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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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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장손의 아내, 7대 장손의 어미


BY 캔디 2007-09-23

"단칸방 얻어라. 돈 없어서 안해주는거 아니다.

 있는데 살림 돋우어 가는 재미 알으라고 일부러 안해주는거다.

 나는 단칸방에서 시누, 시동생 다 한방에 데리고 잤다.

 그래도 애만 잘 생기더라."

 

결혼 날짜 잡고 10년 넘은 15평 아파트 전세자금 4000만원 중

남편 돈, 내 돈 다 모아도 회사 융자 낸거 까지 딱 700이 모잘랐을때

그 700조차 못해주신다며 하신 그 당시 예비 시어머니의 말씀.

 

그것도 아들에게 직접 안하시고, 예비며느리 회사로 전화하셔서..

 

얼굴이 하얘져 있는 나를 의자에 앉혀주고,

동료들이 물을 떠다 주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궁합이 당신 아들한테 안좋다고 연애 3년동안 내리 반대하시다가

굽히지 않는 아들한테 깨끗하게 손들긴 싫으셨던지

상견례 자리에도 안나오시고서, 결혼 준비 내내

가슴에 못을 박던 그 시어머니...

 

"신부 예단비로 600만원 줄테니 그걸로 집 모자란다는데 보태던지

 니 반지를 해 끼던지 알아서 해라."

 

"장남한테 시집오면서 시부모 예단비 1000만원 안해오는건

 너밖에 못봤다.

 있는집들이 더 하더라.

 나는 없어서 못하면 못했지. 있으면서 그래는 안한다.

 딸이야 시집갈때 해주는거 그게 전분데.."

 

그런데 그 한번 해주는걸 왜 시부모 예단비로 해줘야 할까?

우리 엄마, 아버지가 뭐가 모자란 딸 시집보내시는거라고..

해줘도 딸한테 해주시는게지..

 

6대장손인게 자랑인가?

아무것도 없어서 해줄것도 없는 6대장손인게

미안할 일이지 어찌 저렇게 대놓고 해주는건 없으면서 바라는것만

당당할 수 있을까?

 

그건 남편탓이다.

 

당신 눈에는 세상에 제일 잘난 아들인것이다.

 

시장에서 옷가게하면서 친척들한테 없이 사는 설움 받으면서

평생 돈 안벌어오고 술주사 심한 남편한테 얻어맞으면서도

그 잘난 아들 하나로 자존심을 세워가면서 사셨던 거다.

 

"의대 보낼라캤다.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담임샘이 된다캤다.

 2학년때 악대부한다고 꼬시키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의대 가고도 남았던 애다."

 

나도 우리엄마, 아버지가 한의대 보낼라 하셨었다.

보낼라 캤다는 어디를 못 보내겠다. 하버든들 못 보낼라 캤겠나.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 다닌다고 해도

사교육 공부방하고 있는 내 벌이보다 많지 않다.

그래봤자 월급쟁이 인것이다.

 

폐물조차 우리집서 주신 돈으로 결혼전 끼던것보다

싼 7만원짜리 시계와 10만원짜리 큐빅박힌 금반지를 결혼반지로

엄마가 서운하다고 해주신 루비한세트, 한복 두벌

거기다 신혼여행은 내 처녀적 차를 몰고 전국 일주...

 

그렇게 시어머니께서 주신 600만원을 집얻는데 마저 보태

겨우 방 두칸짜리 15평 전세를 얻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방이 몇칸이냐고 물으셨다.

방두개, 부엌하나, 거실 하나라고 말씀드렸더니

당장 시집 안간 노처녀 시누이에게 방하나를 내어주라고 하셨다.

 

서울서 공무원을 하는 아가씬

독신주의자다.

결혼전 남매가 같이 자취를 했던것도 아닌데,

나는 이 시누이 책임지란 소리, 방하나 주란 소리, 데리고 살으란 소리를

결혼후 연년생 낳고 3번째 이사인 마지막 우리집 입주할때까지 5년을 더 들어야했었다.

