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생활에 나는 빠른 속도로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어차피 남편과 함께 살 때도 나는 혼자나 마찬가지였기에 혼자 사는 그 기분이 낯설지가 않았다. 살림을 하느라 다니지 못했던 혼자만의 여행도 다니고 저도 양심이 있는지 두둑이 안겨 준 생활비로 나 자신을 치장할만한 악세서리며 옷들을 사러 온종일 쇼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마음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은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공허함을 감추고서 지낼 수 있었던 건 틈틈이 찾아오는 얼굴 모를 꿈속의 정인 때문이었다.
남편과 헤어진 지 대여섯 달 가량 되었을 때, 나는 유명 웨딩 샾의 점원이 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사회생활이었지만 천성이 붙임성 많은 성격인 터라 점장도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나도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붙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내가 일하는 가게를 찾은 남편과 그의 새로운 아내 될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저 뒤 쪽에서 그녀의 들러리를 서 주면서 그녀의 드레스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예쁜 모양이 잡히도록 하면 되는 정도의 일이었기에 그녀의 결혼식 날까지도 그녀와 직접적으로 얼굴이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당연지사 나를 알아보았다. 아마, 그녀에게 다른 샾에서 하자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댔을지도 모른다. 태연한 척 하면서 일부러 나의 눈을 피하는 그에게 나는 신부가 참 아름답다며 한 마디를 던졌다. 남편은 당혹스러움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겠는지 더듬는 말투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예식홀을 예약하는 동안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청순해 보이는 긴 생머리에 짙은 쌍꺼풀, 날씬한 몸매에 단아한 외모를 가진 그 여자의 모습이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화장실의 벽면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녀에 비해선 너무도 촌스러운 소위 말하는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누구나 알아주는 미녀였고, 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었다. 그런 나를 정말로 사랑 하노라며 결혼까지 해 놓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폐기물 내 버리듯 버리고 나의 자리였던 그 곳에 새로운 여자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를 잃고 남편도 잃은 나에게 우연이라지만 자신의 새로운 아내 될 사람을 데리고 나타난 그 남자가 나는 죽도록 미웠다. 겨우 고요해진 내 마음에 돌을 던지고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새로운 시작을 열 예식홀을 예약해 놓고 파문이 이는 내 마음 따위는 아랑곳 않고 유유히 떠나갔다.
그들이 돌아간 뒤, 나는 남편의 새로운 그녀가 고른 웨딩드레스를 보았다. 청순하고 수수하면서도 기품 있고 고귀해 보이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그녀는 골랐다. 점장님을 비롯한 직원들 모두가 퇴근한 후, 나는 홀로 남아 그 드레스를 어설프게나마 입어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세월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몇 년 전, 많은 남성들의 로망이었던 도도하고 아름다운 바로 그 여자였다. 울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드레스를 그대로 깨끗이 벗어두고 집으로 온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남편의 결혼식 당일 날, 나는 일부러 점장님께 부탁해 다른 사람과 일을 바꾸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이나마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강철 같은 양심이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느껴주길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환하게 웃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를 보며, 그리고 그 뒤에 초라하게 그녀의 드레스자락을 고쳐주는 나를 보며,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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