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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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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일기 2


BY 써머스비 2008-09-17

  

                                                                                                                  2008. 02. 26


  구름이 잔뜩 끼었다. 아침 10시,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아버지, 오빠, 나)는 신탄진 보훈병원 내과 앞에서 TV로 이명박 대통령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 지난 19일에 와서 하룻밤을 잤던 62병동 09호실로 다시 입원을 하려고 대기 중이다. 오빠가 애를 많이 썼다. 집으로 병원으로 학교(직장)로 오가면서 맏이라고, 장남이라고 옆에 있는 나야 말할 것도 없고, 누나인 언니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일일이 묻고 결정을 하게끔 했다. 많이 힘들고 지쳤을 것이다. 오빠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야 그냥 자리만 지켜 주면 그만이지 않은가.

 국가적으로는 명절 끝에 숭례문이 불타는 변이 생겼고, 사적으로는 명절 끝에 아버지의 암이라는 치명적인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선택하늘은 영 찌푸린 얼굴을 펴지 않는다.

 

                                                     *   *   *   *   *


 

   어제 가득하던 구름은 끝내 눈으로 뿌려졌다. 오후부터 흩날리던 눈이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앞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말씀하시길 이렇게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상서로운 징조라고 한다. 어제 대통령 취임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긴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고 있으니 그 백지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으니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징조라 할 수도 있겠다. 우리 아버지에게도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침을 먹고 병원입구에 있는 약국으로 헤파린을 사러 갔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병원의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휴대폰으로 이곳저곳을 담아본다. 6층에서 내려다 볼 때보다 그림이 잘 잡히지 않는다. 6층 창문을 통해 보이는 장례식장과 철탑이 있는 산의 풍경을 찍어본다. 올해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 일 테니…

 

 아버지는 10시에 재는 당뇨 수치가 너무 높다.(350~450까지는 나온다) 나는 간호사에게 100정도만 내려서 알려주기를 부탁했다. 250이라고 하자 얼마 안 나왔다고 좋아 하신다. 점심을 드시고 잠깐 누워 계시며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기에 좀 주물러드렸다. 이렇게 살가운 딸 노릇도 처음이지 싶다. 기분이 많이 좋아지셔서 운동하러 가는 것을 복도시찰을 나가야겠다며 농담도 하신다. 운동이라야 복도 두어 바퀴 도는 것에 불과하지만 자리보존하고 있을 때 비하면 운동은 운동인 셈이다.

 

 처음 병원에서 아버지가 암이라는 말을 듣고 을지병원으로, 집으로, 다시 보훈병원으로 허둥거렸다. 을지병원 응급실에서 집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는 동안 자꾸 눈물이 났다. 이제 좀 안정이 되어 가는 듯하다. 아버지는 당신 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차라리 편하다고 나는(동생들은 아니지만) 생각한다. 담당의사는 당뇨수치 오르는 것 걱정하지 말고 식사를 잘 하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