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벼리
아버지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앉아 그물을 뜨고 있었다.
완연한 봄기운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 방 안에는 따스한 햇살 알갱이들이 숨소리를 죽이고 아버지의 등에 나란히 사이좋게 앉아, 당신이 만드는 그물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계셨던 걸까?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조각상처럼 움직임이 없는 뒷모습은 시간이 정지해 버린 진공관 안에 있는 듯했다. 살짝 건드리면 먼지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7살의 어린 딸은, 평화로운 여유로움을 뚫고 방문을 열고 용감한 침입을 시도했다.
“아부지, 동화책 읽어주세요.”
낯익은(?) 이방인의 침입에 놀란 햇살 알갱이들은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바닥에 누워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먼지들은 펄쩍 뛰어오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정지되어 버린 듯 얼어버린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막내딸을 천천히 돌아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봄바람처럼 스쳐갔다. 훼방꾼이 싫지는 않은 모양 이었다.
“오늘은 동화책 말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해줄까?”
당신의 무릎을 선뜻 내주시며 앉으라고 하신다. 나는 꽃들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다가가서는 엉덩이를 살짝 무릎위에 앉혔다. 귀에 익은 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하나 둘 나타나 움직인다.
기와집을 그려 넣고, 산을 그려 넣고, 나무를 그려대는 손들이 분주히 움직이면 나는 눈을 감고 이야기 속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 주인공들이 어서 오라고 반갑게 손짓을 하고 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돈이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지.”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부자의 취미는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을 사 모으는 것이었단다. 그림은 오래 되면 될 수록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에 욕심이 많은 부자에게는 최고의 재산이 되었던 거지.”
나는 욕심 많은 부자의 얼굴을 그려본다. 뚱뚱한 몸에 고약한 인상을 쓰고 양손에 그림을 가득 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괜히 밉다.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 “그러던 어느 날 부자에게 초라하고 가난한 화가가 찾아왔단다.”
아버지는 손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 그물의 코를 만들어 끼우며 말한다. “그림을 산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며 자신의 그림을 사달라고 부탁을 한단다. 더러운 옷을 입은 화가를 곁눈으로 쳐다보던 부자는 거만하게 물어보았지.” 나는 화가가 불쌍해서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아프면서 조바심이 난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가.”
“네. 저는 자연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100일이 걸립니다. 먹고 잘 수만 있게 해준다면 멋진 그림을 그려 드리겠습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닌데…….어쨌거나 돈을 달라고 안 하니 내 먹고 재워는 주겠네.”
선심 쓰듯 말하고 돌아서는 부자의 뒷모습이 얄미워 메롱 놀리기라도 하고 싶다. 아버지는 딸의 마음을 아는지 빙그레 웃으며 뺨을 살며시 만져 준다. 따사로움이 살살 간지럼을 태우며 심장을 지나 발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손길은 거칠면서도 참 좋다.
그날부터 화가는 부자의 집에 머물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매일 산으로 들로 놀러만 다니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술과 고기를 배가 부르도록 먹고 마시며 코를 골고 잠이 들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비를 맞으며 강으로 바다로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마당에 피어있는 꽃을 보다가, 연못의 고기들을 보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부자가 하인들을 보내 살짝 보고 오라고 했는데,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림은 그리지 않고 매일 먹고 논다는 말만 들려주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부자는 달려가 잠자고 있는 화가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림은 그리지 않고 대체 뭐하는 것인가! 당장 나가게!”
“잊으셨습니까? 약속한 100일이 안 되었는데 .”
화가는 한가롭게 베개를 베고 누워 일어나지도 않고 말했다고 이야기 하는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잔잔히 번진다.
고거 참 쌤통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 히죽히죽 웃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마지막을 향해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물코를 만들던 바늘은 제 할일을 잊고 이야기에 빠져 귀를 쫑긋 세우고 말하기를 재촉한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스쳐가고, 드디어 약속한 날 아침이 되었단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린 딸은 눈을 반짝이며 궁금함에 입 안 가득 침까지 고인다.
“자아 약속한 날이네. 그림을 보여 주게.”
“여기서부터 대문 앞까지 종이를 길게 펴 주시지요.”
