되는 것이라는 할머니.
무슨 병원인지 간판도 모르신 채 입이 서울이지 않느냐며 남광주에서 내려서 물어서 찾아가면 못 찾겠냐고,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듯 그 먼 길을 찾아가시는 할머니.
제대로 잘 찾아 가셨을까?
시골에 홀로 계신 친정엄마도 한동안 양파 껍질 벗기는 일을 하셨다고 했었는데 마음에 밟힌다.
돈 몇 푼 받기 위해 매운 양파 껍질을 벗기시면서 얼마나 눈물 흘리셨을까?
양파가 너무 매워서, 라고 핑계를 대며 혼자 되신 후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을 맘껏 토해 내셨을까?
1시간 40여 분 거리에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딸년.
오늘은 안부전화라도 드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