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우리의 아이가 사산아로 태어난 것에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그는 아마 자신의 외도가 완벽했으며 만삭이 된 아내가 설마 그 사실을 눈치 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괴로워하는 내 옆에서 아이야 또 낳으면 되는 것이라며 가증스런 위로 따위를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내가 대체 왜 남편에게 그까짓 꿈 좀 꾼 걸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더 지독한 짓을 현실에서 나와 우리의 아이에게 저질렀다.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와 같지 않다는 우월감, 나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가 바로 그 죄책감이었다.
남편이 그의 숨겨둔 연인과 그 후에 어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외면적으로 그는 그저 가정에 충실한 가장일 뿐이었다. 마치 지난 일들이 모두 꿈이었던 듯 그렇게 일상이 흘러갔고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음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남편에게 사근사근한 예전 그대로의 아내였다. 다만 한 가지, 아이에 관하여는 상당히 예민해진다는 것과 부부관계를 할 수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남편은 꽤 끈기 있게 그런 나를 참아주고 있었다. 하긴,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나 밖에 나가서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나에게서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다른 여자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저리 여유로운 것이리라. 초조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진통이 오던 그 날처럼 다시 한 번 더 남편의 뒤를 밟아볼까 생각했다가 얼른 그 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다른 곳에 쏟을 에너지도 없거니와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 시끄러워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렵기도 했다. 더 이상은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그저 빈껍데기뿐인 남편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굳이 다시 남편의 외도를 내 눈으로 확인해서 스스로 마음을 무너뜨리는 일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남편의 외도를 확인하지 않고 있는 동안은 그것은 나의 상상일 뿐 현실은 아니니까 말이다.
'확인하지 말 것을...'
뒤늦은 후회를 한 것은 남편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싸늘하게 주검으로 떠나간 내 아이에 대한 아픔이었다.
그 날, 생각하기도 끔찍한 이별의 날에 나는 만삭으로 부른 배를 해 가지고 조용히 남편의 뒤를 밟고 있었다. 늦은 밤 시간, 주변은 칠흙같이 어두웠고 내 마음은 그보다도 더 어두웠다. 어파치 부른 배로 운전하는 것은 무리였고 차를 알아 볼 위험성이 컸기에 나는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에 오르기 전부터 약간씩 배가 당기고 몸이 편치 않았지만 그 증상이 신경이 쓰일 즈음 나는 남편이 어떤 여자와 모텔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말았다. 남편과 상대 여자는 모텔 앞에서 다정하게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고 그 장면을 목격하던 순간, 나는 갑자기 배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꿈이었으면, 그 순간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배의 통증이 너무도 생생해서 꿈이 아닌 현실임을 계속해서 깨닫게 해 주었다. 택시 안에서 나는 남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차창 밖으로 남편이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여보, 나 지금 진통이 심하게 와서 병원가야 할 것 같아. 지금 어디야?"
"어? 그래? 나 지금 회산데 금방 병원으로 갈 테니까 당신도 지금 곧바로 병원으로 가. 구급차 불러줄까?"
"아니. 됐어. 얼른 와."
전화를 끊은 남편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 여자와 유유히 내 눈 앞에서 모텔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더 이상 분노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양수가 터졌는지 옷이 축축하게 젖는 것을 느끼며 택시 기사에게 평소에 진료를 받으러 다니던 병원 이름을 대고는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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