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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낙들의 짧은 외출


BY 물뿌리개 2009-08-20

 

시골생활에서 가장 날 답답하게 하는 것은 문화생활에서 멀리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요즈음엔 인터넷 발달로 개봉한지 얼마안된 영화도 인터넷으로 보고 책 또한 여느 대형서점 못지 않게 미리보기 까지 하면서 선택해 살 수있는 세상이다.  뭔가 꽉 채워지진 않아도 그런대로 만족하며 즐기지만 전시회라던지 공연예술 관람은 언제 보았던가..기억이 십수년을 거슬러 가야 할 만큼 목마른 세월이었다.

오늘 처럼 바람이 낮은 풀꽃들을 흔들어 대고 벗꽃 또한 자지러지듯 웃고 있는 날엔 온종일 작은 공간안에서만 갇혀있는  가슴은 어딘가로든 가고싶어 달음박질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행사외엔 별다른 사건도 일도 없는 작은고장에 작년에 커다란 예술회관이 건립되었다.

많은 군예산을 들여 지어놓은 큰 건물이 곱게만 보이진 않았었는데......

며칠전 읍내에 나가보니 내 눈을 확 끄는 포스터를 거리 곳곳에 붙여놓았다.

<충남연극제>  이 작은도시 읍내에서 공연을 한단다.

가끔 방학때면 아이들 데리고 큰도시로 나가 아이들을 위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긴 하지만 내가 보고싶은 공연은 한번도 없었다고 나도 눈보신 마음보신좀 해야겠다고 반협박으로 저녁외출를 허락받고 함께 하고싶은 몇몇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온종일 돼지축사에서 돼지들 응가치워주고 맘마챙겨주느라 하루가 어찌가는지 모르게 바쁘지만 이쁜꽃들이 언제피어나는지 언제지는지 관심가져주는 가슴따뜻한 언니와 날마다 고춧가루 빻고 기름짜고 떡찌고 ...동네 돈을 갈퀴로 긁어 모은다 소문났지만 그다지 돈에 관심없어 하는 방앗간 친구와  시부모님 모시며 동네일 학교일 궂은일로 바쁜 어여쁜 아우 그리고 나.

네 여자가 저녁 외출을 했다.

식구들 밥상을 차려주고 정작 본인들은 밥먹을 정신도 없이들 모여 문예회관으로 달려  연극속에 빠져 버렸다.

<그 여자의 소설>이라는 제목의 연극은 이웃해 있는 소도시의 대표로 출전한 극단의 작품인데 딸을 두고 부잣집에 씨받이로 들어간 여인의 서글픈 인생이야기이다. 극중 조강지처의 아픔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에 눈물도 찔끔 났다.

신인배우들이라 연기가 미숙했다는 심사평을 들은 작품이었지만 모처럼의 특별한 외출을 한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극이 끝나기 바쁘게 우린  김밥과 분식으로 늦은저녁을 간단히 먹고 산재해있는 집안일과 챙겨줘야만 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부랴부랴 들어왔다.

잠시잠깐 외출이었지만 시골아낙들 가슴에  가득 담아온 바람이  한동안은 고된생활에 활력이 되어 주겠지....

오늘도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 허락없이 가계문을 밀고들어와 내 머리카락을 산발해 놓고 이제 한창 이쁘게 핀 꽃들을  정신없게 만들고 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이 봄이 아주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200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