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윤영은 손톱을 자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잠이 들기 전 손톱 밑이 아프도록 바짝 잘라 냈는데 어느새 손톱은 다시 자라 있었다. 윤영은 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자라나 있는 손톱은 마치 세훈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는 윤영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미련 같았다. 다시 손톱을 잘랐다. 엄지, 검지, 중지....... 그러나 다음 손가락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손톱들은 또 다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다. 윤영이 잘라 내는 손톱들이 소복이 쌓여 가는데도 손톱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윤영은 지치고 힘이 들어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손톱은 꼭 잘라내는 그만큼 자라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자르기를 포기한 윤영은 쌓여있는 손톱들을 모아다 꿈을 꾸기 전처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쓰레기통을 종량제 봉투에다 비우고는 꽉 찬 봉투를 꼭꼭 묶어서 밖에다 내다 놓았다. 어디선가 시커멓고 징그럽게 생긴 쥐가 윤영이 내다 놓은 종량제 봉투 뒤편에서 나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어른 주먹크기는 될 법한 그 쥐는 종량제 봉투를 물어뜯더니 그 속에서 윤영의 손톱을 싼 휴지뭉치를 끄집어냈다. 꾸깃꾸깃 뭉쳐진 휴지들을 이리 뜯고 저리 뜯어 다 풀어헤친 후에 여기저기 흩어진 손톱들을 주워 먹는 것이었다. 윤영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한이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윤영을 경계하며 열심히 손톱을 주워 먹고 있는 커다란 쥐의 눈빛이 점점 빛나기 시작하더니 형체가 서서히 변해 갔다. 몸이 커지고 사람 모양의 팔과 다리가 뻗어 나오더니 꼬리는 들어가고 머리카락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쥐는 차츰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고 그 사람의 형상은 차츰 윤영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윤영은 몸서리를 쳤다. 얼어붙은 몸은 마음과는 달리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에 휩싸인 채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린 햇살에 윤영은 잠을 깼다.
그 날 아침, 윤영은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몸은 몸대로 쑤시고 아팠고 마음은 꿈으로 인해 어지럽기가 그지없었다. 아침도 거른 채 침대에 누워 있던 윤영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세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역시나 얼마 안 가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목소리만 흘러 나왔다. 지난 밤, 그토록 모질게 마음 정리를 하고도 윤영은 아직도 이별이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윤영은 세훈의 학교로 갔다. 그의 강의 스케쥴쯤은 줄줄이 꿰고 있는 터였다. 공강 시간에 맞춰 윤영은 세훈을 찾았다. 친구들과 모여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떠들고 있는 세훈의 모습이 보이자 윤영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윤영을 더 먹먹하게 만든 것은 세훈이 떠들고 있는 말의 내용이었다. 윤영이 듣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훈은 어제 윤영과 있었던 일을 모험담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개팅은 처음부터 세훈과 그 친구들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기 같은 것이었다. 윤영이 언제 몸을 허락할 것인가 하는 내기를 걸고서 지금 그 결과를 두고 그들은 기분 좋게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말도 마. 그 긴 손톱으로 등을 후벼 파는데 아파 죽을 뻔 했다. 아트 솜씨가 꽤 좋길래 몇 번 칭찬 해 줬더니 아주 만날 때마다 손톱만 들이미는거 있지. 흥, 단순해가지고는.......”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르는 것이리라고 윤영은 생각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천지가 개벽해야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윤영은 절감했다. 정말 세훈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윤영은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짤막하게 자른 손톱은 너무 바짝 잘라서인지 손가락 끝이 어딘가에 닿을 때면 저릿하게 아파왔다. 어쩌면 당분간은 샾을 운영하는 것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미 어제 다 잘라버린 인연인데, 뭐. 미련 따위 다 버릴 거야. 나쁜 자식, 평생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보고 죽어 버려!’
윤영은 그렇게 돌아섰다. 이미 손톱을 잘라버리고 난 뒤가 아니었다면 아마 윤영은 그 순간 손톱을 다 뽑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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