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도 못하고 자리에 누웠다. 토요일도 일이 많은 회사라 걱정이 되었는데, 오늘 쉬
라 했단다. 깨워 밥을 먹이고 병원에 보냈다. 콧물이 줄줄나오고 열이 나고 눈이 퉁퉁부어 있
는 모습을 보니 일이 많이 힘든가보다. 아침마다 7시에 나가 마을버스타고 지하철역가서 한
시간가량 더 가는데, 처음에 이곳에 이사온후에는 안스러웠었다.
그래도 얼른얼른 깨워 간단한 것 먹이고 2월부터는 도시락싸도 된다기에 부지런히 도시락
싸서 빨리빨리 출근시켰다. 밤 열시가 다되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이거 계속 다니게
해야하나 어쩌나 했던게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여 소위 컴퓨터에 앉아 밤을 꼬박세우는 체질이였는데 어른들이
그 꼴 못보겠다며 이렇게 저렇게 방해하여 결국 결혼할때 쯤 돈때문에 하게 된것이 운전쪽
일이었다고 한다. 결혼해서 잠깐 시댁에 살며 운전하는 일을 볼때 돈도 안되고 오히려 까먹
는 일같아 너무 힘들었다. 이듬해 아이낳고 나와 살면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편과 나는 이
런 일 저런일을 구상하며 힘닿는대로 살았던 것 같다. 그때는 친정 땅에다 작은 조립식을 짓
고 살았으니 이런저런 세나가는 것은 없었고, 먹는 것과 아이키우는 것에 신경쓰고 있었으니
어쩌면 속은 편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으는 것 없이 그렇게 하루 하루 보내면서 나또한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남편을 원망할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3년이 거의 다되어 결국 월세로 다시 나오게 되어 7개월 고생고생하다 결국 지금의
국민임대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물론 여기 오게 된것은 시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던 것은 아
니지만, 지금까지 결혼 생활해 오면서 한번도 매순간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살아왔던 것같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임대료 내고 월세나 다름없는 것은 사실이다. 24평이라 세식구 살기에
넓고 활용하려고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했었고 아이들도 벌써 여러명 봐줬었다.
몸이 힘들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편치 않아 계속 못하고 쉬엄쉬엄 하지만 이골이 나있다.
현관앞 방을 잠만 자는 사람을 구할까 어쩔까 싶기도 하고 낮에는 다시 아기 한명 되는대로
또 볼까 어쩔까....나는 늘 이렇게 살고 있다.
그래도 나에겐 앞으로의 또다른 꿈도 있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기에 가능한가보다.
아직 나도 코감기가 다 낫지 않았다. 계속 코를 풀어대면서 나는 오늘의 할일을 잊지 않기로
했다. 남편도 가장인지라 약을 먹고 앉아서 아프다는 말보다는 아이와 앉아서 속으로 무슨
다짐을 하는게로다.
나는 아플때마다 말보다는 깊은 생각을 많이 하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 감기로 인해 나는 그만큼 더 성숙하리라.
아이들도 아프면 뭘 배우려는 징조, 곧 더 크려는 것이라고 어른들이 말한다.
단순한 피로 감기가 아닌 이렇게 아픈 것은 더 많은 할 일들이 앞으로 많다고 생각하기로 했
다. 그만큼 의지가 생기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게 된다.
이깟 감기쯤이야-- 나를 어떻게 못하지---우리 가족은 내가 지킨다--
감기야 물럿거라---------
앞으로 환절기때는 더욱 조심하여 미리미리 감기 예방하는 습관을 들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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