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3. 14 金
아버지는 낮부터 열이 오르더니 밥을 조금밖에 드시지 않는다. 기운이 없다고 누워 있다가 밥을 안 드시니 또 기운이 없다. 저녁에 가슴사진을 찍어보라고 (열이 오르는 순간에)해서 내려갔는데 1층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촬영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라와서 막 잠이 들었을까, 밤 10시였는데 다시 내려가라고 한다. 아버지는 신경질을 내면서 쌍시옷 자를 다 쓰신다. 내가 놀라서 생전 안하던 소리를 다한다고 눈을 흘겼다.
아버지는 매사가 귀찮다. 워낙 성격도 그런(?) 양반이지만 가끔 속이 터진다. 당신이 알기로는 당 조절이 안 되어서 병원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움직일 수 있을 때 그에 맞는 운동이라도 해야 될 텐데 꼼짝을 안하신다. 저렇게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터이다. 오늘은 참 답답하다. 집에서도 그랬지만 병원에서도 침대를 떠나면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줄 아시나??? 이곳에 있는 다른 환자들을 보면 그나마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껴야 하는데…. 물론 당신의 병명이 암이라 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셔야 하는데 누워서 잠으로 시간을 축내고 있다. 이 순간에는 동생들 말처럼 당신도 당신의 상태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 성격으로 그건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기에 덮어두고 있다.
오빠는 술을 마셔도 금요일이 되면 교대를 해 주겠다며 나타난다. 겨우 택시를 태워서 보내고 났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이종사촌이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났다. 와이프가 퇴근해서 들른다고 했다고 어슬렁거리다 내일 온다는 전화를 받고 돌아갔다. 이렇게 또 지루한 하루, 짧은 병실의 하루가 갔다.
2008. 03. 19
한 달 만에 퇴원을 하기로 했다. 가까운 친척들은 다 한번씩은 다녀가고, 널뛰듯 하던 당 수치도 조절되었고, 푸슬푸슬한 병원 당뇨식에 물린 참이었다. 대단한 효심으로 똘똘 뭉친 딸년도 아닌 나도 한 달 병원 생활에 지쳐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학원도 가야하고 모임에도 가야 하니 마음을 정하신 모양이다. 오는 월요일부터 요양보호사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간병인이 필요한 상태이다. 형제들이 의논 끝에 내가 그 역을 맡기로 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나는 가장에서 백수가 되는 순간이다. 다행히 아직은 오전에 잠깐 내 시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는 집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병원에 오는 날을 예약하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집에서 어떻게 돌봐 드려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없단다. 그저 잡수고 싶은 것 해드리고, 하시고 싶은 일 하게 하고. 일단 열이 나면 무조건 응급실로 오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병원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
사실 좀 겁이 나기도 하지만 병원 생활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