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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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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일기 - 일상 -


BY 써머스비 2008-09-18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면, 학교가 올라앉은 축대가 보인다. 무성한 잎사귀들이 무거워 보이는 아카시아나무가 까치집 두 채를 이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추석이 지났음에도 한낮의 기온은 연일 30도를 넘기고 있다.


 점심으로 콩국수를 하려는데 국수가 떨어져 슈퍼에 가는 길이다. 아버지는 콩국수를 좋아하신다. 07:30분이면 아침을 차린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밥이나 죽, 그도 여의치 않으면 누룽지를 끓여 갈아 드린다. 밥은 두어 숟가락이 고작이고 죽도 반 공기나 드실까, 두어 시간이 지나면 간식을 준비한다. 여름내 미숫가루와 과일을 갈아 드렸다. 오래된 믹서가 제일 바쁜 시간이었다. 오늘처럼 기운이 좀 있으면 콩국수를 해드리는데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으려 하는 날이 더 많다. 물 한모금도 내 손으로 따라 드려야 하니 아버지는 잡숫는 것도 없는데 나는 분주하기만 하다.


 올해 77인 아버지는 키도 몸무게도 적당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꽃미남이었다. 필채도 외모처럼 반듯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퀴즈프로를 함께 보며 우리끼리 하는 농담도 금방 알아듣고 함께 웃을 만큼 센스도 있는 분이었다. 지금처럼 되묻는 눈빛이 낯설고 가슴 아프다.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을 때 알게 된 아버지의 병명은 ‘암’이다. 암이라는 놈이 워낙 티를 내지 않는다지만 아버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지금처럼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몸에서 물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다리라도 주무르다 보면 마치 딱딱하게 마른 북어를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프지 않다. 퇴원을 한 후 한 번도 응급실에 실러 간 적이 없다. 딱 한번 진통제를 드시긴 했는데 약을 이겨내지 못해 더 힘들어 하셨다. 몸무게가 45킬로까지 내려가고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며 걸음을 걸을 수 없어 서너 발걸음밖에 되지 않는 화장실까지 가지 못하여 한 달에 두어 번씩 이불빨래를 하게 하지만 아픈 곳은 없다 하신다. 그저 기운이 없을 뿐 !


집으로 온 후 한 달에 한번 씩 병원에 간다.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엑스레이를 찍고, 별로 주고받는 말없이 의사를 만나고 무너져 가는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길기를 바라지만 담당의사는 그건 욕심이라고 한다.


 목욕을 하고 난 아버지는 힘에 부치어 온 몸으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