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다정다감하신 분이 아니다.
나에게 아니, 우리 4매에게 있어 아버지는 그다지 친근한 자리로 남아있는 분이 아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친숙하고 유머러스한 친구가 아닌, 피곤과 술과 친구들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의례 아버지는 우리 4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섭섭함이라는 감정을 알기도 전에 아버지는 우리것이 아닌 다른 사람 것이라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었
다. 일요일이면 다른 아버지들처럼 잠만을 도피처로 여기지도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셨다.
등산이며 낚시, 수석, 스킨스쿠버, 무선통신... 너무 많은 배울 거리들과 취미 생활에 끊임없이 마르지
않는 열정을 배풀기에도 바쁘셨다. 그래서 우리 4남매는 아버지를 차지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 눈에
비친 아버지는 우리들보다 자신을 위해서 사시는 분 이셨다.
그런데도 언제나 무거운 무언가를 두 어깨에 메달고 다니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은 우리들을 화나게
했다. 아버지가 정말 미웠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가 십대이던 날 나는 아버지에게 평생 잊지못할 상처를 남겼다. 그건 아마도 나의 반항이었으리
라. 아버지의 행동들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 줄 아느냐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퍼부었
을 것이다. 못된 행동이었는데도 나는 어느새 빛이 바래 다 잊어버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 부
끄럽고 용서하기 힘들지만, 그 때는 내행동이 잘못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철부지라는 말
이 왜 있는지 알겠다. 가끔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이면, 그 날의 이야기를 하신다.
생채기가 아물지않고 있다는 것이다. 내게 들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처가 가렵고
아려서 그러심을 알지만,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가슴팍에 있는 모든 기관들이 다 아픈것같은 느낌
이 생긴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내 잘못을 피해보지만, 그런다고 내가 저질렀던 잘못이 없
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내 잘못을 꼬집어 이야기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내리사랑일까?
그런 아버지가 지금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신다.
숱하고 많은 일들이 지나가 이제는 아버지의 몸에는 연륜이 묻은 뼈와 구부정한 어깨, 한시도 쉬지않
고 움직이는 손과 발, 남에게 베풀라는 따뜻한 마음만이 남아 있다. 우리 4남매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보태주고 싶어하고,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전화하고, 밥먹자 이야기하고....
우리 4남매가 어릴적 그렇게 아버지의 자리를 메꾸어 달라고 아우성일때, 아버지는 한번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쪼글쪼글해진 손을 내밀며 자신의 몫을 내어 주신다.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가 늙어버린 것이 마음 아프고, 내가 한없이 미워만 할 수 없음이 마음 아프다.
그때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란 걸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아버지를 이해했을까?
아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때문에 내자식에게는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어한다.
자립심보다 안아주려 하고, 넘어지면 일어서라고 하는 대신 일으켜 세워준다.
내 식은 이담에 또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될 지도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반대인것처럼....
요즈음 아버지를 보며, 많이 힘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처럼 무언가 활기차게 식지않는 열정으로 하시면 하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젊어서 그렇게 끊임없이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떠날 수 있었다는 걸 알았기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많이 지친다. 이건 지쳐서 못하겠고, 저건 지치니까 담으로 미루어버린다.
그래서 아버지의 열정이 얼마나 에너지가 넘쳤었는지 알겠다.
" 아버지, 힘내세요.
그래서 예전처럼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영어도 배우고, 춤도 배우세요.
이제야 한면이 아닌 다른 면을 보는 법을 좀은 배운것 같아요.
아버지의 다른 면에 있었던 열정이 좀은 보이는 것 같아요."
부끄러워 입밖으로 비추지는 못하지만, 오늘 아버지에게 띄우지 못할 편지를 예쁜 편지지에 적어본다.
훗날 내 자식들이 내게 반항할 때 꼭 보여주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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