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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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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꿈꾸는 여자7 (마지막회)


BY 달맞이꽃 2007-10-22

 

 두 사람은 내 앞에서 결혼반지를 나누어 꼈다. 나는 아직도 빼 버리지 못한 내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남편이 나에게 이 반지를 끼워주며 함께 건네주던 따스했던 미소가 떠올랐다. 반지를 끼워주려던 남편이 나를 한 번 쳐다본다. 혹여라도 남편의 가족들이 나를 알아볼까 나는 평소 하지 않는 짙은 화장과 전혀 다른 헤어스타일을 하고서도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남편은 얼굴이 굳은 채, 새로운 아내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사회자는 두 사람의 키스를 요구했고 하객들은 즐거움과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으며, 홀을 메우고 있던 젊은이들은 키스를 재촉하는 박수를 보냈다. 남편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메마른 내 입술이 불현듯 떨려왔다. 어느 순간 나는 나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 입술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그 손길, 그리고 깨어질세라 조심스레 다가와 입을 맞추던 꿈속의 그 사람. 사랑이 한 순간에 끝이 나듯, 깨지 않길 그토록 바래도 그와의 만남은 아침이 오면 요란한 알람 소리에 어김없이 깨고야 마는 허무한 것이었다.

 남편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갑자기 미친 듯이 떠나간 나의 아이가 그리워졌다. 그와 나의 사랑의 행위의 결정체였던 내 아이, 그래, 어쩌면 꿈속의 그는 나의 아이가 나를 위로하려고 보여 주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깨끗하진 않으나 세상에 나와 숨 한번 들이마시지 못하고, 눈부시진 않으나 햇볕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나에게 안녕을 고했던 내 아이가 생각이 나 나는 식이 끝나자마자 점장에게 조퇴를 신청했다.

 집으로 달려와 나는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두었던 아이의 초음파 사진과 비디오테이프를 꺼냈다. VTR에 넣고 재생시키자 콩닥콩닥 아이의 심장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건강했는데 왜 가버린 거니?’

 누굴 향한 원망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아픔을 죽여내고 있었다. 얼마를 숨죽이고 울었을까. 나는 어느 새 꿈속에서 나의 연인을 만나고 있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는 나를 향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따스한 그의 손이 닿자 나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 손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걷던 그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사랑해.’

 그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나는 왠지 눈물이 흐른다. 그저 이유 없이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숨이 막혀 질식해 버릴 것만 같다. 이 벅차오르는 감정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나의 손등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의 눈빛이 보이는 듯하다.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보이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그늘을 만들만큼 풍성한 속눈썹과 오똑한 콧날, 적당히 도톰한 입술과 갸름한 턱선, 부드러운 머리카락까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 내게 상처를 준 바로 그 사람, 내 하나뿐인 위로였던 꿈속의 정인은 이미 같은 날, 다른 여인의 남편이 되어 떠나버린 바로 그 남자였다. 믿을 수 없는 상실감에 나는 울부짖었다. 그는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잡기를 거부하는 내 손을 그 스스로 잡은 채,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사랑했었다.’

 그렇게 그는 울부짖고 있는 나를 뒤로 한 채, 또 한 번 잔인하게 나를 떠나갔다.

 새벽녘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베갯머리를 흥건히 적시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은 비디오가 다 돌아간 듯, 지지직거리고 있었다. 창밖에는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차디찬 상실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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