화가는 종이가 다 펼쳐진 후 하늘에 기도를 하듯 한참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커다란 빗자루에 먹물을 묻혀 길게 한일자를 쭉 그었단다. 자기가 서 있는 곳부터 대문 앞까지 긋고는 푹 쓰러지더니 일어나지를 않았단다. 아버지는 일어나 방 안 구석에서부터 길게 글자를 긋는 시늉을 한다. 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커다란 종이위에 아무 필요 없는 한일(一)자만 긋고 죽어 버린 화가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부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하인들에게 산에다 죽은 화가를 갖다 버리라고 한다. 정말 화가 났을 것 같다. 좋은 그림을 가질 욕심에 가득 차 먹여주고 재워 주었는데 그림은 고사하고 죽어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하인들이 멍석에 대충 화가를 말아 산으로 가 버리고 부자는 다시 그림을 본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그림 속에는 하늘도 땅도 바다도 산도 날아다니는 새들도 심지어는 풀 한포기까지 모두 들어 있는 게 아니겠니. 한일(一)자 속에 말이야.” 순간, 아버지의 눈은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어린 딸을 자연으로 데리고 간다.
“그때서야 알게 된 부자는 신발도 안 신고 달려가 화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정성으로 모셨단다.”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상상에서 돌아온 나는 정지되어진 시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서른이 넘은 아줌마가 되어있다.
왜 그 이야기를 해 주셨을까?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분명 아니었을 것인데 말이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 가면서 그 깊은 가슴의 밑바닥을 아주 조금 알 수 있을 듯하다.
우리의 삶이 시간을 거듭하면서 얻게 되는 나이테가 바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이다. 하는 일도 구체적으로 없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정신없이 바쁘다고 말한다. 왜 바쁜지 이유도 모르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바쁜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때로는 여유로운 기다림이 삶을 열어보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부자 역시도 화가가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으로 그려낸 그림 한 점을 얻을 수 없었다면 평생을 욕심과 탐욕으로 바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를 돈에 결부시키면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 역시도 평생을 방 안에서 그물을 만드시기만 하셨다. 도시에서 생활했으니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일도 없고, 그물을 필요로 하는 곳에 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아침이면 어김없이 바늘을 잡고 그물코를 만드셨다. 인생을 만들 듯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화가가 마지막 그림을 그리는 심정으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한 가지 신기한 일은 나는 단 한 번도 그 그물이 완성된 상태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물이 다 만들어지면 풀어 버리고, 다 만들어지면 풀어버리는 아버지를 보며 묵묵히 세월을 만들어나가는 힘겨운 작업을 느꼈을 뿐이다.
“수정아, 이것을 벼리하고 한단다.”
아버지는 그물 위쪽의 오므렸다 폈다하는 줄을 잡아당기며 가르쳐 주었다. 고기가 그물에 가득 차면 그 줄을 잡아당겨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둔다고 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도, 남과 경쟁하지 않고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도 결국은 벼리가 잡아당겨 못 나가게 거두어들일 때는 한 군데로 모아져 바다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나만 앞을 보고 뛰어간다고 해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해 일등이 된다고 해서, 박수를 받으며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뭐가 그리 기쁘겠는가. 함께 어깨동무하고 서로의 짐을 들어 주며 거칠고 험한 길을 밤새 걸어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해, 땀 냄새 나는 발의 물집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더 아름답고 가슴이 찡해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부모는 자식의 벼리이고, 임금은 신하의 벼리이고, 스승은 제자의 벼리가 된다며 어린 나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 주신 내 아버지.
나는 당신의 평화롭고 넉넉한 삶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세상과 손 내밀어 하나 되는 이치를 배웠다.
부자와 화가는 내 인생에서 스승이 되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센 바다 위에서 벼리를 붙잡고 사투하는 나는 폭풍이 그친 날의 하늘을 알게 되었다. 눈이 부시도록, 그래서 눈물이 날 만큼 시린 하늘도 많은 아픔과 힘겨운 고통을 안고 있다는 것을, 그러기에 인생의 바다는 약간의 여유와 웃음으로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진한 교훈을 가지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음을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나는 과연 얼마나 자식의 벼리가 되어주고 있을까?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신 딱 그만큼만 내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리라. 두 아이를 무릎에 눕혀 놓고 그날처럼 부자와 화가의 이야기를 해주며 기다리는 여유를 가르치리라.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