 

그 일년만 데리고 있으면 시집갈거라던 시누이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집 얻을때 단돈 백만원이라도 도와주셨으면 그렇게 비상식적이다 생각되진 않았을게다.

그 시누이에게 거의 울먹이며 부탁했다.

"아가씨, 나는 시댁에서 남편다음으론 아가씨가 좋아요.

 나 도와주는 셈 치고, 딱 일년이라도 들어와서 살다가 나가세요.

 제가 도저히 어머님 아버님 등살에 못견디겠어요.

 불편하더라도 딱 1년만 참고 들어와서 살다가 나가세요. 네?"

 

아가씬 언니마저 왜 이러냐며 내가 엄마, 아버지랑도 살기싫어서

서울로 다시 시험쳐서 온 사람인데 , 결혼한 오빠집에 얹혀살것 같냐고

같이 살다가도 오빠가 결혼했으면 나오는게 맞지, 언니까지 왜 이러냐고.....

 

그래, 그 소리 어머님, 아버님한테 한번이라도 딱 부러지게 해줬으면

내가 5년이나 시달리지 않았어도 될거 아닌가 말이다.

 

결혼한지 두달동안  유난히 친구들이 많은 남편덕에

코피 터져가면서 주말마다 집들이를 하던 중이었다.

매주 수요일

문안전화 드리는 날이다.

또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뭘로 기절시키시려나.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음이 울리고

나는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어머님 접니다."

"니 애 소식은 있나?"

"아뇨, 아직 집들이하느라 정신도 없고..."

"니 뭐하는기 있다고 아직 애도 안가지고 그카고 있노?

 너거 시아버지 날만 새면 내보고 애 소식 있는지

 전화해보라 카는구만. "

"......"

 

 

 

두분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분이라

어머님따로 아버님따로 전화를 드려야 한다.

"아버님 접니다. 별일 없으시죠?"

"그래, 내가 한달에 용돈 10만원씩 보내라 안카더나.

 내가 그거 딴데 안쓴다.

 담배 피고, ......"

"예, 아직 전세자금 대출받은게 회사월급에서 매달 빠져나가고

 IMF터지고는 보너스도 일절 안나오고 있어서요,

 도배 장판 새로하고, 집들이 비용이랑 지금은

 너무 적자라서요, 아버님."

 

전혀 믿지 않으시는 눈치시고,

어머님까지 합세다.

너거한테 받은돈 다 너거한테 가지 어디로 안간다시며..

 

있어야 드리지.

그 당시 78만원 실수령액이었고, 한달 고스란히 보험, 차기름, 관리비, 전화요금, 도시가스 , 난방비. 등등 손 안대고 나가는 비용들이 86만원이었다.

최대한으로 아껴서 먹고 살아도 적자였었다.

결혼할때 갖고 온 돈으로 매달 야금 야금 빼서 보태서 살던 중이었다.

어디서 10만원씩을 드리냔 말이다.

 

설사만 하고 있을일이 아니다 싶어

월급 봉투를 들고 수원에서 대구까지 혼자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불고기를 재어서...

 

앞장엔 실수령액이 상세하게 적혀있는 월급명세표

뒷장엔 손 안대고 나가는 돈을 조목조목 적어서 보여드렸다.

우선 국내 최고의 기업에 다닌다고 자랑이 늘어졌던

큰아들의 실수령액을 보고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으신것 같았다.

그리곤 이내 맏며느리에게 잘난척을 그리하시다가 자존심이 상하신것 같았다.

 

이걸로 한달을 어찌 사냐고 하시며 놀라시던 아버님 옆에서

어머님은 한 번 보세요. 하며 내미는 내 손을 아예 쳐다도 안보시던

시어머니..

자존심이 상한다 이거셨지.

 

근데 내가 어쩌겠나.

그 자존심 지켜드리고자 아들 월급 명세표를 어디가서 위조를 할텐가,

없는 돈을 자꾸 보내라 하시니

어디가서 훔쳐서 드리겠나.

 

6대장손 아내, 7대장손의 어미 노릇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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